고독사는 오늘날 한국의 주된 사회문제 중 하나다. 가족이며 친척,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며 사회활동이 끊긴 상태로 지내다가 아무도 모른 채 죽음을 맞는 일을 이미 많은 이들이 당면한 위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누리는 이 때, 너무나도 많은 구성원이 기본적인 존엄조차 갖추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사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정부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2021년 처음으로 고독사 예방과 관련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지난해는 역시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어떠했나. 2017년엔 2412명, 2018년엔 3048명, 그리고 2021년엔 3378명이 고독사했다는 통계가 작성됐다. 사망자 100명 중 한 명은 고독사하고, 특히 은퇴 직후의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2030 젊은 남성의 고독사도 한 해 수백 명에 달해 관계가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처한 위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외신이 한국과 일본 남성의 고독사를 주제로 몇 번이나 심층보도를 냈다는 건 이 사회가 특정한 계층과 집단의 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며칠, 몇 주 씩이나 제 죽음이 알려지지 않고 마침내 시체 썩는 냄새로 그 비극이 알아차려지는 죽음을 어떻게 존엄하다 하겠는가 말이다.
 
호이스트 포스터

▲ 호이스트 포스터 ⓒ BIFAN

 
부천 찾은 관객들의 선택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30분짜리 짧은 영화 한 편을 주목했다.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관객상을 받은 <호이스트>가 그 주인공으로,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장비인 호이스트 속에 갇힌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편영화로는 드물게도 두 줄기 이야기를 교차로 편집한 영화는 주인공인 사내의 현재와 과거를 담는다. 현재는 호이스트라 불리는 장비, 뼈대만 있는 거칠고 불친절한 승강기에 갇힌 상황이며, 과거는 그가 지금 이 곳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20대 청년이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십 곳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 그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고시원 방값을 내는 것만도 힘에 부쳐서 끼니는 편의점 세일품목이나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밥으로 때우기 일쑤다. 고시원 벽에 걸린 양복은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지만 그걸 입고 나서는 면접에 언제나 통과할는지 기약 없는 취준생 생활이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호이스트 스틸컷

▲ 호이스트 스틸컷 ⓒ BIFAN

 
누구도 찾지 않는 고립된 곳에서
 
그가 호이스트를 타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돈에 쪼들리는 상황은 그를 공사장 인부로 이끌었다. 이 시대 가진 것 없는 사내들이 막노동에 이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처음 막노동에 나서는 청년은 시멘트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막내 잡부로 일하게 마련이고 종일 선임들의 일을 도우며 땀방울을 흘린다.

그렇게 일하던 중 문자 하나를 받으니, 어느 기업에서 서류전형 합격을 통보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그러나 바쁜 일터에서 면접 참석여부를 묻는 문자에 답장을 할 수조차 없어 그는 일이 끝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로부터 일은 꼬여나가고 그는 마침내 모두가 퇴근한 공사장에서 홀로 호이스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명절 연휴 동안 아무도 찾을 일 없는 숲 속 공사장이다. 호이스트에 갇힌 청년에겐 휴대폰조차 없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 청년의 모습을 <호이스트>는 관객들 앞에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호이스트 스틸컷

▲ 호이스트 스틸컷 ⓒ BIFAN

 
감독 "고독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영화 <호이스트>의 국형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며 고독사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고독사로 숨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그 고립된 공간을 나오지 못하고 홀로 생을 마쳐야 했는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홀로 생을 꺼뜨리는 비좁은 방이 외딴 공사장의 호이스트와 마주 닿는다. 분투해도 혼자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그 차고 불편한 공간이 어떻게 사람들을 해치는가를, 그 안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를 이 처절한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호이스트>가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오늘의 관객에게 결코 멀리 있지 않은 위협을 장르적 재미를 가진 한 편의 재난 스릴러로 만들어낸 솜씨가 충분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형 감독은 상영이 끝난 자리에서 관객들을 향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기약했다. 그가 그럴 수 있기까지 열어내야 할 호이스트의 문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가 그 모든 문을 열어 제 다짐을 지키기를 바란다. 또 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 앞의 문을 열어젖히고 뚜벅뚜벅 나아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호이스트 BIFAN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형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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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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