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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도가니>의 흥행세가 뜨겁습니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니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한 장애인학교에서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이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 학생들을 성폭행한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없고, 자기방어력도 거의 없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보살피고 사랑해줘야 할 어른들에게 오히려 무참히 짓밟혀 가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소설의 텍스트로 그려졌던 참혹한 사건은 스크린을 통해 구체적인 영상으로 형상화되면서 관객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불편함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화가 주는 진한 설득력과 진실성으로 인해 관객들은 불편함을 뛰어넘어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지점은 세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참혹하게 유린한 가해자의 만행 그 자체이며, 두 번째는 그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카르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흘렀지만 가해자는 마땅한 죗값을 치르지 않고, 피해 학생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처참한 현실입니다.

이처럼 영화 <도가니>가 관객들에게 주는 가장 큰 정서는 '분노'입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 <도가니>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역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을 통해 실제 사건을 알게 된 작가 공지영의 분노가 소설을 쓰게 했고, 그 소설을 읽은 배우 공유의 분노가 영화 제작을 제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터넷을 중심으로 실제 사건이 있었던 광주인화학교를 폐교해야 한다는 아고라 청원과 사건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도 영화를 본 관객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머릿속 떠나지 않는 대사 "이런 일 휘말려봐야 득 될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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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프랑스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였던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가 떠오릅니다. 93세의 지은이가 젊은이들에게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 분노하라고 일갈한 이 책은 '분노'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도가니>는 단순히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뛰어 넘어 사람들에게 사회현상에 '분노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또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분노 그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 휘말려봐야 득 될 게 없어!"

이 대사는 성폭행 당한 아이들 편에 서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가고 있는 주인공 인호를 회유하기 위해 인호의 대학 은사가 한 말입니다.

주인공 인호는 성폭행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강자의 카르텔과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약자의 연대 가운데서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즉 인호의 시점과 포지션이 바로 관객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지점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되거나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누워라' 등의 말로 자신에게 '득(?)'이 되는 비겁한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분노하라 그리고 용기 내어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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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은 위기에 처하거나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받을 때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저항세력을 겁박하고, 짓눌러 제거합니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약자인 개인이 정의와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약자의 처지를 지배계급은 비정하게 건드리며 그들의 지배권을 유지해 나갑니다.

영화 <도가니>는 부정한 지배계급의 강력한 카르텔을 깨뜨리는 방법을 호가 갈등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인호는 분노한 다음 가해자 쪽의 협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인권단체를 비롯해 사건에 분노한 약자들과 연대를 합니다.

'분노하라 그리고 용기 내어 연대하라' 이것이 바로 영화 <도가니>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적인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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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함, 분노, 그동안의 침묵과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의식, 정의에 대한 갈망 등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로 머리와 가슴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저 역시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우울한 마음으로 미로처럼 꺾여 있는 극장의 통로를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것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회주의 세력의 카르텔에 의해 희생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묘비명에 새겨진 문구였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어쩌면 영화 <도가니>는 잔인한 사회 현실에 눈감고 있는 우리 의식을 일깨우는 강력한 프로파간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가니 분노 연대 공유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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