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의 자켓 사진

비스트의 자켓 사진 ⓒ 큐브엔터테인먼트


한 중학생의 MP3에는 다양한 노래가 담겨 있다. 천상지희의 '한 번 더 OK?'는 언제 들어도 몸을 들썩이게 한다. 남녀공학의 '삐리뽐 빼리뽐', 싸이의 'Right Now'(라잇 나우)에 이어지는 곡은 빅뱅 GD&TOP의 '뻑이가요'와 '집에 가지 마'. 이어지는 댄스곡에서 잠시 숨을 돌리려 이승기의 '사랑이 술을 가르쳐'와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을 듣는다. 허경환의 트로트 '자이자이'도 빼놓을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선곡이지만 청소년 보호법으로 따지면 심각한 문제다. '한 번 더 OK?'는 선정적이고 불건전 교제와 유해업소 출입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난 2007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사랑이 술을 가르쳐'와 '비가 오는 날엔'도 유해 약물을 언급했으며 '삐리뽐 빼리뽐'과 'Right Now', '뻑이가요'는 비속어를 이유로, '집에 가지 마'는 선정성을 이유로 유해매체물로 지정됐다. 유해 약물과 비속어로 지적을 받은 '자이자이'를 들으려면 19세 미만이 아니라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은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담당한다. 그동안 유해매체물이 지정될 때마다 기준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최근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비가 오는 날엔>은 랩 가사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애'가 "청소년에게 유해 약물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고 하여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됐다. 결국 이 곡에는 19라고 쓰인 빨간색 동그라미 표시가 붙었다. 지난 5월 발매 직후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증 절차 없이 들을 수 있었던 곡이 어느 날 갑자기 성인 인증을 반드시 거쳐야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된 것이다.

'술'은 유해약물, '클럽'은 유해업소?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심의는 앨범 발매 후 이뤄진다"며 "2주에 한 번씩 1차 음반심의위원회가 열리고 2차 청소년보호위원회는 1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고 설명했다.

1차 음반심의위원회는 작사, 작곡가, 음반제작자, 방송관계자 등 음반업계 종사자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논의를 거쳐 대상 곡으로 지정이 되면 2차 청소년보호위원회로 넘어간다. 청소년 보호법상 기준에 맞는 전문가 10여 명이 상정된 안건(곡)을 또다시 심의하게 된다.

이 관계자는 "(음악) 모니터링 직원이 상주해 최대한 공평하게 모니터링을 하려고 하지만 워낙 발표되는 곡이 많아 놓칠 때도 있다"며 "외부에서 제보가 들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유해매체물 규정 기준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행정적 지원만 할 뿐 발언권도 없으며 이는 위원회 고유의 권한이다"며 "다만 모든 곡을 모니터링하지 못하는 것은 인력의 문제이므로 곧 이 부분이 충원되면 좀 더 형평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술'을 언급했다고 해 유해 약물로 규정하고 클럽에 간다는 표현으로 유해업소 출입을 조장했다는 것에는 분명히 어폐가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도 클럽에서 춤추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같은 소재라 하더라도 어떤 곡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어떤 곡은 유해매체물로 지정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위원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부모님과 청소년이 함께 들을 수 있는 건전가요
여성가족부도 방긋 웃을 수 있도록 바꿔볼까?


 GD&TOP의 '뻑이 가요'와 '집에 가지마'는 각각 가사의 비속어 사용과 선정성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을 받았다.

GD&TOP의 '뻑이 가요'와 '집에 가지마'는 각각 가사의 비속어 사용과 선정성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을 받았다. ⓒ YG엔터테인먼트


유해물질 - "술보다는 무알콜음료를 마셔요"

비스트의 정규 1집에 수록된 곡 '비가 오는 날엔'이라는 노래는 여성가족부의 주장처럼 정말 '술을 권하는' 노래일까. 문제가 된 구절은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 노래는 이별의 아픔을 토로하는 화자가 비가 올 때마다 떠오르는 옛 연인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 유해물질로 규정되는 술을 연상케 하는 구절은 이 노래의 내용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심지어 화자는 "그만 마셔야 할 것 같다"며 술을 권하기는커녕 음주를 자제하는 강한 의지력(?)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술이나 술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들어간 노래는 여성가족부의 심의 기준에 따라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백지영의 '아이캔드링크'는 "난 술을 못 마셔요. 몇 번을 얘기해야 되요"라고 말하는데도 유해매체물이 됐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유해매체 판정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서는 술보다 탄산음료 유산균 요구르트류 자양강장제 등을 가사에 넣을 것을 추천한다.

유해업소 및 선정성 - "클럽은 No! 놀이공원 Ok~"

허영생의 'out the club(아웃 더 클럽)'은 클럽이라는 유해업소를 연상케 하는 가사 때문에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다. "터질 듯 울려지는 사운드, 베이비 쇼 미 섹시 댄스", "내게 몸을 맡겨! 소리 질러!"등의 가사를 보아하니 화자는 확실히 클럽에서 춤을 즐기고 있다.

춤을 추는 행위가 불건전하고 클럽은 유해업소라면 다른 장소를 추천한다. 청소년이라면 모름지기 놀이공원이 제격이 아닌가. "중독된 멜로디 헤어날 수 없어 이대로 out the 회전목마. 몸이 가는 대로 Go! 88열차에 몸을 맡겨 Go!" 정도면 청소년들의 흥을 건전하게 돋우는 댄스곡 가사로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비속어 및 선정성 - "고운 말 바른 말을 써야죠"

GD&TOP의 '뻑이 가요'는 저속한 표현이므로 '반하겠어요' 정도로 순화할 수 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을 쓰고 싶은 청소년은 '넋이 나가요'로 응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뻑이 간다'라는 속어를 종종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불건전한 상상력을 발휘해 들을 때는 서양에서 쓰는 욕인 퍽(Fuck)으로 들리기 때문에 유해매체로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

GD&TOP은 친구를 집에 보내지 않는 내용 때문에 '집에 가지마'라는 노래에도 '19금 딱지'를 붙여야 했다. 집에 가지 못하게 이유는 다름이 아닌 줄 선물이 있기 때문. 물론 좋아하는 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화자의 마음을 해치지 않고 '버스 같이 타고 갈까', '내일 일찍 만나' 등으로 건전하게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여성가족부 유해매체 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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