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반응하게 만드는 영화다. 엄마(김혜자)의 가녀린 몸이 바람에 흔들리듯 춤을 출 때면 관객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의 온도마저도 체감한다. 도준(원빈)이 다칠 때는 뼈마디 마디가 아려온다. 봉준호는 관객을 극도의 흥분상태로 만들었다가도, 이내 심해보다 더 깊은 비정한 세상 속으로 침전시킨다. <마더>는 사자처럼 정력적이면서도 여우처럼 간사한 영화로, 특유의 힘과 영특함으로 관객의 혼과 육체를 사로잡는다.

 

엄마는 물가에 보낸 아이를 바라보듯 도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에서 좋다는 건 다 먹여가면서 애지중지 키운 아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엄마는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문간이 닳도록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필사의 항전을 벌인다. 하지만 엄마의 전투는 외로운 각개전투다. 엄마의 외마디 비명과 호소를 듣는 사람 하나 없다.

 

영화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에 강하게 집착한다. 인간의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하듯이 현실에서 초현실적인 일, 부조리하고 황당무계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마냥. 엄마가 아들을 잃은 순간, 엄마에게는 살아 숨 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 이제 엄마의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다. 오밀조밀 주택이 밀집한 시골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익숙하다 못해 정겨워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가 옥상위에서 마을을 비출 때, 마을은 감옥처럼 폐쇄적이고 욕망으로 범벅이 된 진창에 가까워 보인다. 엄마는 비오는 날 옥상위에 올라가서야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알고 보면 엄마가 비정상이 아니라 엄마만 정상이었던 거다. 세상은 이미 미쳐있었으니까. 이처럼 영화는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면서 스토리와 캐릭터의 성격자체를 변화시키는 영화다.

 

 <마더> 한 장면

<마더>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관객의 간담을 가장 서늘하게 하는 것은 도준이라는 캐릭터다. 모두가 도준을 비정상이라고, 덜 떨어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준의 우발적인 행동, 선문답 같은 대사들은 관객의 허를 찌르고 만다. 우리는 도준이라는 캐릭터로부터 복수, 살인, 근친상간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도준의 얼굴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모든 결과들은 약간씩 정답에서 벗어나 있다. 해석의 여지는 충분하지만 그만큼 오독의 여지도 많다. 도준이 면회 온 엄마 앞에서 오른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릴 때, 그 천사 같은 눈망울에서 엄마조차 잊고 지냈던 과거사가 드러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멍과 상처로 가득한 그의 좌측얼굴은 과거를, 우측 얼굴은 현재의 미묘한 심경을 오롯이 새기고 있다.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얼굴이다. 또한 도준의 행동은 느릴 뿐이지 눈빛은 화살보다 빠르다. 도준은 양의 탈의 쓴 늑대처럼 관객의 심리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원빈의 농익은 연기력도 한 몫 톡톡히 한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관객을 건져 올리는 낚싯대라면, 미끼는 반복되는 일련의 패턴들이다.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와 불, 사건을 은폐하는 어두컴컴한 공간(동굴, 폐가), 논두렁처럼 농촌적인 요소들은 봉준호의 인장처럼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 <마더>는 반복되는 몇 가지 동작과 액션을 통해서 관객이 웃고, 떠들고, 긴장하는 순간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작두질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두 번 반복된다. 도준을 지켜보던 엄마는 아들이 차에 치이는 모습에 화들짝 놀래서 작두질을 잘못한다. 그 바람에 손을 다치는데, 후반부에 엄마가 작두질을 할 때는 손을 다치지도 않았는데도 관객은 칼날이 엄마의 몸을 관통한 것처럼 섬뜩해 한다.

 

봉준호는 일종의 '파블로프 효과'를 자주 사용한다. 한 형사는 심문 전에 도준의 입에 사과를 물려 세팍타크로 자세로 사과를 날려버린다. 심문 도중에 도준이 대답을 또박또박하지 않자 형사는 도준에게 사과를 스윽 보여준다. 그러자 도준은 겁에 질려 문자 그대로 또박또박 대답한다. 진태(진구) 역시 동네 불량배들을 위협할 때 발길질을 자주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진태가 발만 들어도 겁을 먹는다. 봉준호는 영화 속 인물뿐만 아니라 관객모두가 영화 속에서 조건반사하게 만든다. <마더>의 초반부가 긴장과 화들짝 놀람의 연속이라면 후반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반응하는 조건반사의 연속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영화다.

 

이처럼 <마더>는 현실 정치 혹은 사회 무의식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는 영화다. 권력을 가진 자는 약자를 착취한다. 남성들의 성욕 때문에 한 소녀는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야 했다. 도준과 엄마 사이에는 사랑, 애증, 애욕, 복수의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이 둘 사이에도 진실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성립되고 있다. 엄마는 끝내 비밀을 은폐하려고 하지만 진실은 망각되지 않는다. 엄마에게 치부를 감추는 것은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치부를 감추는 순간, 치부는 망각되지 않고 과거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면서 갚아야할 부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가 춤을 추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비로소 엄마가 자신을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벼우면 몸도 가벼운 법.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기에, 오늘도 모든 엄마의 몸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2009.05.31 12:46 ⓒ 2009 OhmyNews
마더 원빈 김혜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