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아트시네마'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대표되는 극장이다. 2006년 5월, 제10회 인권영화제가 열리던 중 평택 대추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기 위해 처음 이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2일), 지난 8월 31일부터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기에 두 번째로 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마붑 알럽씨는 대답 대신 밖으로 나가 영화 포스터 앞에 섰다. "영화제 홍보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마붑 알럽씨는 대답 대신 밖으로 나가 영화 포스터 앞에 섰다. "영화제 홍보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최재인

올해로 2회째인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8월 31일부터 두 달 동안(10월 28일까지) 전국 10개 지역에서 차례로 진행된다. 서울에서의 첫 상영이 개막전인 셈이다. 이후 안산, 제주, 대구, 여수, 의정부, 용인, 인천, 마석, 김해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주노동자 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붑 알럼(31·방글라데시)씨는 "영화를 통해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조그마한 사실을 나누고자 한다"고 영화제의 취지를 설명했다.

개막 3일째인 오늘은 오전 11시부터 총 7개의 영화가 상영되고, 중간에 '아시아 영상활동가 네트워크 구성 및 교류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된 심포지엄이 끝난 후 다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집행위원장 마붑 알럼씨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 온 지 올해로 9년째라는 마붑 알럼씨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외국인 중에서 한국말을 가장 잘했다. 가끔 말끝을 흐리거나 목소리를 높일 때에도 그것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아트시네마 입구의 '이주 사진전'.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아트시네마 입구의 '이주 사진전'. ⓒ 최재인


다음은 마붑 알럼씨와의 일문일답.

- (시민기자 명함을 건네며)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어? 시민기자예요?"

- (소개 하다 말고 눈을 크게 뜨며) 네! 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아세요?
"알아요. 나도 시민기자 등록했었어요."

- 한국에 온 지 9년째라고 하셨죠? 처음부터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오셨나요?
"아니요. 다 똑같아요. 처음에는 일하려고 한국에 오죠. 영화나 방송 경험은 하나도 없었어요. 2004년에 명동성당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요구하는 천막농성 벌일 때 같이 먹고 자고 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없어졌어요. 죽고, 끌려가고…. 그런 친구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근데 지금도 힘들어요. 8월이 집중 단속기간이라 많이 잡혀가고 있어요."

-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생겨난 것은 불과 2년 전이고, 그전에는 '이주노동자의 방송'으로 활동해오셨는데요, '영화제'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주류 언론들, 이주노동자에 대해 제대로 다뤄주지 않았어요. 우리를 불쌍한 사람들로 바라보는 것도 잘못이에요. 그러면서 이주노동자가 직접 만드는 미디어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2004년 말에 '이주노동자의 방송'을 만들었어요. RTV(위성케이블 채널 '시민방송') 통해서 방송됐어요.

방송하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접할 수 있었어요.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인권영화제 같은 곳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다루긴 하지만 더 다양한 나라들의 이야기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한 군데 모을 공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영화제'였어요.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당사자가 얘기를 해야 가장 잘 전달될 수 있잖아요."

- 영화제의 슬로건인 '무적활극(無籍活劇)'은 무슨 뜻인가요?
"한국 땅의 이주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무적(無籍)'이에요. 죽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무적. 영화제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어두운 삶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활극(活劇)'적인 모습들에 주목하고자 했어요. 영화제가 이주노동자들 사이의 시끌벅적한 소통과 놀이가 가능한 활극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8월 31일부터 10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주노동자 영화제' 웹자보.

▲ 8월 31일부터 10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주노동자 영화제' 웹자보. ⓒ 이주노동자 영화제

- 영화제가 올해로 2회째인데, 1회 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요?
"관람객 수도 늘고, 자원활동가도 훨씬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다양한 파티, 문화행사도 있어요. 사진 전시, 밴드 공연 같은 거. 축제분위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영화도 섹션별로 나눠서 상영하고 있어요. 여성, 아동, 노동, 인권…. 이렇게 나눠서. 1회 때는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영화가 전부였는데 올해는 필리핀, 멕시코, 대만 등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나요?
"관객수는 늘어나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이주노동자들은 단속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지 못해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전국적으로 다 비슷한 상황이에요."

- 9지역(안산, 제주, 대구, 여수, 의정부, 용인, 인천, 마석, 김해)에서 영화제를 연다고 했는데, 지역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에요. 그리고 조직화되어 있는 곳. 상황은 조금씩 달라요. 안산은 관객도 많이 모이고 호응도 좋은데, 여수 같은 경우는 이번에(지난 2월) 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 생기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안 움직여요. 게다가 단속 때문에 다들 힘든 상황이에요."

- (작은 목소리로) 근데 왜 모든 영화가 무료상영이에요? 조금이라도 관람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후원해주시는 단체나 개인분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 두 달간의 영화제가 끝난 후의 활동계획은요?
"영화제를 자주 했으면 좋겠어요. 꼭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화가 소개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기획하고 있어요. '다문화 사회'라고 말만 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과 한국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주체가 되고 거기에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위해서 한국에 필리핀 상황도 알려야 하고, 말레이시아 상황도 알려야 하고…. 한국의 상황도 다른 나라에 알려야 해요. 그런데 한국에는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지 않고 있어요. 잘 사는 나라 문화만 소개해요. 사람들도 거기에만 관심 있고.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인도 전통축제를 방글라데시 축제로 잘못 표기한 것 보고 당황했던 적 있어요. 그런 식으로 잘못 알려지는 거 굉장히 위험해요."

 서울 아트시네부 실내에 전시되어있는 피켓들. 전국에서 실시중인 단속으로 인해 연행된 지역별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적혀있다.

서울 아트시네부 실내에 전시되어있는 피켓들. 전국에서 실시중인 단속으로 인해 연행된 지역별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적혀있다. ⓒ 최재인


 영화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자원활동가들이 피켓선전을 하고 있었다. 
"불법적 인간은 없다"와 "단속추방 싫어요" 등의 카드섹션이 이어졌다.

영화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자원활동가들이 피켓선전을 하고 있었다. "불법적 인간은 없다"와 "단속추방 싫어요" 등의 카드섹션이 이어졌다. ⓒ 최재인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아트시네마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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