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자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짝은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과일바구니, 걸스카우트, 체르니, 스키, 어릴 적 우리가 생각하는 부의 상징은 이런 말들이었다. 우리는 대문을 열면 뜰이 있고 현관을 열면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하는 부자의 삶을 상상했다.

 

자본주의 속 부르주아의 세상

 

타워팰리스에 살며 점심으로 킹크랩을 먹고 몇 백만 원짜리 청바지를 사고 오픈카에 부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 백화점에서 결혼예물로 몇 천만 원짜리 보석을 사는 사람들, 이제 나는 그들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오늘도 티브이를 통해 고가의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는 아이돌 그룹의 스타가 등장한다.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 매체를 타고 다들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누구든 한 번쯤 세상은 가진 자의 편이 되어 불공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사회, 99%를 가진 자가 1%의 부족한 것을 얻기 위해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그럴 때 누군가는 혁명을 꿈꿀 것이다.

 

완벽한 부르주아들에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한방을 날리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에주케이터(2005)>는 독일의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자본주의속 부르주아들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 같은 영화다.

 

얀과 피터는 착취당하고 억압받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서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비정상적인 국가나 사회를 향해 작은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고급 빌라에 무단 침입해 가구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재배치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악동들의 장난에 불과한 에피소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에쥬케이터>세 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작은 혁명을 시작한다.

<에쥬케이터>세 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작은 혁명을 시작한다. ⓒ 스폰지

혁명의 주동자가 부르주아가 되어 나타나다

 

"당신들은 돈이 너무 많아. 풍요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도 없다는 말이 있다. 가진 게 돈뿐인 자들을 적극적으로 위협하는 문구를 날리는 그들은 자신들을 '에쥬케이터'라고 부른다. 부당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방법으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피터의 여자 친구 율은 선생이었지만 벤츠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는 바람에 8년 동안 웨이트리스로 일을 해서 9만 유로의 빚을 갚아야 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을 빼앗고 환한 웃음대신 그늘진 얼굴로 고단한 일상을 살게 하는 벤츠의 주인 역시 부르주아다.

 

율이 방세를 못내 피터와 얀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날, 피터는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사이 율과 이야기를 나누던 얀은 급기야 자신들이 신문에 보도된 '에쥬케이터'임을 알리게 된다.

 

율은 얀을 설득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벤츠의 주인 하이덴베르그가 사는 집으로 향한다. 수영장이 딸린 저택에서 율은 얀과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경찰이 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서두르다 휴대폰을 두고 나온다. 둘은 휴대폰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그 집을 무단침입하고 그들이 허둥대던 사이 도착한 주인을 납치하며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세 명의 청년은 벤츠 주인인 하이덴베르그를 납치해 외딴 산장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납치한 하이덴베르그 역시 68혁명을 일으킨 주동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 혁명의 중심에 있던 자가 부르주아가 되어 청년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상이나 이념, 혁명과 같은 이야기로 논쟁을 벌이는 청년들은 결국 하이덴베르그의 논리 앞에 조금씩 동화되어가기 시작한다.

 

모든 심장은 혁명을 꿈꾼다

 

"모든 일이 천천히 벌어져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뿐이야. 어느 날 낡은 차를 버리고 에어컨이 있는 좋은 차를 갖고 싶게 돼.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하게 되고, 집을 사고, 애들을 잘 키우고 싶어지지. 근데 그게 다 돈이야.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가 침입해서 집을 엉망으로 해놓은 걸 보게 되면 주저 없이 보수당에 한 표를 찍게 되는 거지."

 

누구나 다 이러한 인생의 수순에 따라 순응하게 되는 것일까. 감독은 이 물음표에 답을 주지 않지만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순수한 열정의 젊은 세대가 없는 한 그 사회는 이미 생명과 희망이 없음을 넌지시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피 끓는 청년들이 혁명을 향한 투쟁이라는 말을 외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취업의 벽 앞에 너도나도 스펙을 쌓기에 바쁘다.  비합리적인 세상을 향해 혁명이란 말을 떠올리는 청년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하이덴베르그의 얘기들을 공감하기 시작하는 청년들은 소통을 통한 합의점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반전 속에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사람들은 또다시 쓰디쓴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혁명과 사상과 이념을 아무리 내세워 봐도 자본주의 탈을 쓴 부르주아의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68혁명의 주인공이 세상을 겪으며 얻어낸 자신의 철학으로 결국엔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든 한스 바인가르트너와 같은 감독이 있는 한 최고의 이념과 이상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모든 심장은 혁명을 꿈꾼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에쥬케이터>를 보고 그 열정을 기억해 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2004)/2005 .05 .06/ 131분/ 독일/ 15세 관람가 

2010.08.23 19:3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2004)/2005 .05 .06/ 131분/ 독일/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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