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극장가의 가장 큰 화제다. 벌써 200만을 넘겼다는 소식이 나오고 '천만 관객' 운운하는 영화 기자들의 설레발 치는 기사가 포털을 채우고 있다.

사실 <놈놈놈>이 큰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한국영화에서 드문 장르인 웨스턴 영화라는 것과 그 영화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이 만든다는 것이었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캐스팅도 흥미였지만 뭐니뭐니 해도 관심의 중심은 김지운이었다.

1998년 코미디에 공포를 가미한 <조용한 가족>으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던 김지운은 이후 코미디(반칙왕), 공포(메모리즈, 장화 홍련), 느와르(달콤한 인생) 장르의 작품을 연달아 선보인다. 특히 2005년에 만든 <달콤한 인생>은 세련된 스타일의 느와르 액션영화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던 경험도 있었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이만희, 그리고 만주

느와르를 선보였던 김지운은 '만주 웨스턴'에 시선을 돌린다. 감독은 이 영화의 모티브를 70년대 이만희 감독이 만든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모티브를 가지고 만든 영화의 제목은 바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목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그대로 번역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놈놈놈>은 겉모습부터 마카로니 웨스턴을 이끈 세르지오 레오네와 만주 웨스턴을 창조한 이만희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채워져 있다.

알다시피 <놈놈놈>의 배경은 1930년대 만주다.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하면서 성공을 위해 조선을 떠난 이들이 정착한 곳이며 돈을 노리는 마적단의 약탈이 기승을 부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을 지배한 일본이 아시아 정복을 위해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던 곳이 바로 만주다.

그리고 그 만주에 현상금 사냥꾼인 도원(정우성 분), 살인청부업자 창이(이병헌 분), 열차도둑 태구(송강호 분)가 있다. 일본인 가네마루가 가지고 있던 보물지도를 계기로 세 사람의 대결이 펼쳐지고 마침내 누가 최고가 되느냐를 가리는 마지막 결전이 치뤄진다.

이들은 분명 조선 사람이지만 조선의 독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과 보물, 그리고 '최고'의 자리다.

'골드러시'와 비슷했던 30년대 만주 이야기

도원의 캐릭터는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거의 흡사하다. 정의 수호니 독립이니 하는 건 상관없다. 그저 현상금이 걸려있는 범죄자들을 잡고 상금을 받는 게 그의 일이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는 도원(정우성)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는 도원(정우성) ⓒ CJ엔터테인먼트


태구는 또 어땠나? 그는 "일본이 지배하나 조선이 지배하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저 보물을 찾아서 할매와 불란서에 갈 생각, "고향에서 소도 키우고,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하는 생각 밖에는 없다.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곳이 바로 만주다.

지금 소개한 만주, 그리고 등장인물의 모습이 '골드 러시' 이후의 미국 서부 개척시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만희의 '만용'이 가능했던 것도, 그리고 김지운이 21세기에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킬 수 있었던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김치 웨스턴'이라고 칭하지만 이 말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다. 서부 영화의 새로운 장르로 인식된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이름은 단순히 이탈리아 영화인이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서부극의 주내용인 영웅담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누가 선인인지 악인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면서 서부극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에 '마카로니 웨스턴'은 새로운 장르로 각인된 것이다.

그러나 <놈놈놈>은 배경만 다를 뿐, 서부극의 공식을 뒤집는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를 충실히 따랐던 영화였다. 다만 코믹한 부분만을 추가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함부로 '김치 웨스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영화를 지나치게 띄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김치 웨스턴'? 아직 아니야!

김지운은 자신의 액션 취향을 곳곳에 드러낸다. 도원이 보여주는 액션은 웨스턴의 총잡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창이의 모습은 느와르 액션을 연상시킨다. 태구가 객주에서 벌이는 추격신은 성룡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단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단 ⓒ CJ엔터테인먼트


뭐니뭐니해도 클라이맥스에서 세 주인공과 마적단, 일본군이 펼치는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놈놈놈>은 이처럼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영화를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세 주인공의 개성있는 캐릭터 또한 영화를 인상깊게 만든다.

그러나 이 세 주인공에 비해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만주는 보물을 노리는 이들이 득시글대는 곳이다. 마적단도 그렇고 아편굴을 운영하는 재식(손병호 분)도 그렇고 모두 보물을 노리고, 한탕을 노리는 자들이다. 이들의 에피소드가 좀 더 필요하지 않았나는 생각도 든다.

주변 인물 덜 부각시킨 점 아쉬워

<놈놈놈>은 멀게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이만희가 있지만 가까이로는 김지운의 전작 <달콤한 인생>의 영향도 있다. 이병헌이 연기한 창이는 같은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선우'에게 카리스마를 입힌 카랙터이며 태구의 뒷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등장신과 열차 총격전 장면 또한 이미지가 비슷하다.

심지어 창이가 태구의 짝패인 만길(류승수 분)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과 그 때 비가 쏟아지는 설정도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가 손가락을 잘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달콤한 인생>은 <놈놈놈>을 위한 시험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창이(이병헌)의 모습은 같은 배우가 연기한 <달콤한 인생>의 선우를 연상시킨다

창이(이병헌)의 모습은 같은 배우가 연기한 <달콤한 인생>의 선우를 연상시킨다 ⓒ CJ엔터테인먼트


<놈놈놈>은 한국영화계에서 잊혀지고 있었던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켜 관객들이 액션을 즐기도록 만든 '김지운표 액션 정식'이다. 또한 <놈놈놈>은 김지운의 욕심을 드러낸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의 다양화를 추구했던 김지운은 느와르에 이어 웨스턴까지, 한국영화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장르들을 건드렸고 그로 인해 소재 빈곤 타령만 일삼는 한국영화에 하나의 빛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쇠사슬을 끊어라>를 만든 이만희 감독도 웨스턴, 전쟁물, 공포,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했던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김지운은 이 영화를 기점으로 제2의 이만희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은근히 설렘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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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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