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9일 서울 압구정CGV, 5ㆍ18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보고회 현장. 1980년 5월,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김지훈 감독(당시 10살)은 영화 <화려한 휴가>의 연출 소감을 그렇게 밝혔다.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는데, 5ㆍ18이 일어났을 때 (광주시민에 대해) 불순분자ㆍ폭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중에 서울 생활을 하면서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너무 부끄러웠다. 진실이 내 마음에서 왜곡됐던 사실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직접, 사진으로, 배우로... 광주 세번 만났다"

반면 80년 당시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배우 박철민(택시기사 인봉 역)은 자신은 "80년 5월 광주를 세 번 만났다"며 그 경험을 들려줬다.

"처음 만남은 중학교 어렸을 때 만남이다. 늘 학교와는 사이가 안 좋았던(웃음) 내게 느닷없이 15일간의 방학을 안겨줬던 게 광주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공수부대와 시민군들의 총칼이 두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쉽게 먹어볼 수 없는 음료수를 시민군 트럭을 쫓아다니며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즐거운 방학기간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대학 때 분노의 광주, 희생의 광주, 처절한 죽음의 광주였다. 비디오·사진·자료집들을 통해서 만났고, 커다란 희생이 처절한 죽음이 어떤 이들의 권력 욕심에 의해서 계획되고 음모됐다는 걸 알게 됐던,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게 했던 만남이었다.

세 번째 만남은 배우로서 <화려한 휴가>와의 만남이다. 나는 이 만남에서 또 다른 광주를 느끼게 됐다. 슬픔의, 죽음의, 안타까움의 광주뿐만 아니라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광주가 있었던 걸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얘기하는 도중 그의 눈에 잠시 물기가 비친 듯 싶었다. 각자 경험은 달랐지만 이날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다른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반 제작보고회 현장과는 달리 '영화'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5월 광주'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간추려보자.

▲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 기획시대
안성기(택시회사 사장 박흥수 역) "80년 당시 영화배우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바람불어 좋은 날>이란 영화를 찍고 있었다.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귀동냥으로 많이 듣고, 그래서 늘 빚을 지고 사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소시민적인 조그만 데서 시작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 구조도 좋았고 그래서 기꺼이 출연했다."

김상경(택시기사 강민우 역) "90년대 초반 대학교를 다녔다. 당시 5ㆍ18 영상물을 보는 게 유행이었음에도 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영화 촬영 동안은) 영상물과 사진을 핸드폰에도 찍어가지고 다녔다. 영화 찍으면서 느꼈는데 정말 억울하고 화나겠더라. 아무도 모르고,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만 거짓말하는 것처럼 되잖나. 가슴 깊이 5ㆍ18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요원(간호사 박신애 역) "영화 찍으면서 5ㆍ18기념관도 가보고. 원래는 다큐 보는 거 안 좋아하는데 그런 거 보면서 공감했다. 그동안은 5ㆍ18에 대해 포장돼 있는 것만 봤다. 이 영화 찍으면서 포장된 이미지 속의 사연,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도 숨은 사연을 알 수 있는 기회,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준기(고교생 강진우 역) "5ㆍ18에 대해 정말 잘 몰랐다. 간간이 절제된 영상으로만 접했고, '아 그냥 역사적 실수가 하나 있었구나' 정도였지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시나리오 보면서도 처음 느꼈던 건 영화적으로 너무 키운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참혹한 현장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부끄럽게도 전혀 몰랐던 것을 작품을 하면서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 뒤로 27년... '폭도'는 '유공자'로 바뀌었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의 제목은 알다시피 '광주 폭도 진압'을 위한 신군부의 작전명이었다. 3공수특전여단·7공수특전여단·11공수특전여단·20사단·31사단·보병학교·포병학교·기갑학교 등 총 47개 대대 소속의 장교 4727명, 사병 1만5590명 등 총 2만명 이상의 대한민국 국군이 이 작전에 동원됐다.

영화는 '화려한 휴가'가 시작된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동안의 광주, 또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총칼을 들어야만 했던 아주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지훈 감독은 "역사적 사건의 핵심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항쟁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향기를 품었을까, 그 향기가 지금 어떻게 우리에게 스며들고 있나가 나의 주제였다"고 말했다.

총 제작비는 100억원. 1만7000여 평의 부지에 전남도청과 금남로 거리 세트를 새로 만들었다. 또 수소문 끝에 의상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포니' 택시를 이집트에서 역수입해오는 등 '80년 광주'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5개월 동안의 촬영을 끝마치고 현재 마지막 손질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7월 개봉 예정.

김상경은 영화를 찍은 이후 자신의 변화에 대해 고백하면서 "TV에서 5ㆍ18기념식 하면 '그냥 하나 보다' 제헌절처럼 전혀 감성없이 여겼다, 영화를 보면 그런 기념식을 볼 때 다른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다음주 금요일이 바로 5월 18일, 27년 전 '화려한 휴가'가 시작된 그날이다. '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폭도'는 '민주화유공자'로 바뀌었지만, '화려한 휴가' 작전을 명령했던 자가 참회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2007-05-09 21:0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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