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박종원 시민기자는 "당장,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오마이스타>는 '절대공감'합니다. 그래서 '서태지와 아이들 특별 섹션'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한 번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주제로 하는 원고나 사진 기꺼이 모십니다. 독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세월, 정말 빠릅니다. 아니, 벌써, 올해가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0주년이라고 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16년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4년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 또 그들의 음악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라면 잘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서 돌아가 봤습니다. 그들의 '다름'을 또 다른 '그들'이 어떻게 대했는지를 말입니다.

1993년 한국갤럽연구소 여론조사 … 예고된 험난한 여정

 1993년 2월 20일자 <경향신문>

1993년 2월 20일자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캐스트 캡쳐


정말 그들의 등장이 충격적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일개' 가수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라니. 1993년 2월 <한국갤럽연구소>의 이른바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호감도' 조사, 기사 마지막 대목이 특히 눈을 끕니다. "전체 응답자 81.4%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다고 했고, 정신 사납고 시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신 사납고 시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여론 조사에 이런 항목이 포함됐을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또 기자의 '주관'이 반영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보도를 통해 하나는 분명히 예감할 수 있겠지요. 그들의 험난한 여정은 예고돼 있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옛날 신문 고정 코너 '독자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993년 5월 11일자 <경향신문>에는 "TV에 왼쪽 귀에 귀고리를 하고 있는 남성 연예인들이 가끔 눈에 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거나 유행을 따르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꼴불견임에 틀림없다"는 독자 의견을 내보냅니다.

1993년 7월 3일자 <동아일보> 독자의견 또한, 지금 보니 웃기면서도 한편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흑인 머리를 방불케 하는 꼬불꼬불 철사머리에는 혐오감마저 느꼈다", "프로듀서를 비롯한 방송관계자들은 교사의 입장에서 선도하고 제재를 가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TV에 나오려면 머리를 풀라"

 1993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

1993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캐스트 캡쳐


그리고 곧, 그 '교사의 입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선두에 나선 '교사'는 KBS였답니다. 당시 보도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머리를 라면처럼 꼬은 레게 퍼머"를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지요. 1993년 6월 26일자 <경향신문> 보도입니다.

"활동 중단 6개월만에 새 앨범을 내고 방송 출연을 재개한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26일 KBS 2TV의 <토요 대행진>에 출연키로 했으나 KBS의 공영방송다운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방침에 따라 출연이 취소됐다."

'공영방송다운 오락 프로그램 제작방침', 그 '교사 방침'은 이러했습니다. ▲귀고리를 했거나 장발을 한 남자연예인 ▲찢어진 청바지나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 ▲왜색풍이나 히피족 차림을 한 연예인과 사생활이 문란한 연예인. 이상 연예인들은 KBS 채널에 등장하지 못한다. 땅, 땅, 땅.

이에 따라 제작진이 "TV에 나오면 머리를 풀라"고 요구하자, <서태지와 아이들>이 '고렇게는 못하겠다', 이렇게 된 것이었지요. 이와 같은 방침은 당시 홍두표 KBS 사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접 밝힌 것이었는데요. 참고로 이 분, 현재 <중앙일보> JTBC 방송담당 회장님입니다. JTBC 파이팅! (^^)

"됐다"고, "그런 가르침은 됐다"고 외칠 수 밖에

 1995년 9월 29일자 <한겨레>

1995년 9월 29일자 <한겨레> ⓒ 네이버 뉴스캐스트 캡쳐


어쨌든, 다음 해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정화 운동'으로 확산됩니다. 방송 3사 모두 "시청자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출연자들의 머리 모양, 복장, 액세서리 등을 규제했던 것이지요. 결국 가수들은 쇼·오락 프로그램 출연 전에 담당 PD들로부터 '복장 검사'를 받았다고 하네요.

뭐, 70년대 장발 규제, 80년대 '사회정화운동'의 맥을 잇는 일대 '쾌거'라고 할까요. 이에 당시 가수 강산에는 TV 출연 거부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하죠. "가수 역할이나 능력과 아무 관계없는 머리 길이를 출연 조건으로 삼는 것은 대중 예술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또한 이렇게 외칠 수 밖에요.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그 다음은 아시죠. '선생님들' 대응이 얼마나 졸렬했는지요. 이름하야, '교실 이데아' 거꾸로 듣기 바람을 이용한 '주홍글씨' 쾅! 당시 KBS는 <연예가 중계>를 통해 '몸소' 시연까지 하면서 당사자 반론 한 마디 없이 학생들의 '치기'를 사실상 '사탄'으로 낙인을 찍는데 이용하지요. 쾅! 봐봐, 봐봐, 그럴 듯 하지? 얘네 '넘' 위험한 아이들이야. 그리고 정면 충돌이 일어나지요.

정부, 검찰, 방송 … 그들의 전면적인 공격

 1995년 10월 21일자 <경향신문>

1995년 10월 21일자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캐스트 캡쳐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시대유감'에 대한 대대적 가위질. 시대에 유감을 나타냈으니 우리도 너희들 노래 가사에 유감을 나타내겠다는, 공연윤리위원회(아래 '공륜')의 이와 같은 결정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사를 전면 삭제해 연주곡으로 바꾸는 것으로 '응전'합니다. 합니다만.

사실 그 '승부'는 뻔한 것이었어요. 검찰,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잘 아시죠? 1995년 10월 공륜은 '컴백 홈', '필승' 등 일부 가사가 심의 때 제출한 것과 다르다며 제작사에 대한 행정조치를 당시 문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어쩌면 이름까지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진다냐 ^^)에 행정조치를 의뢰하는 한편, 불법음반 배포혐의로 검찰에 고발합니다.

여기에 KBS는 가수에게는 치명적인 '표절 논란' 확대 재생산으로 힘을 더합니다. KBS 심의실이 '컴백홈'이 사이프레스 힐 노래와 리듬 및 창법과 흡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지요. 창법이 표절의 근거라니...참으로 웃기면서도 슬픈 한 편의 코미디 아니겠습니까.

이를 두고 당시 강헌 음악평론가는 "남인수와 이난영에서 시작된 수 십 년 간의 트로트 음악 전부가 왜색창법이라고 판정을 내린다면 KBS 주장에 동의해주겠다", "디스코부터 레이브에 이르기까지 모든 한국의 댄스뮤직이 서구리듬을 표절했다고 판정한다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도 있다"며 '통곡'을 하지요. 그야말로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대놓고 탄압'이었으니까요.

그저, 그런 시대가 유감이었다고 하면 끝나는 걸까

그리고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언론들은 '갑작스러운 은퇴' 등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이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다름'을 또 다른 '그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고 나니 드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고작 4년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일 겝니다. 그리고 '오늘'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엄청나게 밀린 '숙제'라는 생각, 저만의 생각일까요. '다름'에 탄압으로 응전했던 시대, 그저, 그런 시대가 유감이었다고 하면 끝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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