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대학 유도 클럽 시드니대학 유도클럽의 지도자 선생님들과 함께

▲ 시드니대학 유도 클럽 시드니대학 유도클럽의 지도자 선생님들과 함께 ⓒ 함용주

 
금년 여름 휴가에는 모처럼 가족과 시드니에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가보고 싶은 곳을 쭉 나열하고 동선을 짤 때, 저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드니의 유도장을 방문일정에 포함했지요.

같은 운동을 즐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함께 부둥켜 안고 땀을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유도라는 운동에 푹 빠져, 이따금 이렇게 해외 여행 중 여행지의 유도장을 찾아가곤 합니다. 프랑스 파리 에서도, 일본의 도쿄에서도 그렇게 운동을 하러 갔었지요. 다른 나라의 체육시설에서 직접 땀 흘리고 경험하며,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경우 공공체육 인프라가 참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공립 시설이 되었든, 학교 동아리가 되었든, 훌륭한 수준으로 구축된 가까운 시설에서 본인의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취미활동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 나오는 선수 중에는 취미로 기량을 닦은 아마추어 선수가 많습니다. 일례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에서 동메달을 딴 일본 대표단의 후지사와 선수는 본업이 보험설계사 였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아이슬란드 축구팀의 감독은 현직 치과의사, 골키퍼는 영화감독 이었습니다.

프랑스 유도 국가대표의 경우에도 저마다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지역대회를 거친 대표선발전을 통해 국가 대표로 선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GDP가 높고, 체육시설을 비롯한 공공 인프라가 훌륭히 갖추어 있기 때문에 취미생활만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올림픽 대회의 메달 순위를 메기면 선진국들이 높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체육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을 겪고, 소득 수준이 가까스로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올라갔을 무렵, 국가 정책으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게 됩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선수를 나이 어린 학생 때부터 육성하는 것이지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발상이지만,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선진국의 대열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요?

어쨌거나 체육특기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학교에 오더라도 수업을 수시로 빼먹으며 훈련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방학 때에는 합숙 생활을 하며 혹서훈련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전지훈련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한 학생이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입니다.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운동을 포기해야 하거나, 뒤늦게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학생들은 학업과 운동을 균형있게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트 체육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진작에 3050클럽(1인당 GDP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이상)에 들어갔고, 주요 선진국 G11 또는 G12 구성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거론되는 경제 선진국이니까요.

만약 현재와 같은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고집하더라도 생활체육의 저변확대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엘리트 체육 과정을 통해 배출된 체육 지도자를 모두 수용하려면 수강생 및 동호인구가 받쳐줘야 합니다.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 생활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접할 수 있게 하고, 매년 크고 작은 대회를 열어 동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량을 뽐낼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해당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공시설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 특기생들의 최저 학력제가 강화되었고, 불필요한 합숙훈련이 금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공공 체육시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엘리트체육을 위한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위한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쳐져 대한체육회로 통합되었습니다. 더 이상 구분이 필요치 않은 시점이 온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현재를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이 가까스로 맞게 된 갈림길에 선 시점 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생활체육의 저변확대를 위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한 소년 스포츠 만화에서 멋진 글을 읽었습니다. 고3 수험생이 학교 써클 활동으로 야구에 매진 하던 순간에 친구가 묻습니다, 대학은 어떻게 할거냐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참 근사합니다. '재수 해야겠지. 그래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실컷 할 수 있었잖아.'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論語(논어)에 나온 말이지요.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스포츠가 된다면 삶이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요?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생활체육 활성화 생활체육 저변확대 생활체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쳐지나는 단 한 순간도 나의 것이 아니고 내 만나는 어떤 사람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목동아파트의 봄 꽃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