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며 왜 떠오르는 사건도 그렇게 많은지? 광주민주화운동, 민청학련사건, 개야도 어부 간첩조작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간첩조작사건 등등. 실은 박정희 정권 때 걸핏하면 일어나는 간첩단 사건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전두환 정권 때 군화 발아래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젊은 피들의 아우성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한데, 영화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이야기의 전개를 보자니 지난 역사의 아픔이 가슴 한켠에 젖는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이 1851년에 낸 장편소설 <백경, Moby Dick>이 전하는 흰 고래와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그대로 밴 박인제 감독의 영화 <모비딕>은 1994년 서울 근교의 '발암교'라는 다리가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일단의 검은 세력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일행의 숨 막히는 사투는 볼만한 자극과 아우라를 제공하기에 넉넉하다.

정치사찰, 조작, 그리고 폭로

 영화 <모비딕>의 포스터, <백경, Moby Dick>이 전하는 흰 고래와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그대로 밴 박인제 감독의 영화 <모비딕>은 1994년 서울 근교의 ‘발암교’라는 다리가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영화 <모비딕>의 포스터, <백경, Moby Dick>이 전하는 흰 고래와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그대로 밴 박인제 감독의 영화 <모비딕>은 1994년 서울 근교의 ‘발암교’라는 다리가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서울 근교에서 다리 하나가 폭발한다. 언론은 일제히 북한 간첩단의 소행이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발암교 폭파 사건은 덮이는 듯하다. 그러나 기자인 이방우의 고향 후배가 나타나며 상황은 뒤바뀐다. 고향 후배 윤혁(진구)은 자신이 탈영했다면서 군대에서 알게 된 발암교 폭파사건의 전말이 들었다며 듬직한 가방 하나를 건네준다.

근데 이 사건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소속이었던 윤석양 이병이 군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양심 선언했던 일이 있다. 박 감독은 그 사건을 차용하여 정치적 음모에 칼을 들이민다. 좀 무모하다.

당시 윤 이병은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사찰 대상이던 노무현·한승헌·김승훈·문동환·강동규·이효재 등 각계의 주요 인사 145명은 1991년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군이 명백히 헌법을 위반했다며 200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을 폭로한 윤석양은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가방에는 무수한 디스켓과 자료뭉치들이 들었다. 발암교 폭파사건의 실체가 그 안에 들었다는 것인데. 그 즈음 발암교 폭파사건으로 특종을 잡은 지방주재기자인 손진기(김상호)가 중앙으로 와 이방우와 성효관(김민희)과 합류하여 특별취재팀을 꾸리게 된다.

윤혁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그 방해공작이 태산만하다. 마치 두 주먹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검은 그림자의 세력이 점점 더 막강하게 그들 앞에 들어온다. 그래서 영화는 더 흥미진진해지고.

보는 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음모론과 그 음모를 파헤치려는 이들의 한판 승부가 볼만하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대부분 단기간 내에 음모론으로 덮이는 경우가 많다. 히틀러의 충복이었던 요헨 파이퍼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역사는 그렇게 음모 속에 갇혀야만 한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후에 우연한 기회에 그 음모가 드러나는 것이 현실이고, 그때는 이미 시기가 한참 흐른 후라 긴장감은 덜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드러난다.

아직 음모 속에 가려진 역사, 그게 <모비딕>을 낳았고, '보는 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개연성을 도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영화 <모비딕>은 그 거대한 실체가 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했다 할 수 있다. 그게 누군지, 그것은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일단의 검은 세력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일행의 숨 막히는 사투는 볼만한 자극과 아우라를 제공하기에 넉넉하다.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일단의 검은 세력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일행의 숨 막히는 사투는 볼만한 자극과 아우라를 제공하기에 넉넉하다. ⓒ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실은 <백경, Moby Dick>은 1956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었던 작품이다. 모울린(Moulin) 영화사가 제작하고 워너브라더스픽처스가 배급을 맡았다. 존 휴스턴(John Huston)이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로, 에이햅(그레고리 펙)이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이를 복수하려고 포경선을 타게 된다는 이야기로 고래와의 사투가 볼만한 영화다. 전혀 정치색이 없는 인간한계에의 도전을 그린 영화다.

'사투(死鬪)', 그렇다. 사투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거대하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흰 고래(검은 정치 그림자)와 싸울 수가 없다. 싸운다는 자체가 우습다. 한국으로 건너 온 <모비딕>은 정치색이 농후하다. 실은 윤석양이나 윤혁 모두 모모한 도전을 했던 것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기자정신 투철한 이방우 특별취재팀 역시 그런 종류다. 하긴 그러기에 영화가 된다.

지금, '민청학련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민청학련사건'을 아시는지?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약칭 민청학련)에 연루된 180여명의 사람들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그들의 혐의내용은 민중봉기를 통해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죄목이었다.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촉발된 반유신체제운동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국민들에게 "반체제운동을 조사한 결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포착하였다"고 발표했다.

비상군법회의는 인혁당에 연루된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을, 민청학련 주모자급은 무기징역을, 그리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최고 징역 20년에서 집행유예까지를 각각 선고했다. 인혁당이나 민청학련사건은 이른바 유신정권에 의한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이다.

그러나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민청학련사건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이라고 발표하였고, 2009년 9월 사법부는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내란죄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윤혁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그 방해공작이 태산만하다. 마치 두 주먹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검은 그림자의 세력이 점점 더 막강하게 그들 앞에 들어온다.

윤혁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그 방해공작이 태산만하다. 마치 두 주먹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검은 그림자의 세력이 점점 더 막강하게 그들 앞에 들어온다. ⓒ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그런데 요새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다시 '민청학련사건'이 회자되고 있다. 1일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위장전입, 병역기피, 오피스텔 다운계약, 행당동 땅 다운계약 등 자고나면 한상대 후보자를 둘러싼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한 후보자의 역사 인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지적하는 한 후보자의 '역사관의 결함'은 '민청학련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소 핵심에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조작된 사건으로 판명되었고, 관련자들이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검찰이 뒤늦게 권진관, 서창석, 송운학씨등 3인의 무죄 선고에 대해 항소를 했다"고 밝히며 "역사의 큰 흐름에 반기를 든 검찰 일부의 중심에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이 문제가 어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성경에도 조작사건이 있다

국가 위에 있는 그림자의 보스가 이방우에게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방우 기자, 수증기 얘기 하나 할까요? 수증기가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가 되고 눈이 되고, 그죠? 가자양반이 안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비고 구름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수증기거든. 당신이 아무리 기살 써도 수중기가 눈에 보일까요?"

그림자 보스와 그 위의 보스가 한 말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 되지만, 100명을 죽이면 정치라 하셨습니다만..."
"그래 100명으로 100만 명을 살리면 예술인기라. 어디 예술 한 번 해봐라."

이런 비극적 이야기가 지금은 그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영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끝나고 만다. 무엇인가 밝히려고 그토록 사투를 하던 기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고 마는 것도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닐까?

성경에도 조작사건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가 사망한 후 부활한 무덤을 보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의논하여 로마의 군인들을 매수하여 부활이 아니라 그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간 것으로 꾸미는 내용이다.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태복음 28장 13-15절)

덧붙이는 글 <모비딕> 감독 박인제, 황정민, 진구 출연,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제작배급, 상영시간 112분
모비딕 개봉영화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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