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황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황해> ⓒ 황해

2008년 개봉한 <추격자>는 모든 면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리 소문 없는 개봉, 그러나 곧 입소문을 타고 여러 관객에게 스며들었다. '짜임새가 최고다',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잔인하다' 등등의 소문은 눈덩이가 되어 영화관을 맴돌았다.

결론은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흥행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고, 신인 감독인 나홍진과 주연인 김윤석은 그해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조리 휩쓸어 버렸다. 또한 재능은 있지만, '연예인 2세'라는 그늘에 가려졌던 하정우의 무게감까지 대폭발을 이끌어냈다.

그랬던 그들이 다시 뭉쳤다. 이미 기대감은 최고치였다.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궁금함이 일 법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난산, 1년에 가까운 촬영 기간이 다 가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그랬던 작품이 드디어 해를 넘기기 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황해>다.

조선족(재중교포) 남자 구남은 왜 황해를 건넜을까?

한 남자가 있다. 중국 옌볜의 택시운전사 김구남(하정우 분). 앞날·미래 등의 단어는 그에게 사치다. 한국으로 일하러 간 아내의 비자를 만들기 위해 무려 6만 위엔(한국 돈 1000만 원)의 빚을 졌다. 그런데 연락이 끊긴 지 6개월째다. 답답하다. 돈을 갚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든다. 당연히 잃는다. 직장에서도 그만두라고 한다. 사면초가다.

 김윤석과 하정우가 다시 만난 영화 <황해>

김윤석과 하정우가 다시 만난 영화 <황해> ⓒ 황해


또 한 남자가 있다. 간단히 말해 '아주 나쁜 놈'이다. 면가(김윤석 분)는 개장수이자 청부살인업자다. 돈 되는 안 좋은 일엔 모두 손을 뻗치고 있다. "니 언제까지 저 개들처럼 쳐맞고 살 거니? 새로 시작하라"며 구남에게 청부살인을 의뢰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마도 개 구(狗)에 남자 남(男)인 듯하다. 삶에 찌들어 어릿한 눈길이지만, 때론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청부살인을 지시했다. 고민하지만 구남에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죽지 않기 위해 바다를 건넌다.

극단적인 예지만 한편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조선족 교포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적어도 삶에 대한 절박함만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물론 영화의 옷을 입었기에 때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지난 20일 있었던 언론시사회에서는 혹시 잘못된 편견이나 오해를 심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나홍진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기본적으로 그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뼛속까지는 아니더라도, 긴 시간 취재와 만남을 거쳐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하려 애썼다. 혹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영화적 과장과 허구일 뿐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터져 나오는 분노, 피가 튀고 '착실히' 죽어 나가는 사람들

 영화는 한편 섬뜩하다. 피가 튀고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영화는 한편 섬뜩하다. 피가 튀고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 황해


장르를 분명히 하자. 이 영화 '액션 스릴러'다. 물론 고뇌가 깃들인 드라마가 깔리긴 했다. 하지만 불록버스터급 액션물이다. 한국에 온 구남은 살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구남의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살인이 저질러진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구남은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 받는다.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찰에게 그리고 입을 막으려 하는 면가 양 쪽에게 구남은 쫓긴다. 어느 쪽에 잡히던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힘들다. 도망친다. 뛴다. 그를 쫓던 차들이 부딪혀 깨어지고 불에 타고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관객들의 귓가를 난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잔인하다. 이 영화 분명 잔인하다. 전작 <추격자>에 곱하기 몇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돼지들처럼, 모든 이들이 줄을 서 착실히 죽어 나간다. '너무하다' 싶은 면도 있지만, 한편 지극히 사실적이다.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감독답게 피의 색조마저도 일일이 구분을 두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숨겨진 가학쾌감을 충족시킨다.

 도심의 질주, 영화는 달리고 또 달린다.

도심의 질주, 영화는 달리고 또 달린다. ⓒ 황해


그 모든 피의 광란의 중심에는 <추격자> 때와 자리를 바꾼 김윤석이 있다. 죽여 버리고 싶은 놈을 찾아 거리를 내달리던 그가, 죽여 버리고 싶은 놈이 되어 사람들을 죽여 나간다. 자신 안에 숨겨있던 광기를 제대로 발산하고 있다. 반면 하정우의 슬프고 어눌한 눈길에는 가슴이 아프고 동정이 인다. 자리바꿈을 제대로 했다.

단순히 잔인한 것뿐 아니라 시원시원한 액션 장면이 눈에 띈다. 특히 아무리 따라 해도 할리우드의 그것에 비하면 신통치 않아 보였던, 자동차 액션 장면 이른바 카체이싱(car chasing)이 압권이다. 시원하게 부수고 멋지게 폭발한다.

면가에게 쫓기는 구남의 도주를 보여주기 위해 부산 시내에서 촬영된 장면에 차량 50대, 카메라 13대가 동원됐고, 이 중 절반 가량의 차가 박살이 났다고 한다. 굳이 외국의 액션영화를 보러갈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2시간 30분의 긴 상영시간, 관객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극사실주의 영화를 추구하는 나홍진 감독

극사실주의 영화를 추구하는 나홍진 감독 ⓒ 황해

영화는 긴 편에 가깝다. 두 시간 반 동안 상영된다. 전제를 깔자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영화다. 언론시사회 당일 오전까지도 편집에 매달렸다는 감독의 말이 아니더라도, 영화는 꽤 짜임새 있다. 극적긴장이 높고, 생각지 않았던 반전도 쏠쏠하다.

하지만 감독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전작 <추격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버릴 장면 하나 없이 촘촘하게 짜였던 전작에 비해,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있다. 전작이 두 사람의 대립이었다면, 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기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감독이 "두 사람이 또 나온다는 것 외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라고 밝혔듯 따로 분리해 놓고 보자면, 큰 흠결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거대한 서사시고, 화면을 압도하는 스케일이 방대하다.

정해 놓은 기간 초과, 제작비 추가 지출, 몇백 번을 다시 돌려서라도 완벽한 편집을 기하는 감독의 집념은 과연 어떻게 평가 받을 것인가. 높은 기대치, 황해만큼 거칠고 속을 알 수 없는 관객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개봉 12월 22(수)일
황해 나홍진 김윤석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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