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마냥 풋풋한 동화 한 포기가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바다 속이면 바다 속에서, 육지면 육지에서, 인어 모습이면 인어인 그대로, 인간 모습이면 재롱떠는 아이로, 너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포뇨, 요 조그만 아가씨가 자꾸 마음에 밟힙니다.

 

영화를 본 한참 후에도 그 아름아름한 잔상들이 못내 제 머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아니 제가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자꾸 붙잡습니다. 저 같은 설늙은이는 나이를 한참 깎아놓고 보아야 즐길 수 있는 영화, 동화도 아주 어린아이들이 봐야 마땅한 애니메이션 동화입니다.

 

근데 전 이 영화가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떠나보내지 못하는 잔상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네요. 아직도 파득파득 포뇨가 내 앞에서 팔딱이며 생동감 넘치는 재롱을 떱니다. 한입 가득 소스케의 얼굴을 향하여 뿜어대는 물줄기에 제가 맞은 듯 얼굴이 촉촉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동화의 세계로

 

 “포뇨는 소스케가 좋아!”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소스케의 사랑 또한 놓치면 안 됩니다. 둘의 무궁무진하고, 천진난만하고, 알뜰살뜰하고, 알쏭달쏭한 사랑, 그 속에 동화의 모든 것이 숨어있습니다.

“포뇨는 소스케가 좋아!”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소스케의 사랑 또한 놓치면 안 됩니다. 둘의 무궁무진하고, 천진난만하고, 알뜰살뜰하고, 알쏭달쏭한 사랑, 그 속에 동화의 모든 것이 숨어있습니다. ⓒ 지브리

앙증맞은 포뇨 아가씨가 한눈에 반하도록 만들고 맙니다. 너무 삭막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거리를 걷고 있기 때문일까요? 뾰족뾰족 솟은 빌딩 숲이 금방이라도 넘어와 덮칠 듯 요란스럽기 때문일까요? 온갖 잡스런 인간 군상들이 내지르는 소음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계들이 발산하는 피비린내 나는 매연이 메스꺼워서일까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 대조적인 세계의 표현과 표정, 그리고 색깔들이 영화에서 걸어 나와 제 손을 잡네요. 어찌나 그 손이 따스한지. 손 한번 잡히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빼앗길 지경이군요. 첫 장면서부터 환상 같은 바다 속 해맑은 해파리들의 유영이 화면 가득입니다. 어린 시절 그다지 만화를 본 기억이 없는 저로서는 이런 환상 자체가 생경스런 것이었습니다.

 

장면들이 원색의 바다 풍경과 유영하는 각종 어류들로 넘어가면서 훈풍이 부는 듯, 점점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내용이 단순합니다. 장면들이 깔끔합니다. 악과 선의 대조도 명확합니다. 그러나 굳이 악이 악답지 못하군요. 너무 극악무도한 인간들 사이를 헤치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영화에서 악인으로 등장하는 포뇨의 아빠는 그리 악인이 아닙니다. 결국은 딸 포뇨의 소원대로 인간이 되도록 해주고 마니까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 소녀 포뇨는 바다에서 사는 게 싫증이 났습니다. 제가,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사는 게 싫증이 나듯. 그녀는 계속 육지를 동경합니다. 아니 분명히 육지를 동경했다기보다 바다 아닌 세계로의 탈출을 꿈꿨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듯합니다.

 

급기야 아빠 몰래 늘 동경하던 육지로 가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해파리를 타고 육지로 올라온 포뇨는 그물에 휩쓸려 유리병 속에 갇히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때마침 바닷가에 놀러 나온 소년 소스케의 도움으로 구출됩니다. 이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인연이란 원래 우연을 가장하죠.

 

따분한 일상 탈출해 볼까요?

 

 “따분한 바다는 싫어!” 그녀는 단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더 넓은 세상이 전개되게 되지요.

“따분한 바다는 싫어!” 그녀는 단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더 넓은 세상이 전개되게 되지요. ⓒ 지브리

"따분한 바다는 싫어!"

 

그녀는 단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더 넓은 세상이 전개되지요. 물론 소스케 소년 또한 포뇨 때문에 마냥 행복한 나날들을 보냅니다. 어느 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 온 인어 아가씨 포뇨, 그녀를 사랑하는 소스케, 그런 소스케를 사랑하는 포뇨, 그리고 난폭운전자의 대명사 소스케의 엄마, 이들의 벼랑 위의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포뇨는 소스케가 좋아!"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소스케의 사랑 또한 놓치면 안 됩니다. 둘의 무궁무진하고, 천진난만하고, 알뜰살뜰하고, 알쏭달쏭한 사랑, 그 속에 동화의 모든 것이 숨어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긴 잇속이란 게 없습니다. 거긴 선입견이란 게 없습니다. 거긴 물욕이란 게 없습니다.

 

그냥 앞에 있어 좋습니다. 함께이기에 좋습니다. 인어와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그게 실현될 수 없는 이야기면 어떻습니까? 따분한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데요. 오늘도 욕심들이 무더기로 헤집고 다니는 피비린내 나는 삶의 현장에서 잠시 눈을 들어 소망을 볼 수 있다면, 분명히 포뇨는 소스케에게 그렇듯 우리들에게도 낭만이요, 사랑이요, 행복일 게 분명합니다.

 

'포뇨루'(ポニョる)한 사람 어디 없을까요?

 

 어느 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 온 인어 아가씨 포뇨, 그녀를 사랑하는 소스케, 그런 소스케를 사랑하는 포뇨, 그리고 난폭운전자의 대명사 소스케의 엄마, 이들의 벼랑 위의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느 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 온 인어 아가씨 포뇨, 그녀를 사랑하는 소스케, 그런 소스케를 사랑하는 포뇨, 그리고 난폭운전자의 대명사 소스케의 엄마, 이들의 벼랑 위의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지브리

<벼랑 위의 포뇨>는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제 한국의 관객을 매료시킬 차례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포뇨송'은 이미 일본에서 인기 만점의 노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주인공 포뇨의 귀여움을 그대로 전하는 '포뇨처럼 귀엽다'(포뇨루, ポニョる)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으니까요.

 

세상이 너무 악의에 차 있습니다. 복잡합니다. 자기주장만 강합니다. 이기주의로 꽉 차 있습니다. 영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손해 보고는 못 삽니다. 압제를 써서라도 자신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민주주의가 실종되었습니다. 글쎄 국회에 해머와 소화기 분말 싸움이 벌어졌다지 않습니까. 그네들이 이 영화를 보고 순진무구함을 닮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다했습니다.

 

작은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이'를 기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세상에 포뇨 같은 순진무구함이 사르르 스며들게 하면 어떨까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해석한 지브리 스트듀오표 인어공주 포뇨에게 한번 빠져봄직 합니다.

 

"귀엽네. 귀엽네, 무척 귀엽네."

 

 예, 그렇습니다. 단순하지만 바보스럽지 않은, 명료하지만 의미 없지 않은, 원색적이지만 촌스럽지 않은,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지만 잘난 체하지 않는, 그런 귀여운 아가씨. 무료한 삶에 웃음을 던지고, 지루한 삶에 소망을 던지는, 그런 귀여운 아가씨. 우리네 주위에선 찾아 볼 수 없을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벼랑 위의 포뇨>는 제게는 상징과 상상의 무한대, 바로 그것입니다. 무한정한 행복의 세계를 향한…. 조금은 머리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좀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머리를 굴리는 인간들에게 단순함이 주는 촌철살인과는 같은 의미도 있는 법. 그냥 우리의 귀염둥이 포뇨와 함께 가슴 열고 단순해지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벼랑 위의 포뇨>는 제게는 상징과 상상의 무한대, 바로 그것입니다. 무한정한 행복의 세계를 향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벼랑 위의 포뇨>는 제게는 상징과 상상의 무한대, 바로 그것입니다. 무한정한 행복의 세계를 향한…. ⓒ 지브리

덧붙이는 글 | <벼랑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야마구치 토모코, 아마미 유키 출연/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쇼박스 (주)미디어 플렉스 배급/  2008년 12월 17일 개봉

이 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20 16:5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벼랑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야마구치 토모코, 아마미 유키 출연/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쇼박스 (주)미디어 플렉스 배급/  2008년 12월 17일 개봉

이 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 개봉영화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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