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중기는 2023년 영화 <화란>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인기와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해보고 싶은 작품들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영화 <화란>에서도 주인공이 아니라, 그가 만난 중간 보스 '치건'으로 분해 이전엔 발견할 수 없었던 면모를 보여주었다. 지난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로기완>은 그런 야심찬 행보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탈북 난민 로기완은 시간을 거스른 재벌집 막내 아들이거나, 마피아 출신 능력자 변호사였던 그간의 필모그라피에 비하면 낯설게 느껴진다. 피 칠갑을 하고, 이방의 거리 노숙자가 되어도 송중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말간 눈빛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송중기는 그 눈빛에 서늘하고도 묵직한 난민 청년의 스펙트럼을 더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한다.

또한 2011년 발간된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우리 이웃 이야기> <수학 여행> 등의 독립 영화를 만든 김희진 감독을 만나 '탈북 난민' 이야기라는 장르를 넘어 인간 본연의 '자존'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로기완>의 한 장면

<로기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어머니의 손을 놓고 떠나온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흘러간 옛 노래에 <비내리는 고모령>의 첫 소절이다. 그리고 이 첫 소절은 바로 로기완이라는 인물을 소개할 첫 문단에 가장 어울리는 문구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정글같은 벨기에에 던져진 로기완의 혹독한 겨울나기와 플래시백으로 소환된 연길에서의 '사건'들로 시작된다. 왜 로기완이 어머니의 손을 놓고 벨기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해서든지 벨기에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려 하는지를 설명한다.

벨기에 브뤼셀에 내려 난민 심사를 받는 로기완, 난민 심사만 받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다음 심사를 기다리란다. 심지어 그건 해를 넘겨야 하고,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니까. 통역사는 말한다. '잘 버티라'고. 하지만 아는 이도 없고, 벨기에 사람이 아니니 일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 로기완에게 잘 버티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만큼 냉혹하다. 

빈 병을 주어서라도 겨울을 나보려는 로기완의 호구지책마저 쉽지 않다. 집단 린치에 물에 까지 빠져 혼절하다시피했던 로기완은 설상가상 지갑마저 도난을 당한다. 그리고 그 도난당한 지갑으로 인해 마리(최성은 분)를 만나게 된다. 
 
 <로기완>의 한 장면

<로기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처음 피해자와 도둑으로 엮이게 된 두 사람, 이미 전력이 있는 마리를 구해주는 조건으로 로기완의 지갑을 찾아주겠다는 마리,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엄마'였다. 

철면피처럼 굴던 마리의 마음을 움찔하게 만든 것이 로기완의 한 마디, 그 돈이 어머니의 목숨 값이라는 거였다. 자신도 모르게 안락사를 택한 어머니로 인해 삶을 내던져 버리는 중이었던 사격 선수 마리와, 탈북 과정에서 자신이 우연히 개입된 사건으로 인해 도망치던 중 목숨을 잃게 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몸값으로 벨기에까지 온 로기완, 두 사람은 모두 '어머니'라는 빚이 있었다. 그건 마리에게는 죽음으로 향하는 빚이었고, 로기완에게는 '어떤 지옥이라도 살아내기로 결심하도록 만든 빚'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지옥'같은 삶을 견뎌내는 우직한 이방인 로기완의 여정과 자신을 던진 또 다른 삶의 이방인 마리의 덫같은 시간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올 수 없어 허덕이는 마리의 시간은 어떻게든 벨기에라는 이방에 뿌리를 드리워 보려 하지만, 난민의 문턱은 하염없이 높아 매번 이국의 문화와 제도에 걸려 넘어지는 로기완의 시간과 교차한다. 

그러나 무너지고 빼앗기고 기만을 당해도 로기완은 포기할 수 없다. 그를 이곳에 오게 만든 이유가 어머니의 삶이고,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는 도망칠 곳이 없다.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일을 해야 했던 것도, 그날 자신이 내리는 눈 따위를 걱정해 어머니를 찾아갔던 것도 모두 고스란히 그가 짊어진 빚이다. 작품 공개를 앞둔 배우 송중기의 편지 속 표현처럼 '나 때문이다, 나때문이다'라는 도망칠 수 없는 '구덩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포기하지 않고 그 땅에 살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마리와 사랑을 나눈 후,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 나같은 사람이 사랑을 해도 되는 건지, 내가 행복을 바래도 되는 건지,라고. 하지만 그런 로기완에게 마리는 응답한다. 당신을 만난 그때 나는 하염없이 허물어져 가던 때였다고. 생과 사의 벼랑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래서 더 애틋하게 사랑을 나눈다. 

그 누구 한 사람 아는 이도 없는 낯선 이국 땅에 자신을 드리우려 했던 로기완,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가며 사랑하는 마리도, 든든한 조선족 선주도, 그리고 그를 보도해주고 응원해주는 이들도 생겼다. 하지만 인연은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인생이 마치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리는 내가 운전하는 버스와 같다는 말처럼, 로기완의 인생에 찾아온 이들은 떠나갔다. 연길에서 어머니가 떠났고, 이제 다시 벨기에에서 든든했던 선주가 떠났고, 마리마저 떠나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드디어 로기완은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벨기에에 머물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벨기에에 왔을 때처럼 홀홀단신으로 남아야 할 처지다.
 
 <로기완>의 한 장면

<로기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행복을 찾아 다시 어머니의 손을 놓다

영화의 러닝 타임 내내 그토록 로기완을 애타게 만들었던 '난민 심사', 드디어 이곳에 살아도 좋다는 자격을 얻어내지만 로기완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가 다시 떠나는 날 어머니를 만난다. 그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어머니, 하지만 이젠 그가 활짝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놓는다.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부채에서 벗어나 로기완이라는 '자존'의 세계를 향해 한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로기완은 '진정한 자유'는 떠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마무리를 짓는다. 그 떠남을 통해 그저 '정착'으로 완성되는 난민의 이야기이거나, 그저 인생의 벼랑 끝에서 만난 남녀의 치명적 사랑이었던 이야기는 로기완이 국경의 경계를 넘듯이 다른 울림으로 넘어선다. 생존과 고난을 넘어, 진정한 삶의 뿌리를 내릴 자존과 행복을 향한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로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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