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의 타임라인창을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가 보인다.

누구는 정치 얘기를 하고(이번 지방선거 결과의 일등공신 중 하나로 트위터가 꼽힌다), 또 누구는 취직을 걱정하며(구성원이 기업 CEO부터 '촛불 고딩'까지 그만큼 다채롭다), 또 누구는 연애사의 고민을 토로한다(최근 고민은 "예전 여자친구가 저 때문에 결혼한다고 합니다" 였다). 요즘, 월드컵 또한 빠뜨릴 수 없는 화두다.

트위터 응원은 스폰서 논란과 상업화로 얼룩진 붉은 악마들의 광장과는 차원이 다른 색다른 응원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댓글 문화와 다를 것이 뭐가 있느냐고? 경험해 본 자만이 안다. 함께 탄성을 지르고, 날카로운 분석을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은 분명 댓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나 많은 이들이 잠들 시간에 벌어진 북한의 대 브라질 전은 좀 더 특별했다. 훨씬 더 소수의 인원이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일방적으로 한민족을 응원하리라는 기대감, 그 일체감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뭉클한 순간은 진짜로 이루어졌다. 물론 그 공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맞아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경기를 펼친 북한 선수들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트위터 상의 그 감동의 순간, 훈훈했던 분위기를 전해 본다. 

경기 전, '3시 30분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정대세의 눈물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정대세(26)가 16일 새벽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 브라질전 식전행사에서 북한국가가 울려퍼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대세의 눈물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정대세(26)가 16일 새벽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 브라질전 식전행사에서 북한국가가 울려퍼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지금 들어와 월드컵게임 좀 보려했더니 딸내미도 모처럼 이 시간에 들어와서 아이폰 어플 부부젤라로 날 괴롭히는군요ㅠㅠ 아~ 지겨운 부부젤라♨."

국회의원도 월드컵을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북한 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올린 글이다. 특히나 전병헌 의원의 딸이자 고려대 총학생회 회장 전지원씨가 "헉헉 날두보러 집에 뛰어왔어요ㅜ아ㅜ내일 시험인데ㅜㅜ"란 글을 남긴 것도 흥미롭다. 그래서 '부녀 트위터리안은 처음이라 더 훈훈합니다, 따님에게 시험 공부 열심히 하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멘션을 날렸다. 전 의원에게서 이런 글이 되돌아온다.

"아이폰 어플 부부젤란 정말 즐예요."

딸의 부부젤라 공격에 곤혹스러워하는 아버지가 있는 반면, 새벽 3시 30분인 경기 시간 때문에 갈등을 하는 직장인도 다수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바로 그런 예다. "새벽 3시 30분 시작하는 북한전 꼭 보고 싶은데…. 지금 자다 일어날까, 포르투갈 전 다 보고 영화 한편 보고 철야한 후 새벽 5시30분부터 잘까?" 오 대표가 12시경 올린 글이다(그리고 오 대표는 정확히 3시 간 뒤 다시 트위터에 등장해 열렬히 북한팀을 응원했다). 

경기 시간이 직장인들을 감질나게 했다면, 허기는 새벽 관람의 가장 큰 적이다. "이 시간에 저녁 때 남긴 삼계탕을 먹으려고 데우는 건 미친 짓이죠? 아, 북한 전 기다리기 힘들다"는 글에 바로 반응이 온다. 라면에, 김치볶음밥에, '치맥(치킨과 맥주)'에 메뉴도 제각각이다.

중요한 건 북한 전을 기다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축구계의 경계인' 정대세가 눈물을 흘릴 때만 해도 "저 친구, 왜 벌써 울고 그래?"가 전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작 경기가 시작되고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분석적인 트위터 상의 관람 행태가 일방적인 '응원'을 넘어 민족애로 바뀔 줄이야!

전반전, 경계인의 뜨거운 눈물과 국가보안법 

 차 위원도 비껴갈 수 없는 '민족애'는 북한의 선전과 함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차 위원도 비껴갈 수 없는 '민족애'는 북한의 선전과 함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me2day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북한과 브라질의 대결에 대한 전세계의 시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SBS 배성재 아나운서 또한 경기 내내 이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 트위터 상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잘만 싸워주길'이 대세였지, '기적을 일으켜 주세요'란 기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는 곧 열망으로 번졌다. 북한이 브라질을 '꽁꽁' 묶자 다들 어안이 벙벙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맞아 말 그대로 거미줄 수비를 펼쳐낸 북한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나 엇비슷한 유효슈팅 숫자를 보인 것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럼에도, 트위터의 까칠한 분위기는 유효한 법. 배성재 아나운서의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해설에 불만을 토로해봤다. "차범근은 무조건 공화국 편인데, (배성재 아나운서는) 사용 단어들에서 굉장히 부정적이고,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읽힌다." 실시간으로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라는 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재미있는 점은 시작부터 국가보안법 제7조 조항인 고무, 찬양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점. 트위터리안 @neoscrum의 "역시 브라질 무섭다. 잠깐 사이 벌써 슛이 몇 번 째야. 북한팀은 거의 반응 수준... 근데 차붐은 북측의 입장에서 해설을 하네. 국보법 7조 찬양, 고무, 동조. 위험한 듯"부터 @_cybercat의 "여러분~☆ 북한팀 너무 응원하시면 이적단체 찬양고무죄로 잡혀들어갈지도 몰라요!! 지금 그러고도 남을 난센스같은 세상이잖아요!! 대신에 자원이 많은 국교수교국가인 브라질을 응원하는 게 안전할 거 같아요!"까지 반어와 역설도 동원된다.

이송희일 영화 감독(@leesongheeil)이 올린 "오늘 국보법 걱정하며 해설하고 있는 차범근 감독"의 링크글 또한 수없이 RT(전달하기) 되며 화제가 되었다. 한 네티즌이 '천안함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한데도 북한에 애정을 가지고 해설을 하겠느냐'고 올린 질문에 차 위원이 "근데 북한선수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해설을 하면 안 된다고 하네. 어제 저녁 너무 고민이 돼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한테 문자로 물어봤어. 한 스무명 쯤…"이라고 대답한 것.

차 위원도 비껴갈 수 없는 '민족애'는 북한의 선전과 함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후반전, 반전의 반전 그리고 한민족의 힘

"후반시작!!! 이러다 북한이 이기겠다^^ 한민족의 힘을 보여주길 북한팀 파이팅(@sexybeastym)"

그러나 후반 10분, 브라질 풀백 마이콘의 절묘한 슛이 북한의 네트를 갈랐다. 탄식에 가까운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과 비슷한 수준. '이건 사기다'부터 '역시 브라질, 세계 최고 수준답다'까지, 다양한 반응이 올라온다.

반면 북한에 대한 응원은 한층 뜨거워졌다. '그래도, 같은 한민족이라고 북한이 골먹히니까 왠지 안타까운 건'이라는 단순한 반응은 물론이요, '결국 밤새고 출근하게 생겼네요. 그래도 한민족의 경기...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는!'는 뒷심파도 속속 등장했다.

기가 막힌 첫 번째 골 이후 브라질의 파상 공격이 시작됐다. 심리상 흔들린 북한이 두 번째 골마저 허용했다. 그러나 상대는 세계 최강 브라질.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북한 의 선전이었다. "다시 1966년처럼 조선아, 뛰어라! 괜찮아, 질식수비 다시 시작!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라는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lazy2010)의 글처럼 선수들에 대한 격려가 오히려 늘어만 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막판까지 저력을 보여준 북한은 정대세의 어시스트를 받은 지윤남 선수가 브라질 수비벽을 뚫고 통쾌한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타임라인을 타고 즉각 '장하다'는 대동단결의 환호성이 넘쳐났다. 후반 44분에 터진 만회골에 곧이어 경기는 끝나버렸지만, 아쉬운 반응이 트위터 세상을 달궜다. 

"월드컵 32강에 한국어를 쓰는 두 개의 민족 국가가 진출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나는 영국계 나라들만 그런 것이 가능한 줄 알았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가?(@sianzu)"

"약 1분 전 북의 경기를 보며 느낀 건데 저는 아마 승리하는 모습보다 다 바쳐 싸우는 선수의 투혼을 느끼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처럼…. 이번 경기는 제 생애 손꼽을 명경기라 생각합니다(@wehaveadream32)"

"북한경기를 보고 나니 짜증과 슬픔이 솟구친다. 이렇게 훌륭하고 위대한 민족이 대체 누구 때문에 둘로 갈라져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에게 전쟁을 운운하며 이 시대를 분단의 역사로 써내려가고 있는 것인가(@itsgoodday)"

포르투갈 전에서 다시 만나요, 트위터 친구들!

1966년 이탈리아를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북한이 이번엔 브라질을 제물로 삼을 뻔했다. 그러나 승패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본 것은 2번째 월드컵 진출, 4번째 경기에서 브라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진정한 '붉은 악마' 북한의 진면목과 열정을 보았다("그나저나 '붉은 악마'라는 멋진 별명은 북한 대표팀에게 헌납하는 건 어떨까. 저들이야 말로 진정한 좌빨 '붉은 악마' 잖나" @woodyh98).

그리고 '인민루니' 정대세라는 새로운 영웅을 목격했다("아직 나는 박지성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박지성과 유니폼을 바꾸고 싶었지만 북한대표팀은 유니폼 한 벌을 몇 경기 동안 입는다. 나중에 유니폼이 모자랄까봐 바꾸지 못했다" 정대세, 파워블로거 미디어몽구(@mediamongu)가 올려 순식간에 전달하기 된 글)

덤으로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가가 우리 공중파에서 울려 퍼지는, 그리고 방송사의 국가보안법 위반을 걱정해줘야 하는 진기한 체험을 했다("SBS에서 북한전 끝나고 '아쉬운 석패'라고 하던데 이거 친북 아닌가 국가이익에 반하는 행위 아닌가 나아가 국가보안법 위반인가?!"@chicmen).

이 모든 것을 떠나 140자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트위터 세상에서의 베스트 글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오늘 축구를 본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보았다. 아름답다. 7000만 민족 모두 파이팅이다!(@MBbyebyeya)"

단순히 축구를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민족과 통일에 대해 자각하고 성찰하는 소중한 순간을 만드는 트위터 친구들. 6월 21일 북한 대 포루투갈 전에서 다시 만나요! 다행히 그 날은 오후 8시 30분 경기랍니다!

북한 정대세 브라질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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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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