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데 '28자'면 충분했다. 23일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세종(한석규 분)의 한글창제에 담긴 진심을 믿지 않았던 강채윤(장혁 분)이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었기 때문이다.

강채윤이 마음을 연 데에는 광평대군(서준영 분)의 활약이 빛났다. 세종의 아들이자 한글창제에 관여한 광평대군은 세종의 애민정신을 믿지 못하는 강채윤과 목숨을 건 내기를 벌였다.

한글 28자, 강채윤의 세상을 바꿨다 

처음 두 사람의 생각은 180도 달랐다. 강채윤은 세종의 '한글 창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했다. 세종이 아들(광평대군)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면, 한글창제를 포기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평대군은 강채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광평대군은 "세종이 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글을 포기하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강채윤의 말에 반박했다.

이렇듯 강채윤과 광평대군의 생각의 간극은 컸지만 곧이어 밝혀진 한글의 실체와 그 위대함은 이를 해소시켰다. 극 중 대사는 얼음장 같던 강채윤의 심경 변화의 순간을 절묘하게 담았다.

강채윤과 광평대군의 목숨을 건 내기 23일 방송된 SBS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 강채윤과 광평대군의 목숨을 건 내기 23일 방송된 SBS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 SBS


"1천 자 배우는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아십니까? 5만 자 중에 1천 자도 이러는데, 전하의 글자는 몇 자나 되십니까?" (강채윤)
"28자." (광평대군)
"1028자요?" (강채윤)
"아니, 그냥 28자."  (광평대군)
"그게 말이 됩니까? 헛간 안에 있는 물건도 28개는 됩니다." (강채윤)

단 28개의 글자로 한자의 5만여 가지 글자보다 더 많은 사물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강채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심지어 10만 가지, 100만 가지 사물을 표현할 수 있고,  이름·욕·바람 소리까지 세상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강채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판관이 된 강채윤의 한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뿌리깊은나무>의 세종

<뿌리깊은나무>의 세종 ⓒ SBS

그제야 강채윤은 '백성을 위한다'는 세종의 본심을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소이(신세경 분)에게 한글을 반나절 만에 배워, '아부지'라는 글자를 적는 강채윤의 모습은 이채롭고 한편으로 정겨웠다.

어릴 적부터 세종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복수를 삶의 목표로 삼았던 강채윤. 복수를 포기한 그는 한동안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했다. 그랬던 강채윤에게, 한글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됐다. 세종의 '28자'가 운명을 바꾼 것이다. 23일 방송분에서 강채윤은 세종의 요구였던 한글 판관이 되라는 명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강채윤은 세종에게 아비인 석삼의 이름을 전하며 "전하께서 그 이름을 잊지 않기를 원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세종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 같았던 '자객'이, 세종의 한글 작업에 가장 중요한 '판관'이 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주인공 강채윤의 역할 변화를 통해, 본격적인 '한글 반포'의 서막을 알렸다. 한글의 위대함을 세상에 전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글보다 칼 쓰는 것이 익숙했던 강채윤에게 다가온 28개 글자의 한글. 그 한글이 그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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