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등장인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등장인물 ⓒ MK 픽쳐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개봉 3주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눈물 흘리게 한 바로 그 영화, <우생순>은 200만이라는 관객수만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이 영화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 사회에 따끔한 충고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 사회에 대한 약자의 투쟁을 다룬 영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면 단연 '축구'를 떠올릴 수 있다.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룬 외국인 감독은 '명예국민'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등에 업고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우리나라에서 '축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우리나라 '핸드볼'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기적과도 같은 올림픽 메달과 명승부를 수없이 보여줘 왔지만, '명예'를 찾기에 앞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주류 스포츠 '축구'에 대립하는 '핸드볼'이라는 소재의 의미화는 비주류, 소수자, 약자 그리고 여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영화는 대다수의 스포츠 영화가 가진 남성적 방식의 전개를 거부한다. 즉 핸드볼 시합이 중심이 아니라 핸드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인 여타의 스포츠 영화가 가진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스포츠 자체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가 가진 인간의 소외 문제를 되짚고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켜 온 기득권과 주류 문화에 날카로운 비판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덴마크전의 승패 여부와 관계 없이 이미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어야 하는 여성, 이혼한 여성, 불임 여성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덴마크가 아닌 그들을 억압하는 기득권 사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생순>은 여성의 관점, 더 나아가서는 약자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안승필과 이명박, 공통점과 차이점

 안승필 감독 역의 엄태웅

안승필 감독 역의 엄태웅 ⓒ MK 픽쳐스

극 중 새로 부임한 안승필 감독은, 팀워크를 강조하는 기존의 핸드볼을 부정한다. 전술 훈련 대신 무빙 센서와 컴퓨터 등의 최첨단 장비들을 도입해 선수들의 자세를 분석한다. 각종 기구를 이용한 근력 및 체력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뒤처지는 선수는 과감히 제명하겠단다.

선수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해 능력을 한층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안승필 감독의 방침은 낯설지가 않다. 자신이 마음먹은 일은 밀어붙이고야 마는 그의 성격까지도,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너 생리 중이라고 왜 말 안 했어?" 경기를 마친 후, 혜경이 한 후배 선수에게 묻는다. 청소년 핸드볼부와의 평가전에서 패배한 직후다. 그 후배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어떻게 말해요…. 말하면 분명히 엔트리에서 뺄 텐데…."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미숙은 안승필 감독을 찾아가 소리친다. 선수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 이야기들을 들어보려 한 적이나 있느냐고. 그에 대해 승필은 "내가 왜 그걸 알아야 되지?"라고 반문한다.

안승필에게 중요한 것은 올림픽에 나가서 이기는 것이었고, 인간적 이야기가 낄 자리는 없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을 같이 안고 가려는 노력 없이 능력과 효율을 주장하며 선수들을 줄 세웠던 안승필 감독의 방침은, 생리 중인 여성이 그저 꾹 참고 뛰어야 하는 위험한 상황까지도 초래했다.

이런 갈등을 뒤로 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승필과 선수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무엇이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을 가져다주었는가. 안승필 감독의 능력 위주의 훈련 방침? 그가 도입한 최첨단 장치들? 해답은 그 정반대이다. 그가 자신의 고집에서 탈피하면서 모든 상황들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안승필 감독의 변화는 혜경과의 달리기 시합에서부터 시작된다. 선수촌을 무단이탈한 미숙의 제명 여부를 두고 혜경과 승필은 달리기 시합을 한다. 비가 오는 산길을 뛰어가는 약 1시간 가량의 접전 끝에 결국 혜경은 패배하고 미숙과 더불어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안승필 감독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의 원칙대로라면 미숙과 혜경을 비롯한 선수들을 제명해야 하지만 안승필 감독은 떠나려는 그들을 붙잡는다. 달리기 시합 도중,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를 자세히 파헤쳐 보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일화를 시작으로 안승필의 변화된 모습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숙이 팀에 복귀할 때, 미숙의 남편이 승필을 찾아왔을 때, 안승필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안승필 감독은 가졌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점이 불러올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앞서는 사회에선,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살아남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를 좇고 효율성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더 중요한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 영화가 그려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흘린 눈물 속에, 그 이해가 담겨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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