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영화 <건축학개론>에 대한 리뷰를 쓰기에 앞서 고백부터 해야겠다. 현재 기자는 나름대로
원고가 밀려있는 상태다. 우선 '오마이뉴스 2012 총선특별취재팀'의 일원으로서 총선에 대한 기사가 그 하나요, 한 달 전 장인어른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 대한 기사도 있으며, 계속해서 쓰고 있는 까꿍이 육아일기도 있다. 최근 인기를 감안하면 1주일 전에 봤던 영화 <화차>에 관한 리뷰도 시급한 편이겠군.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엊그제 본 영화 <건축학개론>에 관한 글을 지금 쓰고자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내용의 글들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 따끈따끈한 밥에 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왜?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사랑 이야기.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대부분 영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할 것이고, 감독 역시 이를 노렸으리라는 걸.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난 영화를 보면서 15년 전의 내 청춘을 떠올렸고, 아주 오랫동안 그 여운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찬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의 소환. 아무래도 난 이 영화를 몇 번 더 볼 것 같은데, 아마도 이것이 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나의 첫사랑 이야기

@IMG@

우선 내가 영화를 보면서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승민의 찌질한 모습이 바로 나의 과거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면서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혼자 열병 앓듯 지내다가 제 풀에 꺾이는, 그래 놓고서는 상대방 때문이라고 자위하는 못난 모습.

또한 승민은 대학 진학과 함께 처음으로 계급차를 느끼고, 그것 때문에 쉬이 첫사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이 역시 15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것이 용기 없음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계급차에 대한 새로운 인지는 다시금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을 것이며, 이는 스무 살 청춘이 기죽고 움츠러들 또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아무리 첫사랑이라 한들 그 장애물로 계급차가 존재한다면 이를 극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IMG@

그래서 사랑을 져버리는 게 당연하냐고? 물론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실을 깨닫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계급차를 인지한 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든, 아님 자신이 그 높은 계급에 편승하겠노라고 결심을 하든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훌쩍 지나 그 시절 그 추억이 풋풋하고 아름다웠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아마도 승민은 첫사랑과 헤어진 이후 내내 그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그리고 그 비겁함과 쪼잔함에 대해서 스스로를 책망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쌍년'이라고 한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한 것이다. 도대체 선배가 술에 취한 서연을 데리고 집에 와 뉘였다 한들, 그리고 그런 선배가 소위 '압서방' 출신의 잘 나가는 '강남 얘들'이라 한들, 무어가 그리 대수였는지. 어쨌든 그 뒤로도 서연은 계속해서 그런 승민을 만나고자 하지 않았던가.

@IMG@

@IMG@

결국 승민이 가졌을 첫사랑의 아련한 아픔은 사랑했던 그녀를 잡지 못한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며, 그리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못난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다. 그녀를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며 애꿎은 택시기사에게, 그리고 동네 불알친구에게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자후와 폭풍 같은 오열은 스무 살의 젊음이 겪을 수밖에 없는 홍역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첫사랑을 차마 잊지 못하는 건 그만큼 많은 미련이 남기 때문인데, 이는 이미 지나버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갖는 회한과 비슷하다. 나이 먹고 뻔뻔해진 지금에는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을, 세파에 찌든 지금의 나는 눈썹 까딱하지 않을 일을, 왜 그때의 나는 그토록 주저하며 망설였는지.

@IMG@

이런 맥락에서 영화를 보며 내내 가슴 졸였던 건 서른을 훌쩍 넘긴 승민과 서연의 만남이었다. 더 이상 순수하지도, 어수룩하지도 않은 두 남녀. 과연 그들은 스무 살 당시의 감정을 확인한 후 다시 사랑하게 될까? 술 마신 뒤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이혼녀 서연과 거친 세파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아 결혼을 앞둔 승민이 이어지게 될까? 첫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많은 아저씨들의 판타지가 실현되는가?

다행히(?) 감독은 이와 같은 판타지를 두 남녀의 짙은 키스로 갈무리한다. 혹자는 키스 후 두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했을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도 내놓지만, 아직도 첫사랑을 아련한 아픔으로 두고 있는 이의 입장으로 두 남녀의 진도는 딱 거기까지 여야만 한다. 비록 가슴 시린 첫사랑이지만, 그렇다고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건 천박한 삼류애정소설이요, 비극의 잉태일 뿐이다. 추억은 추억으로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닳고 닳은 지금의 내가 순수했던 15년 전의 내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미국으로 떠난 승민은 소포를 통해 서연에게 스무 살의 첫눈 오던 날 그녀가 가져다 놓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되돌려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그렇게 과거의 사랑을 완성시킨 것이며,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한 것이다.

<건축학개론>의 공간과 건축

나의 젊음을 이야기하는 영화 <건축학개론>.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쉽게 15년 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첫사랑에 대한 추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관객들의 과거로의 여행을 돕고 있었는데,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나 낯익은 음악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IMG@

우선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을 보자.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그 시절에 행했던 경험담이다. 처음 무스를 바르다가 머리를 감는 모습이나 삐삐 들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모습이나 옆에서 온갖 똥폼 다 잡으며 익숙한 그 시대의 비속어를 날리는 재수생 친구와의 우정 등. 게다가 영화 곳곳에 깔린 당시의 노래들은 나같은 90년대 학번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노래는 과거로 돌아가는 가장 확실한 소품 아니던가. '이젠~' 하며 김동률의 저음이 매력적으로 깔리는 '기억의 습작'의 감동이란.

그러나 이로써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자니 왠지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90년대 학번들 외 다른 세대들의 영화에 대한 공감대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다들 감동하는 것일까? 단순히 첫사랑의 감정에 대한 공유 때문일까?

@IMG@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시선이었다. 영화 속 신촌 캠퍼스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도 추억이었지만, 영화 <건축학개론>은 최근에 관람했던 독립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정기용 선생이 지적하고 있던 공간의 역사성과 그 공간을 조직하는 방법으로서의 건축을 조화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공간은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소환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 영화는 그 공간을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결국 건축의 본질이란 그 공간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관객들에게 자기 주변에 그와 같은 공간이 없는지, 그리고 만약에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보존해야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영화는 서연이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제주도의 옛 집을 고쳐 짓겠노라며 승민을 찾는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그 옛날 가족이 살았던 집을 다시 짓고자 하는데, 대신 예전의 흔적을 간직하고자 한다. 무식하게 마냥 부시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과거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리모델링을 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키가 새겨져 있는 벽돌과 어린 자신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콘크리트마저 소중하게 품어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공간. 

@IMG@

결국 영화가 이야기하는 첫사랑이란 서연이 제주도에서 짓고 있는 건축물과 같다. 비록 색이 바랜 옛날 이야기지만, 현재의 내가 엄연히 그것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이상, 과거의 흔적은 무조건 부수고 다시 세워야할 대상이 아니라 간직해야할 소중한 그 무엇이다. 노망난 아버지게에겐 돌아갈 집이 되고, 상처입은 개인에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공간. 아마도 건축학도 출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와 같은 공간과 건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첫사랑 이야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떠오른 공간 중 하나는 구럼비 바위의 제주 강정마을이었음을 밝힌다. 영화는 개인의 사소한 기억을 상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특정한 공간과 건축이 가지는 존재의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하물며 구럼비 바위다. 수백년 내려온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 공간. 그런데 이 천박한 시대는 그와 같은 흔적을 너무 쉽게 부수려하고 있다. 혹자들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는 바로 그 공간을. 당신이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지난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렸다면, 그것이 곧 우리가 구럼비 바위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투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그나저나, 내 첫사랑은 잘 살고 있는지. 에라,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들은 뒤 다른 글을 써야겠구나.

건축학개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