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 유니버설 픽쳐스

 
8월 15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오펜하이머>는 북미에서 지난 21일 개봉했다. 미국에서도 개봉 첫 주 1억 2800만 달러(한화 약 1632억 원)을 기록하며 <바비>의 뒤를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예매율 5위의 성적을 거두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보통 미국에서 영화를 볼 때면 영화 티켓을 현장에서 구매를 하는 편인데 <오펜하이머>는 온라인 사전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매진이 되었다. 그렇게 개봉일 다음날인 22일 매표에 성공하여 영화를 보게 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도무지 영화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모호할 정도로 다큐멘터리처럼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감독 자체도 그동안 자기가 영화상으로 다뤘던 인물 중에서 오펜하이머는 가장 모호하고 역설적인 인물이라고 언급을 한 것처럼 영화 또한 그가 느꼈던 감정선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끌고가 관객한테 넘겨 버린다. 

나름 중립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만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조차 나름의 메시지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이 작품에 주제 의식을 담는 대신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객 각자의 해석에 맡겨 버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치 "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3시간가량 영상에 담아 놓고 알려줬으니 인물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라는 불친절함으로 시작해 종국엔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 점들을 건네주고 이를 사회 속으로 공론화시켜주는 친절함으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나 싶기도 했다. 

미국의 국민 영웅으로 남아 평생 유명세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 오펜하이머는 각광을 받지 못하는 반전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역사는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기록일 것이다. 원자 폭탄 개발 당시 미국은 전범국인 독일의 폭주를 막기 위해 핵개발에 착수한다. 그리고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기간인 3년 만에 이를 해낸다. 여기에 핵심적 인물이 바로  오펜하이머다! 그가 원자폭탄 개발 사업 '맨하탄 프로젝트'의 수장으로서 사명처럼 이뤄낸 이 업적은 미국 역사 그리고 세계 역사에서 빛나는 기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과 성취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의 윤리 딜레마와 죄책감들로 인해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독일 나치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전체 국가 체제 속에서 극악무도한 악을 행하게 된다는 '악의 평범성' 이론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은 국가의 의도가 악하다면 그 공동체에 속한 개인 역시도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의 악을 따르는 행위자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항변한다. 심지어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자신의 행위는 국가의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사형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반성 하나 없이 "독일 만세!"를 외치고 죽는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투하가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한다. 그가 트루먼 대통령과 면담을 할 때도 "내 손에 (희생자들의)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이해해주지 않고 울보 과학자라고 비아냥 거리며 다시는 백악관에 발 들일 생각하지 말라고 그를 내친다. "폭탄을 만든 것은 당신이었지만 이를 투하하기로 결정한 건 정치인인 나다"는 말과 함께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내비치며 그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근거를 제시했지만 오펜하이머의 양심은 이와 타협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가 악의 평범성에 갇히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그는 비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행위를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 두고 비난을 피하고자 하는 평범함이 아닌 자신의 행위를 자각하고 이것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자 하는 비판적 자유 의식을 가진 한 인간이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토사구팽 격으로 내팽겨진 오펜하이머는 이에 대해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악을 거부하고 과학적 윤리에 관한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펼쳐 나간다. 

"세상이 이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웃었고, 어떤 사람들은 울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슈누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다 되었도다.' 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며 자신의 한 일들에 대해 후회는 물론 자신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어쩌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통해 미래의 재앙의 일부를 미리 경험했다 여겼을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이 재앙으로 치닫는 파국적 상황을 막기 위해  핵 확산과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원천을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행보로 말미암아 그는 정권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결국 공산주의자라는 의혹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당시 소련과 미국을 필두로 조성된 냉전 체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미국 내에는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적색공포,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색출해내는 국가 보안의 역할을 했다기 보다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에 몰아넣고 직업을 잃게 만들었으며 미국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좁히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킨다. 물론 그 시절 미국에 공산주의자들이 있었고 간첩도 있었지만 이들이 국가를 전복시키고 안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매카시라는 상원 의원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필요와 목적이 있었다. 재선에 성공하기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견고하지 못했고 심지어 탈세 혐의로 정치 생명의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매카시는 이에 대한 돌파구로 자신에게는 205명의 간첩 명단이 있다며 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없애는데 휘두르게 된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것이 지나치자 매카시의 도움을 받았던 공화당마저도 그와 선을 긋고 매카시즘이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았다고 고백을 한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매카시즘의 희생된 것이다. 평소 오펜하이머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스트라우스가 그를 공산주의와 연결시켜 공직에서 끌어 내린 것이다. 그 당시 색깔론 하나로 사람의 커리어를 한순간 박살낼 수 있다는 것을 오펜하이머의 인생이 증명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청문회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는 와중에 과거의 장면을 이를 청문회 현장 속에 그려내어 오펜하이머가 과거 저질렀던 불륜 사실로 인해 인격적으로까지 매장을 당했던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려 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모를 겪으며 오펜하이머는 국민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원자폭탄을 개발했지만 이 때문에 윤리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오펜하이머, 정부로부터 선택과 부름을 받았지만 이내 외면과 버림을 받았던 그의 인생 속에는 과학과 윤리 정치 등의 다양한 부분이 극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 그는 인류 역사를 바꿀 과학 기술의 만드는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 누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발명이 인간의 생명과 인류 미래에 대해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 이를 경계, 피해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우리는 그가 우리 사회에 남겨준 이와 같은 교훈의 유산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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