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이재성(28·록키체육관)이 지난 11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홈링의 마츠모토 아키히로 (21)에게 통쾌한 KO승을 거뒀다. 1라운드 1분 만에 상대를 KO시킨 것. 이로써 한국복싱은 지난 2006년 9월 10일 손정오(30·한남체육관)가 히로시 요시야마에게 판정승을 거둔 이후 무려 5년 3개월 만에 일본 원정경기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상대 선수 마츠모토는 WBC 슈퍼 밴텀급 아시아 챔피언으로 장래를 촉망받는 선수다. 이날 경기가 열린 가나자와 출신인 마츠모토는 홈 팬들의 성원을 업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했다. 이에 맞서는 이재성은 지난 4년간 복싱의 본 고장 미국에 진출하여 라스베이거스 호텔 특설링,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 뉴욕 양키 스타디움 특설링 등에서 경기를 했지만, 현지 적응에 실패하며 2승 3패 1무라는 신통치 않은 성적으로 귀국한 선수였다.

비록 그는 지난 2월 문경에서 IBF 주니어 페더급 아시아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지만,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던 선수급의 기량을 기대했던 고국 관중들에게는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대전료로 잡혀 있던 3천만 원을 아직도 받지 못해 고국 무대 컴백에 환멸을 느끼고 은퇴를 고려하는 등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관련기사 : 이재성 동양챔피언 '출전료 0원', 왜?).

하지만 이재성은 일본 적지로의 원정시합을 택했다. 문병주, 김성태 등 한국 챔피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선수를 꺾고 세계 랭킹에 진입하려다가 번번이 실패하며 은퇴하는 선례를 깨겠노라며 과감히 도전에 나선 것.

원정 경기의 부담이 있었지만... 뼈를 깎는 자세로 임했다

 계체량을 마치고 승리를 장담하는 이재성(좌)과 마츠모토

계체량을 마치고 승리를 장담하는 이재성(좌)과 마츠모토 ⓒ 이충섭


 꼭 이겨달라는 재일교포의 성원에 보답한 이재성

꼭 이겨달라는 재일교포의 성원에 보답한 이재성 ⓒ 이충섭


경기 이틀 전인 12월 9일 현지에 도착한 이재성은 호텔방에서도 땀을 흘리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체중 감량을 마무리했다. 한계 체중인 55.34kg에 못 미치는 55.0kg로 가뿐히 테스트를 통과했다. 상대인 마츠모토 역시 55.0kg를 기록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이재성은 계체량을 통과한 후 쌀죽, 계란, 고구마 등으로 속을 달랜 뒤 각종 음식으로 그간 참아왔던 음식을 섭취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한식을 먹기 위해 찾은 한국 음식점의 재일교포 주인 내외는 "생애 처음 가나자와에서 한국 선수가 경기를 하는 것"이라며 꼭 이겨달라고 성원을 보냈다.

경기 당일, 비가 오는 가운데 입장한 가나자와 시립체육관은 한국을 비롯한 중국, 필리핀 선수들이 나서는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객석이 꽉찼다. 입구에서는 라운드걸들이 모금함을 들고 '일본 대지진 피해 돕기 성금'을 모금했고, 성금을 낸 관중들에게는 일본의 세계 챔피언들이 사인한 보드를 답례로 줬다.

원투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에 KO승

 라운드걸이 대지진 성금 모금함을 들었다

라운드걸이 대지진 성금 모금함을 들었다 ⓒ 이충섭


한국 가수인 2NE1의 노래 <내가 제일 잘나가>를 입장곡으로 선택한 이재성은 아래위 붉은 트렁크와 가운을 입고 자신만만하게 등장했다. 이재성은 라스베이거스, 뉴욕에서의 큰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1라운드를 조심스레 풀어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상대방은 '이재성이 적지라서 불리한 판정을 감안하고 초반부터 강공으로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 예상할 것이니 반대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척하다가 갑작스런 공격으로 흐름을 바꾸겠다는 작전이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작렬하기 직전의 이재성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작렬하기 직전의 이재성 ⓒ 이충섭


예상대로 마츠모토는 장기인 원투 스트레이트로 초반부터 이재성의 복부를 노리며 적극적으로 경기를 전개했다. 이재성은 민첩한 몸놀림과 현란한 스텝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아웃 복싱으로 탐색전을 펴는 듯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났다가 잽을 내며 가볍게 들어가는 듯했던 이재성은 과감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마츠모토의 턱에 정확히 꽂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원투 펀치. 사력을 다해 일어서려던 마츠모토는 다시 한번 넘어지며 링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기 시작 불과 1분만이었다.

 주저앉은 마츠모토

주저앉은 마츠모토 ⓒ 이충섭


 다운당한 마츠코토가 일어나려다가 다시 넘어지고 있다

다운당한 마츠코토가 일어나려다가 다시 넘어지고 있다 ⓒ 이충섭


관중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본 선수의 KO패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재성의 멋진 기량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세계 챔피언을 7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복싱 강국 일본답게 관전 문화 역시 수준급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세컨드들이 링 위에 떨어진 물을 수건으로 닦아 링 바닥을 깨끗이 닦고 정리하고 퇴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재성 "비슷한 상대였기에 어떻게 나올지 예상했다"

 이재성의 손을 들어주는 주심 수기야마 토시오

이재성의 손을 들어주는 주심 수기야마 토시오 ⓒ 이충섭


이재성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를 통해 "지난 2월의 한국 경기는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경기였다"며 "3년 만에 고국 팬들을 만났기 때문에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부담이 작용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오늘 경기는 몸 상태도 최상이었고, 준비한 전략이 적중했다"며 "나랑 신체조건과 주무기가 비슷한 상대였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충분히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재성은 "서로 잽으로 거리를 재려고 왼손만 내는 상황에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한 타이밍에 정확히 맞추겠다는 작전이 적중했다"며 "완벽한 준비를 지원해준 스태프들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성과 그의 팀원들이 기자들을 향해 선 모습

이재성과 그의 팀원들이 기자들을 향해 선 모습 ⓒ 이충섭


덧붙이는 글 이충섭 기자는 현지에서 이재성 선수의 세컨드로 직접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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