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죽는다! 넌 죽어, 자식아!!" (전광렬)
"뭐 던질 것 같다, 피해!" (이주환 PD)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 리허설 현장. 연기자들의 상대역 대사를 맞춰주던 이주환 PD가 전광렬의 '분노 연기' 이후 몸을 피했다. 극 중, 권력의 핵심 장철환 역의 전광렬이 강기태(안재욱 분)와 통화 후 수화기가 부서져라 전화를 끊는 장면을 촬영하는 중이다.

리허설만 아니면 전화기를 냅다 던질 셈이었다. <빛과 그림자> 팀은 촬영 때문에 이틀 밤을 샜다고 한다. 연기자며, 스태프며,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리허설은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장철환(전광렬 분)은 다혈질적인 성격의 욕망이 가득한 순양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강기태(안재욱 분)를 몰락시킨 장본인이자, 권력의 핵심이다.

장철환(전광렬 분)은 다혈질적인 성격의 욕망이 가득한 순양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강기태(안재욱 분)를 몰락시킨 장본인이자, 권력의 핵심이다. ⓒ MBC


한국 현대사 굴곡 가운데 놓인 빛나라 쇼단

이제 3분의 2 지점을 넘어선 50부작 <빛과 그림자>가 19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후, 리허설 현장을 공개했다. 다수의 출연진을 자랑하는 만큼, 무려 10명이 넘는 연기자들이 참석했다.

<빛과 그림자>는 1960년대부터 반세기에 이르는 한국의 현대사 안에서 빛나라 쇼단을 통해 연예계가 겪는 변화를 그리고 있다. 굴곡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이야기와 함께 묶인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체감도는 배우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1984년생인 남상미(이정혜 역)가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해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라면, 1949년생인 박원숙(박경자 역)은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고. 박원숙은 10.26 사건의 무대가 되는 궁정동 안가에 대해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1주일에 2번 정도는 들렀다고 들었다"며 "그 분이 오실 때는 무등산 수박과 전복이 꼭 준비돼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드라마의 시대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배우는 극 중 복장 그대로 참석한 성지루였다. 빛나라 쇼단 단장 신정구 역을 맡은 그는 화려한 70년대 유행 스타일을 위해 늘 패션에 신경을 쓰는 듯했다. 성지루는 옆머리는 가라앉히고, 윗머리만 띄우는 독특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며 "스태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MBC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강기태 역을 맡은 안재욱. 강기태는 순양 유지의 철부지 장남으로 살다가 신정구 쇼단을 만난 후, 화려하면서도 고독한 연예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고의 쇼맨으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MBC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강기태 역을 맡은 안재욱. 강기태는 순양 유지의 철부지 장남으로 살다가 신정구 쇼단을 만난 후, 화려하면서도 고독한 연예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고의 쇼맨으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 MBC


안재욱 "우리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해야 할 것"

배경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극인 만큼, 이야기가 지나치게 방대해지는 문제도 있었다. '연예계 대부'로 쇼단을 이끄는 강기태 역의 안재욱은 이 부분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안재욱은 "원래 드라마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대의 여러 상황을 다 담으려 하기보다, 쇼단을 중심으로 한 대중연예계의 모습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것.

안재욱은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담으려다가는 500부도 모자랄 것"이라며 "이러다가 칼(KAL)기 폭발까지 나오는 거 아냐?"고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화려한 쇼 무대 뒤가 더 궁금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정치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는 드라마인데, 정작 연예계 이야기는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일전에 보도된 '방송 연장설'은 그에게 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었다. 안재욱은 "그냥 막연히 얘깃거리가 있겠다 싶어 늘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누구를 위한 연장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연장을 논할 만큼 성공한 작품이 아니"라는 꽤 솔직한 발언도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의 네 남녀, (왼쪽부터) 안재욱·손담비·남상미·이필모. 강기태(안재욱 분)와 차수혁(이필모 분)은 죽마고우지만, 수혁은 최고 권력자를 보좌하는 경호실 요원이 된 후로 기태와 부딪힌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정혜(남상미 분)의 마음이 기태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기태를 넘어서기 위해 야망의 질주를 시작한다.

<빛과 그림자>의 네 남녀, (왼쪽부터) 안재욱·손담비·남상미·이필모. 강기태(안재욱 분)와 차수혁(이필모 분)은 죽마고우지만, 수혁은 최고 권력자를 보좌하는 경호실 요원이 된 후로 기태와 부딪힌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정혜(남상미 분)의 마음이 기태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기태를 넘어서기 위해 야망의 질주를 시작한다. ⓒ MBC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연기자들의 치열함만큼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빛과 그림자>가 내내 차지하고 있던 월화극 1위 자리를 몇 주전부터 SBS <샐러리맨 초한지>에게 빼앗겼기 때문. <샐러리맨 초한지>가 종영하면서 <빛과 그림자>의 스퍼트가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시청률이나 경쟁 드라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송미진 역의 이휘향은 기자들에게 배우가 가장 힘이 날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고 물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연기하는 내 모습에 만족했을 때"라고 답했다. 안재욱의 "지금 강기태에 만족할 수 없다"는 불만스러운 토로 역시, 배우로서 이휘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과 같은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20회 가량을 남긴 <빛과 그림자>가 풀어 가야 하는 과제는 외부 요인이 아닌 내적인 고민에 있었다. 해답은 '그림자'인 시대 상황보다는 '빛'이 되는 연예계, '빛나라 쇼단'의 이야기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채영(손담비 분)은 일개 무용수에서 단숨에 인기가수가 된 인물. 자신의 시중이나 들던 정혜(남상미 분)가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기태의 사랑까지 차지하게 되자 질투심으로 욕망의 수렁에 빠진다.

유채영(손담비 분)은 일개 무용수에서 단숨에 인기가수가 된 인물. 자신의 시중이나 들던 정혜(남상미 분)가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기태의 사랑까지 차지하게 되자 질투심으로 욕망의 수렁에 빠진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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