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뛰다> 포스터 "그녀를 죽여야 내 딸이 산다"

▲ <심장이 뛰다> 포스터 "그녀를 죽여야 내 딸이 산다" ⓒ 오죤필름

'어머니는 누구인가?'

 

이는 그 어떤 자식도 철학적 고뇌에 빠지게 만드는 난해한 질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라고 말한다. 2008년 대학로소극장에서 공연됐으며, 같은 해 인천연극제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위성신), 연기자상(이경미)을 수상한 <어머니>라는 작품에서 말이다.

 

황지우는 "저를 이, 시간 속으로 들여 넣어주시고/ 당신을 생각하면 늘, 시간이 없던 분"이라고 말한다. 너무 고상해서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김초혜는 조금 이해될 성싶은 말을 한다.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

 

딸이 죽어간다

 

채연희(김윤진 분)에게는 예쁜 딸이 있다. 그러나 남의 심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죽는다. 영화 <심장이 뛴다>는 이 딸을 향한 엄마의 애절하고 질펀한 사랑을 그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 수용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구석이 많다.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 영화가 더 절박하도록 이끄는 것이 그냥 뻔하게 보인다. 그러니까 윤재근 감독은 그걸 이미 관객들에게 들키고서 영화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끝내 그렇게 마무리하려 한다. 하여튼 엄마가 지독하게 딸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만 강조하다가 끝나는 것 같은 찜찜함을 금할 길이 없다.

 

독기로 가득한 엄마가 무엇을 못하랴. 이 점이 포인트라면 영화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그렇게 독기 어린 엄마가 한 둘이던가. 이미 연극이나 문학, 영화에서 신물 나도록 우려먹은 이야기 아닌가. 그저 쉽게 한 가지만 들자면 봉준호 감독의 2009년 작 <마더>가 그 동류다.

 

살인의 누명을 쓴(아니 살인자인, 원빈 분) 아들을 둔 어머니(김혜자 분)는 증인을 죽이면서까지 아들이 살인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불법, 탈법을 넘어 살인까지 할 수 있다고 선언한 영화가 아니던가. 김혜자의 그 음흉스런 눈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극장가에 김윤진의 천진난만한 딸사랑의 타는 눈빛까지 첨가된다.

 

 병원에서의 딸과 엄마

병원에서의 딸과 엄마 ⓒ 오죠필름

엄마를 죽일 수 없다

 

김윤진이 죽어가는 딸을 바라본다면, 박해일(이휘도 역)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그윽하다면,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도 그윽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이것을 의외성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엄마와 아들은 다르긴 하다. 자신의 장기를 팔아서라도 못난 아들 녀석의 사업자금을 대는 엄마, 그 엄마를 바람난 여편네로만 취급하는 아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정상적인 사랑의 관계인 엄마와 딸이 끼어든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그래도 죽어가는 엄마를 돈 몇 푼에 팔 수 없다고 덤벼든 아들. 하지만 영화는 엄마를 당할 수 있는 아들은 없다고 교과서적인 대답을 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억척 엄마에게 이렇게 항복을 선언한다.

 

"수술해. 수술하라구!! 나는 좆같은데,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래. 씨팔!!"

 

마치 딸을 둔 엄마와 엄마를 둔 아들이 파워게임을 즐기는 듯하다. 그러다 아들이 백기를 선언한다. 그렇게 영화가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마니 윤재근 감독은 관객모독죄로 법정에 서야 할 판이다. 하하. 탈법, 무법, 욕설, 양아치세계, 장기 불법매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막장으로 치닫다 끝에 가서 산뜻한 마무리를 하는 건 또 뭔가. 그게 더 괘씸하다.

 

엄마도 안 죽이고, 딸도 안 죽이고. 희희낙락 해피엔딩! 도덕교과서가 따로 없다. 그렇게 선량한 영화인 걸 왜 그렇게 탈법을 향해 줄달음쳤는지? 이해가 가면서, 이해가 안 간다. '어머니란 누구인가?' 여전히 이 난해한 문제는 숙제로 남아야만 하는가.

 

 딸을 살리려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려는 아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딸을 살리려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려는 아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 오죤필름

<심장이 뛴다> 감독 윤재근/ 주연 김윤진, 박해일/ 제작 오죤필름/ 배급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상영시간 114분/ 상영 2011. 01. 05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 뉴스앤조이 등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1.11 14:2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세종뉴스, 뉴스앤조이 등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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