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 다음 시즌부터 활약하게 될 창원 LG는 그의 프로 경력에서 벌써 5번째 팀이다. KBL이 배출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장훈이지만, 화려한 경력에 비해 이적이 잦았던 게 눈에 띈다.

 

 창원 LG로 트레이드된 서장훈

창원 LG로 트레이드된 서장훈 ⓒ 인천 전자랜드

프로의 세계에서 이적이 잦은 게 꼭 흠이 될 일은 아니지만, 서장훈 같은 경력을 지닌 선수들이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명예롭게 자리잡지 못하고 말년에 이팀 저팀을 전전하는 건 안타깝다. 동시대를 풍미한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추승균, 김병철 등 '농구대잔치 세대' 스타들을 돌아봐도 서장훈보다 많은 팀을 거쳐간 선수도 드물다.

 

그래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저니맨' 선수들과 , 서장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동안 그의 이적은 대개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서장훈은 다섯 팀을 옮겨다니며 총 네 번의 이적을 했다. 그중 두 번은 FA로 인한 자유 이적이었고, 한번은 트레이드, 마지막 한번은 FA 계약이후 '사인 앤 트레이드'였다. 그중 이번 LG 이적을 제외하면, 모두 서장훈 측에서 먼저 팀을 옮기기를 원했던 케이스다.

 

▲ 서울 SK(1998~2002)

업적: 우승 1회, 준우승 1회. 정규시즌-챔피언전 MVP 1회.

궁합이 잘 맞았던 선수: 재키 존스

궁합이 안맞았던 선수: 현주엽, 토니 러틀랜드.

팀을 떠나는 과정과 이유: FA로 인한 자유이적, 우승전력과 팀내 비중이 보장되는 팀을 찾아서

서장훈의 프로 첫 번째 데뷔팀이자 그의 전성기를 보낸 팀이기도 하다. 서장훈은 98~99시즌 현주엽과 함께 '슈퍼루키 듀오'로 불리며 첫해에 20-10시즌을 보냈고 국내 선수로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리바운드왕을 차지했다. 2년차인 99-00시즌에는 자신의 프로무대 첫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MVP에 연이어 선정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당시 최인선 감독은 서장훈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던 현주엽을 트레이드하고 조상현을 영입하면서 서장훈 중심의 팀을 완성시켰다. 서장훈-재키 존스-하니발-조상현-황성인으로 이어지는 베스트5는 2000년 우승 멤버로서 지금도 프로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이자, 서장훈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의 능력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조력자들로 구성된 최적의 팀이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2시즌간 호흡을 맞춘 재키 존스는 뛰어난 골밑 장악력과 패싱력까지 갖춰 서장훈의 골밑 수비 부담을 덜어주며 지금도 서장훈이 함께 호흡을 맞춘 외국인 선수 중 최고의 파트너로 기억된다.

 

하지만 재키 존스가 2001년을 끝으로 팀을 떠나며 서장훈은 더이상 존스만 한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다. 서장훈은 01~02시즌 팀을 다시 한번 챔프전에 올려놓았지만 김승현이 이끄는 오리온스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고, 서장훈의 출전시간과 비중을 조절하며 팀컬러를 바꾸려던 최인선 감독과 입장차이를 드러내면서 결국 첫 번째 FA자격을 얻자마자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 서울 삼성(2002~2006)

우승 1회, 소속 기간중 100% 플레이오프 진출(5년 연속)

궁합이 잘 맞았던 선수: 올루미데 오예데지

궁합이 안맞았던 선수: 주희정

팀을 떠나는 이유: 자유계약으로 인한 이적. 이상민과 뛰고 싶어서.

서장훈의 연세대 재학 시절 치명적인 목부상을 안기는 등, 악연으로 엮어져있던 삼성으로의 이적은 큰 이변이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던 서장훈은 한층 무르익은 기량을 바탕으로 삼성에서 매시즌 꾸준히 20-10을 달성하며 팀을 매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삼성에서 다시 우승권에 올라서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삼성은 SK때와 달리 처음부터 서장훈을 중심으로 최적화된 팀이 아니었다. 00~01시즌 우승의 주역이자, 서장훈이 오기까지 팀의 에이스였던 주희정은 빠른 템포의 농구에 최적화된 가드였다. 팀이 서장훈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두 명의 걸출한 스타는 서로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더구나 이때부터 자유계약 시절에 접어들며 NBA급 기량을 지닌 외국인 선수들이 쏟아져들어왔다. 물론 서장훈은 변함없이 꾸준한 기량을 뽐냈지만, 상향평준화된 리그는 더 이상 서장훈의 존재만으로 우승을 좌우할 수 없는 때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편으로 서장훈 역시 점점 높아진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에 '빅맨'으로서 힘겨워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점차 외곽지향적인 플레이를 지향했다. 2004시즌 서장훈에게 당한 또 한 번의 치명적인 목부상도 골 밑에서의 근성을 위축시킨 원인이었다. 훗날 최부영 경희대 감독이 지적했던 것처럼, 서장훈이 '센터 본능'을 잃게되는 본격적인 전환점이 바로 삼성 시절이었다.

 

김동광 감독에 이어 2004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안준호 감독은 서장훈 중심의 팀에서 탈피하면서 다시 우승에 다가서게 된다. 05-06시즌 삼성은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네이트 존슨이라는 두 명의 걸출한 외국인 선수를 앞세워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한다. 그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은 정규리그 1위인 모비스를 제치고 플레이오프 퍼펙트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한다.

 

안준호 감독은 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스피드에 약점이 있는 서장훈의 출전시간을 줄이고 이규섭과 강혁을 활용한 변칙 라인업으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정규시즌 공동 MVP에 오르며 맹활약했던 서장훈은 정작 챔프전에서는 중요한 고비마다 벤치에서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만했다. 서장훈 개인에게는 두 번째 우승이었지만, 삼성에서 그의 위상과 전술적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전주 KCC(2007~2009)

함께 뛰고싶었던 선수: 이상민

함께 뛰지 말았어야할 선수: 하승진, 임재현

팀을 떠나야했던 이유: 하승진과의 공존 실패, 출전시간 감소에 따른 부담감.

서장훈의 이적 계보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게 시절이다. 반면 서장훈의 역대 소속팀중 가장 짧은 시간을 보낸 팀이 바로 KCC다. 06~07시즌 이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서장훈이 우승 전력을 갖춘 삼성 잔류를 거절하고 굳이 KCC행을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선배인 이상민과의 재회 때문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말년에 마음이 맞는 선배와 즐겁게 농구하고 싶었던 서장훈의  꿈을 짓밟았다. KCC가 보호선수 명단에서 이상민을 제외했고, 삼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지명하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서장훈과 함께 뛰기 위해 역시 FA임에도 연봉까지 자진 삭감하며 계약했던 이상민도 뒤통수를 맞았지만, 서장훈 역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님을 보러 데릴사위 신세까지 마다치 않으면서 처갓집을 찾았는데, 님은 이미 다른 집으로 시집가고 나만 혼자 남의 장인 장모 모시고 살게 된 기분이랄까.

 

그래도 서장훈은 프로의식을 발휘하여 이적 첫해 전시즌 꼴찌에 그친 팀을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듬해 하승진이 가세하면서 상황은 다시 미묘하게 흘렀다. 공포의 트윈타워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스피드와 조직력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팀은 삐걱대기 시작했고, 하승진과 공존에 실패한 서장훈의 출전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자신과 팀의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던 서장훈은 결국  트레이드를 자청하기에 이른다. 허재 감독이 이를 수락하며 서장훈은 시즌중 트레이드로 전자랜드에 이적하게 된다.

 

논란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윈윈이 되었다. 전자랜드로 이적한 서장훈은 건재를 확인하며 소속팀을 5년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어 'PO청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KCC도 하승진 위주의 팀으로 컬러를 정비하고, 서장훈을 내주고 얻은 강병현까지 가세하며 리빌딩의 발판을 마련했다. KCC는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인천 전자랜드(2009~2011)

정규리그 준우승 1회(전자랜드 창단 최고성적)

궁합이 잘 맞았던 선수: 문태종, 허버트 힐.

궁합이 안맞았던 선수: 정영삼, 신기성. 크리스 다니엘스

팀을 떠나야했던 이유: 자유계약 이후 사인 앤 트레이드. 본인이 아닌 구단의 의지로 이루어진 첫 이적?

서장훈은 전자랜드 2년 차에 또 한 번의 고비를 맞게된다. 팀이 극도의 성적부진 끝에 두 자릿수 연패만 두 번이나 당하며 리그 최저승률로 추락한 것. 서장훈의 PO 불패행진이 무려 11년만에 중단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이듬해, 문태종과 허버트 힐이라는 뛰어난 동료들이 가세한 지난 시즌 에는 팀을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서장훈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이것은 전자랜드의 창단 이후 최고성적이기도 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세 번째 FA 자격을 얻은 서장훈은  당초 전자랜드 잔류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러나 1년 계약을 맺은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자랜드 구단은 서장훈을 LG로 이적시키는 깜짝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서장훈과 어느 정도 사전에 교감이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구단 측의 의지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트레이드임은 분명해 보였다.

 

전자랜드가 서장훈을 이적시키면서 대외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리빌딩이다. 사실 성적을 감안하면 서장훈을 내보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나이는 먹었어도 서장훈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공격형 빅맨으로 꼽히며 1~2년은 충분히 더 활약할 수 있다.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가 1인 보유-1인 출전으로 줄어들면서 서장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승을 감안해도 서장훈과 문태종이라는 걸출한 두 선수를 동시에 보유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하승진이 버틴 KCC의 벽에 또다시 가로막힌 장면은 전성기가 지나고 있는 서장훈의 한계를 보여준 장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노장선수들이 많은 전자랜드로서는 서장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우승을 노리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서장훈이 좀 더 능력을 발휘할 때 젊은 전수들을 영입하며 리빌딩을 노리는 게 낫다는 현실적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말년에 또다시 팀을 옮긴 것은 모양새가 좋지는 않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아직도 서장훈의 능력이 출중하고 그를 원하는 팀이 많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장훈이 새 소속팀인 LG에는 문태영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선수가 있다. 문태영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이 양날의 검으로 지목되어 왔고, 확실한 토종빅맨이 부족하던 LG로서는 서장훈의 영입으로 두 가지 고민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LG는 우승에 굶주린 팀이다. 창단 이후 준우승 1회(2001년)가 역대 최고성적이고 통산 플레이오프 성적이 15승 36패에 그칠 만큼 단기전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LG는 우승을 위해 오리온스에서 우승경력이 있는 승부사 김진 감독을 영입한데 이어, 서장훈까지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문태영이 다음 시즌을 끝으로 LG를 떠나야하고, 서장훈도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내년에 우승도전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장훈으로서도 다음 시즌이 어쩌면 선수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될지 모른다.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서장훈이기에 한번 더 기대를 가지게되는 이유다.

2011.05.23 10:46 ⓒ 2011 OhmyNews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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