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7 11:53최종 업데이트 23.07.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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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군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6월 2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강요 혐의를 받는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제26형사부, 재판장 정진아)은 고 이예람 중사 성폭력 및 2차 피해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하 특검)가 기소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전 실장의 혐의는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 후배 군검사의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어 자신과 관련된 사건의 수사 비밀을 반복적으로 캐묻고, 몰래 녹음한 행위였다.


특검은 전 실장의 행위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제5조의9 위반으로 보고 기소했다. 이 조항은 공정한 수사, 재판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이 조항은 범죄피해자, 신고자나 중요 증인을 살해, 폭행, 감금, 협박하거나 위력을 행사하여 진술을 왜곡시키고 정상적인 재판, 수사의 진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를 막는 데 적용해 왔다. 그래서 전 실장 재판의 핵심 쟁점 역시 '사건 수사를 하는 군검사도 범죄신고자나 중요 증인과 마찬가지로 이 법으로 보호받을 대상이 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특가법 제5조의9는 군검사 등 수사 관계 공무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단 재판부는 판사, 검사, 경찰관 등 수사, 재판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전 실장의 행위가 군검사의 정상적인 직무집행을 방해하였다면 이는 공무원 직무집행 방해를 막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다른 법률로 처벌해야 한다고 보았다.

증인, 신고자 등 사건 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용하려고 만든 특가법 제5조의9를 적용하는 것은 피고인을 처벌하기 위해 법률을 너무 넓게 해석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전 실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현행법상 공무원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처벌할 법규가 없다는 것이다. 형법 제136조는 공무원에게 폭행, 협박을 한 경우, 제137조는 위계로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경우를 범죄로 보고 있지만 위력 행사를 범죄로 보는 조항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특검이 기존 판례가 없음에도 전 실장의 행위를 특가법 제5조의9로 기소한 것 역시 이러한 고심에서 나온 판단이었을 것이다.

판결문에 남긴 우려

대신 다른 법률엔 공무원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경우를 처벌하는 법규가 있다. '소방기본법'은 출동한 소방대의 화재 진압, 구급 활동을 위력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특별감찰관법'도 위력으로 특별감찰관의 직무를 방해하면 처벌한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이예람 특검법'에도 특별검사나 수사관의 직무수행을 위력으로 방해하면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다시 말해 직무의 특성상 위력 행사로 정상적 직무 수행이 방해받을 여지가 있는 공무원은 별도 입법을 통해 특별히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군인, 군검사, 군사경찰 등을 대상으로 하는 그러한 법은 아직 없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행위의 부적절성을 분명히 명시하여 지적하고 있다. 몇몇 부분만을 추려보아도 다음과 같다.
 
'다수의 형사사건 수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군법무관으로서 수사가 진행 중인 군검사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수사의 밀행성이 요구되는 구속영장청구서의 기재 내용을 물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이례적이고 부적절한 행위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 판결문 108페이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수사검사인 OOO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내용을 몰래 녹취까지 하면서 수사 중인 내용을 알아내려고 하였고, 군검사가 답변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차례 정중히 거절하였음에도 계속해서 군검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군검사로 하여금 상당한 부담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하였다.' -판결문 109페이지

'군법무관으로서의 경력이나 지위, 그 당시의 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행동은 매우 경솔한 것으로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 판결문 109페이지

'피고인의 행동은 외관상으로 수사 중인 군검사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로 비춰지기 충분하고 그로 인하여 수사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에도 상당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결코 있어서는 안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 판결문 109페이지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음으로써 전 실장의 행동이 형사법적으로 정당화되고, 그 결과 향후 이와 유사한 행동이 군 내에서 다시 반복될 것을 우려한다는 말을 판결문에 남겼다. 이 사건을 지켜봐 온 유가족과 국민들, 특히 폐쇄적인 군대의 특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여 알고 있는 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국회가 움직일 시간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6월 2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어머니 박순정씨가 기자회견 중 이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우려를 분명하게 불식시킬 방법은 한 가지다. 국회가 '전익수 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었다. 이 중사 사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군 수사기관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군에서 벌어진 사건을 군에서 직접 수사하고 재판하는 것이 문제란 지적이 쏟아져나왔고, 결국 법이 개정된 것이다. 그 결과 2심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었고,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와 성범죄 수사, 재판을 민간 경찰, 검찰, 법원에서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원래 군사법제도 전체를 민간으로 이관하자는 여론이 우세했지만 국방부의 끈질긴 반대로 이 정도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명확했다. 계급 질서가 강하게 작용하는 군대 조직 내부에선 공정한 수사,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군검사와 군판사가 자기보다 상급자를 수사, 재판할 때, 상대방은 피의자, 피고인이면서 동시에 복종의 대상인 상급자이기도 하다. 충분히 위력을 행사해 수사를 방해하거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 실장이 자신을 수사 중인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캐물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군사법제도가 폐지되지 않고 존치된 상황에서 이러한 위력 행사의 가능성을 사전에 통제하기 위한 입법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군인, 군 수사업무 종사자를 상대로 위력을 행사해 공정한 수사, 재판을 방해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 무죄 선고를 보고 나온 이 중사의 유가족은 이 법을 '전익수 방지법'이라 부르며 국회의 입법 결단을 간곡히 요구했다. 누군가 계급과 지위를 이용해 수사와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법, 재고의 여지 없이 당연히 필요한 법이다.

다시 국회가 움직일 시간이다. 이 중사가 사망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났다. 우리의 법과 제도는 이 중사의 소중한 삶을 지켜주지 못했고, 꼬이고 꺾인 군 관련 제도의 굴곡 속에서 아직도 진상을 규명하는 일도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될 것이다. 법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전익수 방지법' 입법 논의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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