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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는 주인공이 없다. 손을 번쩍 들며, 배우 문소리(한미숙)와 김정은(김혜경)을 외칠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면 둘은 여럿 중 하나로 자연스레 스며든다.

"핸드볼은 단체 경기야"라는 영화 속 대사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임순례 감독도 "나와 7명의 선수뿐만 아니라 14명의 후보 선수들까지 모두 주인공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다.

'스타'가 없는 스포츠 영화, 왠지 맨송맨송해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개그맨 지상렬 어록에 빗대면, "'우생순', 강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불붙은 말 꼬랑지처럼 톡톡 튀는 주연 겸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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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요? 소~옹 저엉 라입니더." (저요? 송정란입니다)

'우생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단연 '김지영'이다. 영화 홍보 전선(戰線)에서 살짝 뒤로 물러난 탓인지, 그의 출연은 살짝 의외였다. 미안하지만, 출연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뽀글뽀글 파마머리 아줌마, 그는 단박에 관객을 매료시켰다. 비결은 걸걸한 입담이다.

"뭐야~ 이 덩어리들은!"
"앞으로 한번만 우리 애들 건들면 콱 직이 삔다."

거칠지만, 말에는 후배들의 사랑이 녹아 있다.

또 남편 '성지루'(진국 역)와 함께 닭살 행각을 펼치며, 큰 웃음 '빵빵' 터뜨린다. 항상 웃지만, 사실 그는 대표팀 선발에서 턱걸이로 떨어졌던 진정한 2인자다. 피해의식에 빠져 의기소침할 것 같지만, 씩씩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같다.

한편 골키퍼 '조은지'(수희)는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이어 김정은과 호흡을 맞췄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세 아줌마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엄태웅'은 이전의 '엄포스'의 카리스마는 없다.

그냥 '싹퉁 머리 없는' 유학파 젊은 대표팀 감독이다. 아줌마 삼총사와 대립각을 이뤄 부대끼며 사람의 매력을 서서히 알아가는 모습이 꽤 볼만 한다. 신세대 유망주 보람 역을 맡은 '민지'는 출연자 평균 나이를 껑충 끌어내려 영화가 칙칙해지는 것을 막았다.

실화가 주는 '감동'

'우생순'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팩션'(faction)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에 올랐지만,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심판의 편파 판정은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동그랗게 모여 눈물을 흘렸다. 보는 이들에겐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이 커 보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는 안타까움에 더 서러워했을지도 모른다.

팀 사령탑 임영철 감독은 승리 소감을 밝혔다. "선수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팀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감정이 북받친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못 본 이들은 걱정할 것 없다. 영화 말미에 실제 인터뷰 영상이 이어진다. 끝까지 꼭 챙겨 볼 것.

절제된 영상 미학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인 '승부 던지기'. 팀 내 가장 실력이 좋은 미숙(문소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알고 있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분명 실패한다. 관객도 이미 알고 있다. 불과 10여 초 사이, 머리가 복잡해진다. '자칫 이 장면 하나로 모든 비난이 미숙에게 쏠릴 수도 있다. 급기야 실제 주인공에게도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자, 감독의 선택은 과연?'

이때 절제된 영상이 힘을 제대로 냈다. 카메라는 골대를 향하지 않는다. 미숙의 얼굴을 걸고 덴마크 팀의 벤치를 흐릿하게 잡아낸다. 소리(BG)는 모조리 뺐다. 고요한 정막이 몇 초간 흐르다, 멀리서 사람들이 펄쩍 뛰는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보인다. 앞에 잡힌 미숙의 얼굴도 조금씩 일그러진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 모습과 대조적으로, 절제된 느린 영상은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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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팩션(faction)=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말한다.

이 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김지영 임순례 김정은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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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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