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입장임에도 링사이드에 빈자리가 많았다.

무료입장임에도 링사이드에 빈자리가 많았다. ⓒ 이충섭


23일 충남 천안시 천안북일고등학교 체육관 특설링에서 벌어진 'PABA 범아시아 미들급 타이틀매치'는 지난 12월 25일에 있었던 최요삼 선수의 사고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경기였다.

따라서 선수안전관리시스템 개선에 관해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의료체계뿐 아니라 총체적인 여러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켜주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개선되지 않은 선수 건강검진... "대충 적어"

1시간 전에서야 이루어진 건강검진은 건강검진표와 같은 구두 질문과 혈압 측정과 개안 검사가 전부였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뇌 CT 촬영까지는 못하더라도 일주일 전에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23일에 있었던 6경기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는 외국인 선수가 2명 있었다. 그 중 캐나다 출신 선수에게는 "술(Drink)?" "담배(Smoke)?" "아픈 곳은(Sick)?" 등으로 질문을 하긴 했지만, 과거에 아팠는지 지금 아픈 데가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구분이 안 된 질문이었다.

그나마 메인경기였던 범아시아복싱협회(PABA) 타이틀전에 출전했던 태국 선수와는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됐다. "대충 적어"라는 말과 함께 담당의사가 알아서 표기하는 모습이었다.

 비영어권 선수와의 의사소통은 전혀 안 됐다.

비영어권 선수와의 의사소통은 전혀 안 됐다. ⓒ 이충섭


선수와 관중을 배려하지 않고서는 흥행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프로 복싱 경기 때마다 느끼는 것은 협회임원 내지는 지역유지들이 정말 많다는 것과, 경기 진행이 이들 위주로 진행된다는 것. 링사이드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이들을 위한 소파가 마련되어 있고, 시합 직전까지도 링 위에서는 격려금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 탓에 선수 얼굴을 보기 힘들다. 경기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작 멋진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선수가 대기하는 라커룸은 어떤 모습인가? 이 곳에서 6명의 출전 선수와 최소 6명의 코치가 대기해야 했지만 양복 입은 사람들과 또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까지 북적대는 통에 선수들은 경기장 뒤쪽에서 시합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사진에는 잘 잡히지 않았지만 왼쪽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까지 있어서 좁은 라커룸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이날 경기를 치렀던 여자 선수들에게는 그나마 라커룸조차 따로 없었다.

필리핀 세부의 카지노 호텔로 원정시합을 다녀왔던 현 한국 챔피언 문병주 선수가 "선수 대기실에는 선수와 트레이너 외에 절대 들어올 수 없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는 극도로 긴장되고 예민하다"며 "이것이 대전료 100억짜리 선수 파퀴아오를 배출한 필리핀 복싱과 한국 복싱의 차이" 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시합 직전의 선수 라커룸 모습

시합 직전의 선수 라커룸 모습 ⓒ 이충섭


"관중이 많이 오면 손해가 난다"

이날 경기는 무료입장이었다. 경기장 입구에선 입장권을 받는 사람 대신 한나라당 천안지역 경선후보자의 명함을 나눠주고 있었다. 무료 입장임에도 경기장은 협회임원들과 선수를 응원하려 참가한 일행 외에 일반 관중을 찾기 힘들었다.

이왕 무료입장을 할 것이었으면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홍보를 해서 관중 동원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장충체육관에서 1만6000명이 넘는 유료관중을 기록했던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경기의 링사이드 입장권은 무려 110만원이었음에도 매진됐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복싱 관계자는 "경기를 주최한 입장에서는 어차피 KBS 중계방송료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관건이므로 오히려 많은 사람이 찾으면 진행요원과 부대시설들 설치 관리로 인해 더 손해가 나기 때문"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전했다.

경기만 벌어지면 관중이 알아서 찾아오던 시대의 방식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복싱 퇴조의 또 다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중계권료와 소수 지역유지의 후원금으로 수입을 삼으려만 하고, 무료 경기를 벌이면서도 관중확보는 뒷전이라면 복싱은 점점 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도록 자초하는 격이 된다.

링사이드의 VIP 석은 수십명씩이나 되는 협회임원들이나 원로들이 장악할 것이 아니라, 일반 팬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라도 제공해서 복싱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는 비싼 값을 주고서도 경기장을 기꺼이 찾을 것이 아닌가.

정체모를 세계 타이틀전 보다는 신인왕전이 더 중요

2월 23일 천안 경기 포스터 선수들 머리 위에 있는 후원인들의 모습이 상징적이다.

▲ 2월 23일 천안 경기 포스터 선수들 머리 위에 있는 후원인들의 모습이 상징적이다. ⓒ 이충섭

바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다. 23일 메인경기로 펼쳐진 PABA 미들급 잠정타이틀 매치에 출전해서 수준 이하의 경기를 보여준 태국의 타라차이 무앙수린 선수는 한국권투위원회가 발행한 선수프로필에 랭킹이 없고 'PABA 승인 사항'이라고만 나와 있다. PABA 회장은 한국의 심양섭 회장이다.

난립하는 정체 모를 타이틀 챔피언을 위해 수준 이하의 국제시합을 개최하는 것은 복싱팬들을 기만하고 스스로 한국복싱의 수준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70∼80년대 군부독재시절 스포츠를 국력과 애국심에 호소했던 빗나간 관치 스포츠의 구태를 털어내야 한다.

24일 벌어졌던 K-1 아시아 맥스 서울 대회에서 세계 최강 쁘아까오 포 프라묵 선수에 맞서 비록 세 차례의 다운 끝에 KO로 패했지만, 최고의 기량에 맞선 김준 선수의 투혼은 그런 의미에서 빛이 난다.

세계 챔피언도 스스로 벨트를 반납하고 K-1으로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챔피언과 체급별 10명의 선수 랭킹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선수 확보가 어려운 한국복싱은 세계 타이틀전도 중요하지만, 선수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신인왕전 개최가 더 의미있다. 2006년 이후 개최되지 못하고 있는 신인왕전부터 착실히 기획해 선수와 관중을 확보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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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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