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지구력 테스트  15일 오후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축구 전임심판들의 체력테스트. 바람이 심하게 불고 기온도 영하였지만 뜨거운 땀이 추위를 물러가게 했다.

▲ 근지구력 테스트 15일 오후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축구 전임심판들의 체력테스트. 바람이 심하게 불고 기온도 영하였지만 뜨거운 땀이 추위를 물러가게 했다. ⓒ 이성필


운동장 육상 트랙을 돌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바퀴 수가 늘어날수록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래도 누군가 큰 목소리로 "아자자"를 외치자 서로 격려하며 흔들림 없이 트랙을 돌았다.

15일 오후 2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가운데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 전임심판들의 체력테스트가 열렸다. 순발력과 근지구력을 측정하는 이날 체력테스트에는 오는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심판으로 배정된 최명용 주심, 양병은 부심을 제외한 34명(주심 17명•부심 17명)이 참가했다.

FIFA의 엄격한 기준 속에 심판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

육상 트랙 한구석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깃발을 들고 후배들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격려하던 그는 바로 지난해까지 K리그 주심으로 활동했던 권종철(45) 전 국제심판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프로연맹 심판위원 자격으로 나와 있었다. 은퇴 후 심판 행정 관련 공부를 하겠다던 목표를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관리하는 모든 경기에 심판을 배정하는 배정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남자 심판으로는 최초로 AFC(아시아축구연맹) 심판 강사 및 감독관 활동도 시작했다.

권 위원은 "지난 1월 AFC 심판 테스트에서도 58명 중 14명이나 탈락했다. 그만큼 고된 테스트"라며 "체력이 안 돼서 그만두는 심판도 부지기수다. 그 정도는 해야 살아 남는 게 심판세계다"라며 후배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를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첫 도입 된 FIFA(국제축구연맹) 테스트 매뉴얼을 기준으로 먼저 순발력 측정이 시작됐다. 7~8명씩 주, 부심별로 두 개조로 나뉘어 최대 속도로 40m를 달린 뒤 90초의 휴식을 총 6회에 걸쳐 반복한다. FIFA 기준대로 주심은 6.2초, 부심은 6.0초 이내 통과해야 한다. 국내 기준은 주심 6.4초, 부심 6.2초다. 첫 번째에서 실수, 탈락하면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지만 한 번 더 실수를 하면 탈락한다.

잠깐의 휴식 후 이어진 두 번째 테스트 지구력 측정은 그야말로 '사람 잡는' 훈련이다. 150m를 달린 뒤 50m를 걸으며 힘을 비축하는 형태로 총 20회를 실시, 총 4km를 21분 40초 안에 통과해야 한다. 주•부심 모두 150m를 30초 안에 달린 뒤 35초(주심), 40초(부심) 내에 50m를 걸어 통과해야 한다. 국내 기준과 다르다면 50m 걷기가 5초 줄었다는 것. 그만큼 쉴 틈을 주지 않는 훈련이다.

개인 훈련을 철저히 했기 때문인지 낙오자 없이 전원 무사통과 했다. 테스트 현장을 찾은 김용대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심판들도 싫어하는 게 있다면 체력 테스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들 열심히 개인 훈련을 했을 것"이라며 심판들을 격려했다.

스타 심판이 나오려면...

물 아끼는 심판들   물, 이온음료 하나는 이들에게 소중하다. 버리지 않고 모아 담아 가져가는 심판들. 경기장에서는 때로 비판과 항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묵묵하게 뒤에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최광보(좌), 이영철(우) 주심.<지난해 체력테스트 사진>

▲ 물 아끼는 심판들 물, 이온음료 하나는 이들에게 소중하다. 버리지 않고 모아 담아 가져가는 심판들. 경기장에서는 때로 비판과 항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묵묵하게 뒤에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최광보(좌), 이영철(우) 주심.<지난해 체력테스트 사진> ⓒ 이성필

이번 테스트 인원 가운데는 지난 2005년 전임심판으로 활동했지만 이듬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아픔이 있는 이기영(43)씨를 비롯해 유상일(39), 매호영(37)씨 등 세 명의 주심과 이현웅(42), 양병은(32)씨 두 명을 포함, 총 다섯 명의 새로운 피가 수혈됐다.

이들은 지난해 은퇴한 권종철 위원, 김계수, 김화수 부심과 내셔널리그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긴 강창구 부심 및 각종 심판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탈락한 인원들이 생겨나면서 K리그 심판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19년차였던 권 위원의 은퇴로 1990년 심판에 입문한 이상용(47) 주심이 최선참이 됐다. 바로 아래는 13년을 심판으로 생활하고 있는 안상기(50) 부심이다. 7년 차에 접어드는 최광보(39) 주심이 중간급으로 굳은 일을 도맡아가며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축구팬들에게 익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상용 주심은 '최고 경력자'로 안상기 부심은 '대머리', 최광보 주심은 '훤칠한 외모'에 '깔끔한 판정'으로 심판계의 '스타'라면 스타다.

하지만,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피에르루이기 콜리나(이탈리아) 전 주심이나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인 안데르스 프리스크(스웨덴) 주심처럼 모든 이의 동의와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늘 판정시비에 시달리고 팬들의 수없는 인신공격으로 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축구에서 스타 심판이 양성되기는 힘든 면이 있다. 계약기간도 9개월밖에 안된다.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자비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나마 권종철 위원 같은 사례는 심판들에게 '판관'으로 걸어가는 희망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김용대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은 "스타성이 있는 좋은 심판이 은퇴해서 아쉽다. 그래도 후배들이 따라가야 할 모델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김 전 위원장의 평가에 권 위원은 손사래를 치며 "스타심판이 나오려면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협회나 연맹도 생각을 바꿔 큰 경기에 배정해 화젯거리를 생산해야 한다. 선수들도 심판을 믿어줘야 한다. 언론이나 팬들 역시 신뢰로 심판들을 바라봐야 한다"라며 축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은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리는 전지훈련에 참가해 각종 교육을 이수하면 전임심판으로 계약, 3월 8일부터 개막하는 K리그에 투입된다.

힘든 가운데 테스트에 참가한 모든 심판들은 K리그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매체의 발달로 안방에서도 해외 축구를 '리모컨' 하나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졌지만 K리그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이들은 분명 K리그를 지탱하는 '숨은 별'들이다. 조금 더 환하게 빛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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