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정도의 자막은 등장할 줄 알았다. 대신 '박근혜 비키니'가 공중파로 전파됐으며, 노래방에서나 불렀음 직한 저음의 '빙고'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불편한 관계라 짐작되는 진행자 김제동과의 묘한 긴장감이 방송 초반을 지배했다. 어린 나이, 부모를 연달아 잃은 '수첩 공주'의 애달픈 사연이 50~60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는 제보도 심심치 않았다.

2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가 '박근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최지우가 출연한 한 주 전 5.9%보다 6.3%P 수직으로 상승하며 전국시청률 12.2%를 기록했다. 2005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후 6년 만에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입증된 셈이다.

이에 제작진은 매끄러운 편집과 예능과 토크쇼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수완으로 화답했다.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정치 현안이나 시사에 대해서는 스피드 퀴즈나 짤막한 토크를 통해 적절히 건드려 줬고, 후반부엔 '퍼스트레이디' 직을 수행할 수밖에 없던 어려움과 부모를 잃고 침잠하다 "IMF 이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정치로 뛰어들었다는 정치인 박근혜의 행보를 조명하기도 했다.

특히 "씨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던 김제동과의 미묘한 분위기는 이날 <힐링캠프>의 관전 포인트였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김제동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은 "나도 그러고 다녔다"고 응수하거나, 안철수 위원장의 인기에 대해선 "요즘 화두인 소통과 대화에 능한 것 같다"거나 강용석 의원의 최효종 고소 사건에 대해서도 "풍자로 봐야 할 것이며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라는 정석과도 같은 대답들을 내놨다.

박 위원장은 또 아이유를 비롯해 연예인들은 물론 '지못미' '애정남' 등 신조어에도 능숙한 모습을 보여 '이미지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방송 직후 다음에 개설된 '<힐링캠프> 박근혜 편 어땠나요?'라는 설문엔 3일 오후 3시까지 9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참여, 62.7%가 'UP', 37.3%가 'DOWN'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평소 지지율을 뛰어넘는 호의적인 결과다.

 <힐링캠프>에 출연 김제동과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힐링캠프>에 출연 김제동과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SBS


2012년 정치의 계절에 만난 정치인과 예능, 행복한 공생 이뤄낼까?

정치인답지 않은 친근한 모습과 그간 비출 수 없던 속내 털어놓기는 정치인의 예능, 토크쇼 프로그램 출연의 장점일 것이다. 특히 리얼리티의 강조와 더불어 감동까지도 엮어내는 최근 예능의 분위기로 봤을 때, 2012년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인들의 TV 나들이는 잦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예능으로서는 새로운 얼굴의 출연이요, 정치인들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이미지와 인지도를 제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3일 방송되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 집착남'으로 출연하는 강용석 의원은 '최효종 고소' 사건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힐링캠프> 박근혜 편에 대해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경규 '화성인 바이러스'에선 나한테 그렇게 버럭 대더니 박근혜 앞에선 거의 고양이 앞의 쥐. 섭섭합니당"이라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간 안철수 교수, 박원순 서울 시장 등을 고소했던 강용석 의원. 재선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무소속의 입지를 그가 방송을 통해 상승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리틀 강용석'이란 별명이 생긴 이준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 위원은 5일 방송되는 MBC <주병진의 토크콘서트>에 출연한다.

원래 박근혜 위원장을 섭외했던 MBC 측이 그 대타로 이준석 위원을 새해 첫 인물로 내세운 셈. 이준석 위원은 방송 출연에 대해 "디도스 검찰수사 국민검증위원회 위원 공모를 하겠다"고 공언했고, 이에 강용석 의원은 이에 "유승민(이) 아빠 친구인지 몰랐다는 거짓말하지 말고 의혹을 밝히라"고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새해 첫 주부터 정치인들의 방송 출연이 잦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당 측 인사가 줄줄이 출연하는 가운데 9일 <힐링캠프>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출연이 예약돼 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SBS 스페셜 <만사소통>을 통해 조국 서울대 교수를 만난다. 국민은 여전히 정치인들의 민낯과 속내가 궁금하다. 2012년, 정치인과 예능은 과연 행복한 공생을 이룰 수 있을까? 

박근혜 힐링캠프 문재인 강용석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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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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