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0 11:47최종 업데이트 23.09.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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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장병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사고를 최초로 신고한 인근 주민에 따르면 당시 해병대 병사들은 장화를 신고 일렬로 하천에 서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위치에 따라 허리까지 물에 잠긴 인원도 있었는데,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지 않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차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이런 수색 방식은 사람이 줄을 지어 하천을 걸어 다니며 강바닥을 수색하는 일명 '인간 띠' 방식이다.


무리한 실종자 수색 작전이 빚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비가 멎고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하천 수위가 내려가 평소 상태로 복귀한 것도 아니었고, 폭우로 인해 강바닥이 안정적인 상태도 아니었다. 워낙 비가 많이 왔던 터라 언제든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터였다. 현장에서는 장갑차도 물살이 거세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직접 하천을 걸어 다니며 강바닥을 수색하는 방식을 택할 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포병을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에 투입... 의문스럽다
 

해병대원과 소방이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일대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해병대 장병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게다가 작전에 투입된 사람들은 해병대 '병사'들이었다. 사망한 일병은 포병이라 한다. 수색이나 구조, 탐지와는 거리가 먼 일반 병사다. 흐르는 물속에 직접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한 인원이라 보기 어렵다. 왜 포병들을 물속에서 수색하는 임무에 투입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안전 장비도 문제였다. 물속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는 게 아니고 하천을 걸어 다니며 실종자를 찾는 임무라면 구명조끼를 착용한다고 임무 수행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임무 특성상 구명조끼 착용의 필요성은 더욱 커 보인다. 해병대에 따르면 고무보트를 타고 다니며 실종자를 수색하던 인원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고, 하천변을 걸어 다니며 수색하던 인원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망한 병사는 하천 한복판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구명조끼를 입었어야 한다. 게다가 같이 임무를 수행하다 빠져나온 장병들은 배영을 해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구명조끼만 입고 있었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결국 비숙련 인원에게 안전 장비도 갖추어 주지 않고 흐르는 하천을 걸어 다니는 위험한 임무를 부여해 사고를 초래한 셈이다.

장병들이 이번 재난 대응에 투입된 건 지난 15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호우 대처 상황 점검 회의'에서 내린 특별 지시에 따른 조치다. 이러한 조치는 '국방재난관리훈령'에 근거한 '대민지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국방재난관리훈령'에 근거한 '긴급구조지원'제도에 따른 것이다.

군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또는 재난관리책임기관, 긴급구조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접수한 대민지원 요청 사안에 대하여 부대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최대한 요청 사항을 지원하게 되어있다. 긴급구조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국방부장관은 재난신속대응부대로 지정된 부대를 투입한다. 재난신속대응부대는 현재 특전사 6개 여단과 해병대 1사단으로 총 7개다. 해병대 1사단은 재난신속대응부대 자격으로 출동했다.

물론 대민지원 제도 자체를 비난하긴 어렵다. 해외 각국도 재난 상황에서 군인이 구조, 복구 작업에 투입된다. 그러나 대민지원 제도를 둘러싼 여론이 분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군이 장병들을 궂은일에 동원해 싼값에 부려 먹는 소모품 마냥 취급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군인의 희생과 헌신,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2019년 4월 육군이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대민지원 사진이 여론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2019년 4월, 강원도 동해안에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 육군이 피해 복구 지원에 병력 6800여 명을 투입한 일이 있었다. 장병들의 헌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육군이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대민지원 사진이 여론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장병들은 노상이나 트럭에 앉아 전투식량을 먹고 있었고, 마스크 한 장에 기대어 삽을 들고 잔불 진화를 하고 있었다. 육군은 해당 포스팅에 '화마의 상처로 얼룩진 산 중턱이나 길가, 트럭 위라도 개의치 않고 든든히 챙겨 먹고 기쁘게 임무 수행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물론 여건이 갖추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면 불편을 감수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그 상황에서 그 정도의 식사, 장비 지원이 '최선'이었냐는 것이다. 군에 예산과 식량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불이 번지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도 아닌데 복구 작업을 지원 나가 고생하는 병사들을 그 정도밖에 뒷받침할 수 없었냐는 것이다. 제대로 지원도 안 해놓고 미담으로 포장해 자랑한 행태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병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강바닥을 걸어 다니면서까지 실종자를 수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가 나서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군인들을 '그래도 되는 존재'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군 스스로 아프게 되물어 봐야 한다. 그런 관성이 모여 오늘의 사고를 빚은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로 군 관계자가 구명조끼 미착용 책임론과 관련해 구명조끼 착용에 관한 매뉴얼을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매뉴얼이 문제가 아니다. 이게 구명조끼를 끼우고, 안 끼우고가 매뉴얼에 쓰여 있어야 판단할 수 있는 일인가? 이번 사건은 불의의 사고나 불가항력의 재난이 아니다. 명백한 인재다.

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이 빛나려면 국가가 그만한 여건을 갖춰줘야 한다. 군인이라고 안전과 생명, 존엄을 당연히 희생하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희생과 불필요한 희생은 엄연히 다르다. 군인들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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