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경기장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는 관중 동원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성남 일화 선수들은 비를 맞으며 연습에 몰두했다.

▲ 비가 내리는 경기장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기는 관중 동원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성남 일화 선수들은 비를 맞으며 연습에 몰두했다. ⓒ 이성필

구단의 초청으로 경기장을 찾은 여고생들의 빗속 세레나데가 알 카라마의 수비를 순간적으로 무너트리며 성남 일화의 역전승을 불러왔는가 보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성남이 19일 저녁 성남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시리아 알 카라마와의 경기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4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썰렁한 경기장을 달아오르게 한 성일여고 학생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경기장에는 장대비가 퍼부었다. 관중이 얼마나 경기장을 찾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 내 치열한 홍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해 다른 나라의 프로팀과 겨룬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날씨는 성남을 돕지 않았다.

 

경기 시작 20여 분을 앞두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유일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본부석을 제외한 관중석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텅 빈 경기장에서 상대팀을 불러놓고 외롭게 승부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였다.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빗속을 뚫고 줄줄이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소재 성일 여자고등학교 1, 2학년 학생 전원이 단체관람을 온 것이다. 약 1천 여명 되는 이들은 본부석 2층 왼쪽에 자리 잡고 성남을 상징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흔들며 응원했다.

 

이들의 환호성은 간접적으로 성남 선수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가장 큰 환호가 터진 것은 역시 국가대표팀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김두현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식사마' 김상식과 최근 한 탤런트와 결혼을 발표한 장학영, 골키퍼 김용대 등이 여고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성일여고 이지연(17) 학생은 "어떤 경기인지 잘 모르고 왔지만 성남이 무조건 이겼으면 좋겠다. '잘생긴' 김두현이 꼭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성남은 강력한 공세를 취하며 알 카라마를 압박했다. 여고생들은 성남의 공격에 맞춰 응원의 강약을 조율했다. 이들의 응원은 마치 빗속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11명의 성남 선수들을 위한 세레나데 같았다.

 

하지만 성남이 팬들의 세레나데를 즐기기까지는 73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성남의 무기인 패스가 빗줄기 탓에 제기능을 못했기 때문이다. 성남은 미끄러운 그라운드에서 패스 미스를 연발하는 등 어렵게 경기를 끌어갔다. 측면을 이용해 공격을 자주 시도하다 되려 전반 10분 알 카라마의 셍고르 쿠폴레니에게 행운의 골을 선사했다.

 

우리가 경기장 열기를 높인다! 경기 시작 10여 분을 앞두고 성남 지역의 성일여고 학생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았다.

▲ 우리가 경기장 열기를 높인다! 경기 시작 10여 분을 앞두고 성남 지역의 성일여고 학생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았다. ⓒ 이성필

 

달콤한 세레나데로 알 카라마를 무너뜨리다

 

생각보다 빠른 실점에 성남 선수들은 조급해졌다. 득점을 하기 위해 애썼지만 203cm의 장신 수비수 파비우가 버틴 알 카라마의 수비라인은 성남이 팬들의 세레나데를 즐기지 못한 두 번째 이유였다. 

 

보통 장신 수비수는 제공권은 좋지만 느리기 때문에 뒷공간을 노출하는 약점이 있다. 이를 알고 있는 파비우는 최대한 멀리 볼을 거둬내면서 제자리를 지켜 최후방 수비수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변형된 스리백 수비를 들고나온 알 카라마에 제격이었다.

 

이럴수록 여고생 팬들을 중심으로 한 성남 팬들의 세레나데는 더욱 힘차게 빗속을 뚫고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 결과 알 카라마의 수비는 성남 팬들의 세레나데에 홀려 서서히 무너졌고 후반 28분과 30분 김민호와 조병국에 연속 득점을 내주며 1-2로 패했다.  

 

경기 종료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학범 감독은 이들의 응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학생들의 응원이 굉장한 도움을 줬다. 이들의 응원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초청형식으로 경기장을 찾았던 성일여고 학생들은 성남이 보여준 역전극에 흠뻑 빠진 듯했다. 선수들이 인사하러 오자 큰 환호로 이들을 맞았고 김두현 등 유명 선수들이 손을 흔들어주자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여고생들의 이러한 반응은 전날(18일) 저녁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7 하나은행 FA컵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었다. 경기장 근처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대거 찾아 인천을 응원한 것.

 

이들을 프로축구 팬으로 확실히 만들어야

 

폭우에도 상관없어! 경기 내내 비를 맞으며 응원을 한 성남 서포터. 이들이 있기에 성남이 역전극을 펼친 것이 아닐까.

▲ 폭우에도 상관없어! 경기 내내 비를 맞으며 응원을 한 성남 서포터. 이들이 있기에 성남이 역전극을 펼친 것이 아닐까. ⓒ 이성필

특이한 점은 '반강제'로 끌려왔을 법한 일부 학생들이 전반전 종료 뒤 집에 가는 관례를 깨고 끝까지 경기를 관전했다는 점이다.
 
종종 국내 구단들은 초청형식으로 지역 학교 학생을 경기장에 불러모은다. 그러나 대개 학생들은 경기 중간에 빠져나간다.

 

더군다나 홈팀, 원정팀을 가리지 않고 알 만한 선수가 보이면 환호부터 하는 것은 대표적인 초청의 역효과다.

 

18일 인천-서울 경기에서도 경기시작 무렵 본부석과 건너편 관중석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박주영, 이청용 등 상대편의 '알 만한' 선수들이 전광판에 잡히자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들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인천 서포터가 자리한 골대 뒤로 옮겨 함께 응원하며 경기를 즐겼다. 인천 서포터는 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응원을 선사했다. 붉은 연막을 무려 10개 넘게 피우며 유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느 때보다도 응원 목소리는 컸고 인천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자 서로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이제 막 'FM'(풋볼 매니저)이나 '위닝 일레븐' 등 게임으로 축구에 눈을 뜬 남학생들에게는 실사가 무엇인지, 여학생들에게는 박재현이라는 인천의 젊은 스타가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경기였다.

 

빗속의 성남에서는 경기 종료까지 지붕 없는 골대 뒤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목이 터져라 응원한 성남 서포터가 관심이 되기도 했다. 최은영(17) 학생은 “골대 뒤에서 비 맞으며 응원하던 사람들이 걱정된다”면서도 “경기장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었다. 나중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서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고 격정적인 감흥을 털어놨다.

 

성남과 인천의 승리는 우연인지 몰라도 평소 학업에 찌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고장 팀을 응원한 결과 승리로 이어졌다. 경기 내용도 흥미롭게 이어지면서 잠재했던 이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또 다시 경기장을 찾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프로축구의 매력은 분명하게 느끼고 갔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일회성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2007.09.20 10:23 ⓒ 2007 OhmyNews
성남 일화 프로축구 김두현 챔피언스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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