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푸는 '프로'와 '중등' 선수들  부평동중학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프로 선수들. 맨 오른쪽이 김형일(대전시티즌)이고 빨간 상의를 입은 선수는 '제2의 홍명보'로 주목을 받았던 조용형(성남 일화)다.

▲ 몸 푸는 '프로'와 '중등' 선수들 부평동중학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프로 선수들. 맨 오른쪽이 김형일(대전시티즌)이고 빨간 상의를 입은 선수는 '제2의 홍명보'로 주목을 받았던 조용형(성남 일화)다. ⓒ 이성필

"자 그렇지 볼을 이렇게 패스하고. 야 이 녀석아! 그게 아니란 말이지."

 

대선배의 지적에 아이들의 눈빛이 순간 달라진다. 쉽게 받을 수 없는 지도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이들은 더욱 집중해 볼 하나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신중을 기한다.

 

이런 아이들을 향해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선배들은 엄하게 하면서도 농담을 건네며 긴장을 푸는데 주력했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훈련을 하는 시간이라지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는 모두 아깝지 않은 모양인 듯했다.

 

인천 출신의 프로선수들, 맨땅으로 돌아가다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개2동에 위치한 부평동중학교 운동장. 서른 명 안팎의 이 학교 축구부원들이 네 그룹으로 나뉘어 간단한 패스훈련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시선은 '부산 아이파크', '전북 현대' 등 프로구단들의 명칭이 새겨진 운동복을 입은 한 무리에 향했다. 다름 아닌 부평동중, 부평고 출신을 주축으로 뭉쳐진 인천 출신의 K리거들이었다.

 

조용형(24·성남 일화), 김형일(23·대전 시티즌), 이근호, 하대성(22·이상 대구FC), 한재웅(24·부산 아이파크)등 이들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올해 팀 훈련이 재개되기 전까지 휴식기를 맞이했지만 한시도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운동장으로 나왔다.

 

각종 시상식이 끝나고 12월 중순부터 시작한 훈련은 보통 스무 명 남짓 되는 인원이 모여 했지만 전날(26일) 상당한 강도의 훈련을 소화해 몸살이 난 선수도 있어 이날은 12명이 모여 연습을 했다.

 

개인훈련을 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거양득의 훈련은 올해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부평동중 신대균 코치는 "3~4년 전부터 선수들이 모여 훈련하다 보니 정착된 것 같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이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라며 선수들의 훈련을 반겼다.

 

잠시 뒤 세 팀으로 나뉜 이들은 15분씩 '간식비 내기' 미니게임을 했다. 돈과 간식이 걸린 승부 때문인지 올림픽대표팀 공격수 이근호는 특유의 돌파를 앞세워 '중학생' 수비진을 뚫고 득점에 성공하는가 하면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 돌풍의 중심이었던 수비수 김형일 역시 '중학생' 공격수들을 상대로 터프한 수비를 보여줬다.

 

경기를 지켜보던 부평동중 공격형 미드필더 이영성(15) 선수는 "TV에서 보던 선배들을 직접 보니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나중에 프로선수로 성공해서 후배들을 지도해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중학생 선수들의 이런 바람에 프로 선수들은 되려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줬다. "간식 먹을 때는 두 판에 만 원 정도 하는 피자 시키던가 통닭 먹겠다고 해라"는 식으로 선수들을 웃기는 등 훈련 분위기는 너무나 좋았다.

 

가위, 바위, 보 
미니게임에 앞서 선수선발을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선수들. 가장 오른쪽 이근호(대구FC)는 같은 팀 11년 지기 친구 하대성의 동생 하성민과 좋은 선수를 데리고 오기 위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 대전시티즌의 김형일이 성남 손대호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것은 이채로운 장면이다.

▲ 가위, 바위, 보 미니게임에 앞서 선수선발을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선수들. 가장 오른쪽 이근호(대구FC)는 같은 팀 11년 지기 친구 하대성의 동생 하성민과 좋은 선수를 데리고 오기 위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 대전시티즌의 김형일이 성남 손대호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것은 이채로운 장면이다. ⓒ 이성필

'프로선수' 이근호도 '얼굴'과 '이름'을 팔아 공을 빌려야 했다  

 

그러나 축구 명문교에서 이뤄진 프로선수들의 훈련은 열악하고 안타까웠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자 구름이 끼어 흐렸던 운동장은 이내 어둠이 드리워져 공과 사람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결국, 김형일은 상대편 선수와 충돌해 발목이 삐끗했는지 경기를 포기한다며 밖으로 나와 주저앉고 말았다.

 

부평동중의 신 코치는 "(잔디를)깔아야 할 곳에 안 깔고 엉뚱한 곳에 깔아서 생긴 결과"라며 행정기관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평동중은 김남일, 이천수, 김정우 등 현재 대표급 선수들을 배출한 인천 지역의 대표적인 축구 명문교다. 

 

그러나 시설 사정이 좋지 않아, 이들은 부평고와 인근의 삼산 월드체육관 옆 인조잔디구장, 문학 월드컵 보조구장 등 잔디와 조명시설이 갖춰진 곳을 전전하며 훈련했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삼산 체육관 인조구장에서 연습을 위해 모였던 이들은 공이 없어 훈련을 못 하고 있었다. 선수들 중 그나마 인지도가 있던 이근호가 마침 옆 구장에서 훈련을 끝내고 돌아가던 청학중학교 축구부에 '얼굴과 이름을 팔고' 나중에 꼭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공 세 개를 빌려 훈련할 수 있었다.

 

개인훈련을 하는 선수들의 입장도 천차만별이었다. 대구FC 하대성의 동생 하성민(21)은 지난 2006 드래프트 6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지만 1군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올해가 인천에서 뛸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그 외에도 팀과 계약이 해지되어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등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이런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팀 훈련이 재개되는 순간까지 운동에 열중했다. 지난해 아쉽게 신인왕을 놓친 김형일은 "어린 선수들과 같이 앞으로도 계속 훈련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올 시즌 팀의 좋은 성적에 일조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휴가기간에도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개인 훈련을 꾸준히 해 올 시즌을 대비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기다릴지 주목해 볼 일이다.

2008.01.04 18:19 ⓒ 2008 OhmyNews
이근호 김형일 부평동중 프로축구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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