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 블라인드 사이드

이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가족사진을 찍는 모양인데, 참 잘도 나왔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이 사진은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의 한 장면이다.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아버지가 가출하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자로 적절한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했던 흑인 청소년이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성장했던 실화를 화면으로 옮긴 영화다.

 

혈연과 계층을 넘어 한 가족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정말 흔치 않은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 걸렸다.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어두워진 환경 때문에 습관적으로 5분이나 10분 정도를 꼭 졸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일 없이 가슴이 정말로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봤다.

 

<블라인드 사이드>가 보여준 희망과 따뜻함, '마이클'의 성공을 보며 들었던 아쉬움과 한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생각들을 담아 리뷰를 써본다.

 

부자들, 투오이 부인만 같아라

 

영화는 돌연변이처럼 삐져나온 부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투오이 부인이 그다. 그는 잘 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업자이자 100개의 식당을 소유한 남편을 두고 있는 부유층이다.

 

18달러짜리 샐러드를 먹으며 친구들과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운 부인은 추운 밤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갈 곳 몰라 헤매고 있는 '덩치'를 집으로 데려와 재운다.

 

그리고 부인은 스스로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거친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빈민가에 가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가난의 악순환을 목격하고, 국가로부터의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는 공무원들을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개떡 같은' 행정을 체험한다. 그리고 평생 말을 섞어 볼 가능성이 없었던 '민주당원' 가정교사를 들여 새로운 가족의 학습을 돕는다.

 

그렇게 스스로 회심하고, 변화하면서 그는 친구들과는 다른 부자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녀가 자신이 목격한 빈민가 이야기를 하자 친구들은 그 동네는 끔찍하다며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자선행사나 해서 부자의 책임을 다하자고 말한다. 어떤 친구는 커다란 흑인 녀석을 집에 들여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런 친구들에게 그녀는 그 따위 소리를 하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일갈한다. 투오이 부인은 그렇게 낮은 데로 직접 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억수로 재수가 좋을 뿐인 마이클, 정치인들은 대체 뭘 하나?

 

나는 <블라인드 사이드>를 정말 기분좋고 따뜻하게 봤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화이고, 그렇기에 현실로 돌아가 생각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영화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환경과 조건 때문에 탁월한 재능과 좋은 성품이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질 뻔한 마이클의 인생이 좋은 사람들의 후원과 지지로 꽃피운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러나 마이클은 '억수로 재수가 좋을 뿐' 수많은 마이클들은 그런 가능성의 기회들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절망에 허우적거리며 인생을 소모하고, 사라져간다. 훌륭한 후원자의 눈에 띄지 못하는 수많은 마이클들이 꿈과 재능을 살려내고, 한번 뿐인 인생을 희망으로 물들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우리의 복지제도는, 사회시스템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억수로 재수가 좋은 마이클의 성공 뒤에 여전히 '재수 옴 붙어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환경으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많은 가능성들이 사장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말 할 일이 많은데, 정치인들은 그리고 그들을 뽑는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머리띠 두르지 않고도 부조리 보여주는 <블라인드 사이드>

 

이 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지붕뚫고 하이킥>을 생각했다. 내가 무엇보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좋아했던 것은 우리의 현실을 가르치려 들거나, 머리띠를 두르지 않고 웃음과 눈물 속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열심히 운동을 하는 운동부 학생들에게 '기간제' 교사인 선생님이 계약연장이 안되어서 운동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하던 장면이다. '아 이렇게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들려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블라인드 사이드>에서도 지붕뚫고 하이킥과 같은 미덕을 본다. 엉망진창 복지행정의 책임자라며 벽에 걸려있는 조지 부시의 사진을 비춰주고, 길게 줄을 선 복지 수요자들을 세워둔 채 커피나 마시며 노닥거리는 공무원들을 보여주는 영화는 머리띠를 두르고 북을 두드리며 '각성하라'를 외치지 않고도 현실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영화와 같은 문화의 힘이 아닐까.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깨닫고, 그것을 변화시켜 나가는 힘을 얻게 하는 것. 그런 상상력과 문화적 메시지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사족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었던 건 투오이 가족의 막내 SJ덕분이었다. 이 귀여운 아역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있는 집 자식으로 자신이 누리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 자랑하면서도, 편견과 선입견 없이 갈 곳 없는 덩치 큰 흑인 형아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개념찬 녀석이다. 알알이 박힌 주근깨와 함께 미소짓는 녀석을 본다면 누구도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녀석이 내 아들이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결혼할 때가 된 걸까. 우리의 아이들도 모두 SJ처럼 발랄하고, 당돌하고 그러면서도 지혜롭고 착한, 더불어 살아가는 데 능숙한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여튼, <블라인드 사이드> 정말 강추다. 꼭 보시길.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극중 투오이 가족의 아들 SJ와 마이클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극중 투오이 가족의 아들 SJ와 마이클 ⓒ 블라인드 사이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 (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2010.05.06 17:1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 (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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