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의 한 장면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의 한 장면 ⓒ UPI코리아


무려 80%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대다수가 노무현 정부시절 이뤄졌다는 청와대의 '유체이탈화법'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도 사찰 피해자임을, 전 정권에서도 누차 사찰이 이뤄졌음을 강조하는 중이다.

이른바 <쥐코>라 제목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사찰을 알려진 것이 2010년. 그러나 이 민간인 불법 사찰의 뿌리가 <쥐코> 동영상이 인기를 얻었던 2008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출발한다는 그 악질성에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의 목소리까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정작,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심각성이 그리 체감되지 않는 분위기다.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겪은 강건한 국민들이라서? 부도덕한 정권의 헛발질을 4년 간 감내해왔기 때문에? 그도 아니면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달려가야 하는 급박한 스케줄이라서?

그래서 엄선했다. 민간인 사찰의 무시무시한 공포와 도덕적 헤이가 어느 만큼인지 체감할 수 있는 영화들을. 우리네 현실은 전설적인 <쥐코> 동영상으로 충분하다. 포털에 두 글자만 쳐도 널려있다. 시간도 25분으로 짧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할 것이 바로 사찰 피해자의 고통스런 심정과 불법 사찰 실무자들의 심리, 더 나아가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정신 상태까지다. 작년 개봉해 조용히 막을 내린 우리 영화 <모비딕>,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독일영화 <타인의 삶>, 그리고 미국대통령 닉슨과 FBI의 창시자 에드가 후버가 주인공인 미국영화 <프로스트 VS 닉슨>과 < J. 에드가 >가 이에 해당한다. 시청각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영화 <모비딕> 중 보안사 민간사찰에 관한 양심선언 기자회견 장면

영화 <모비딕> 중 보안사 민간사찰에 관한 양심선언 기자회견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윤석양 이병 사건을 소재로 삼은 한국영화 <모비딕>

민간인 불법 사찰이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1990년 윤석양 이병 사건이었다. 윤 이병은 당시 보안사에서 탈영,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해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한 바 있다. 작년 개봉한 <모비딕>이 이 실화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음모론'을 소재로 한 과거 배경의 스릴러 영화인 척 하며 충분히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김종익씨 사건을 통해 정황이 드러나 민간인 불법 사찰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모비딕> 속 허구인 1994년 발암교 폭파사건은 정부에 의해 (바로 그 북한의 소행!) 간첩사건이라 발표된다. 하지만 명인일보 이방호(황정민) 기자 앞에 고향 후배 윤혁(진구)가 나타나고, 윤혁은 그 간첩단 사건이 바로 보안사에 의해 조작됐으며 자신이 그 간첩단 중 한명을 오랫동안 사찰해왔음을 실토한다. 물론 결말은 윤 이병의 양심선언이 이뤄지는 실화와 같다.

기자들의 활약을 전면에 내세운 <모비딕>은 그러나 윤혁의 고통과 함께 사찰의 생생한 현장을 스크린에 불러 온다. 사찰 당사자들은 '무조건 미행'과 '도청'을 일삼으며 피해자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장한 끝에 결국 의문사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모비딕>에서 가장 울컥하는 동시에 공분을 일으키는 장면은 바로 윤혁이 사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다. 영문도 모른 채 간첩으로 둔갑한 채 약혼자를 떠나 보낸이의 절절함과 무릎을 끓고 사죄하는 윤혁의 죄책감. 이 장면은 현실에서 피해자와 내부고발자로 만난 김종익씨와 장진수 전 공직윤리비서관실 주무관의 포옹을 연상시킨다.

 영화 <타인의 삶> 중 한 장면

영화 <타인의 삶> 중 한 장면 ⓒ 유레카픽쳐스


냉전시대 동독을 배경으로 한 도청이야기 <타인의 삶>

200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타인의 삶>은 시계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0년대 중반의 동독으로 되돌린다.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 치하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 유린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그 시절, 나라에 대한 충성과 그런 신념에 충실하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쉬 뮤흐)는 최고의 극작가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그의 애인인 여배우 크리스타(마티나 게덱)의 감시와 도청 임무를 맡게 된다.

<타인의 삶>의 리얼리티는 어쩌면 우리와 같이 분단을 겪은 국가만이 묘파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영화의 핵심은 냉혈한이었던 비즐러가 정교하고 또 기계적인 도청 와중에 극작가 드라이만의 예술과 열정적인 삶을 동경하다 동일시하게 된 뒤, 종국에는 인권과 자유의 중요성을 깨닫고 드라이만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데 있다.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한  극적 긴장감과 인간 변화의 감동 드라마가 엮여 있다.

그러나 다소 낭만적인 <타인의 삶>의 배경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이다. 냉전시절의 통일 전 독일은 결코 장진수 주무관의 폭로로 촉발된 현재 우리의 민간인 사찰과 비교될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삶을 유린하고 또 조종하고 관장할 수 있는 사찰의 심각성을 되새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에드가 후버를 연기한 < J. 에드가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에드가 후버를 연기한 < J. 에드가 > ⓒ 워너브러더스


그리고 권력자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두 편의 미국영화

"대통령이 국익에 최선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고, 그래서 불법인 것도 한다고요?"
"대통령이 하면 그건 불법인 아닌 거란 말이요. 난 그렇게 믿고 있소."

한물 간 방송인 프로스트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 닉슨과의 인터뷰 방송의 막전막후를 그린 <프로스트 VS 닉슨>의 결정적인 장면은 이거다. 정치계로 복귀를 희망했던 닉슨을 한 방에 보내버린 이 인터뷰를 다룬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인터뷰어를 만만하게 봤던 노쇠한 정치인이 자신의 진심을 내뱉을 때다.

절대 권력의 왕좌 위에서 벌인 일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강건한 믿음. 이러한 믿음은 FBI를 창설하고 '빨갱이' 척결과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온 FBI의 창설자의 일대기를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 J. 에드가 >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가끔은 약간의 불법도 필요한 것 아닌가. 나라의 안전을 위한 거라면."

특히나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 J. 에드가 >에서 일생을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에드거 후버의 삶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또 그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집에 찼던 것인지를 균형 있게 잡아낸다.

<프로스트 VS 닉슨>과 < J. 에드가 >는 특히 그 절대권력 위에서 민간인 사찰 따위는 우습게 아는 대통령을 위한 영화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이고, 또 누구를 위한 '불법'인가. 대통령이 사랑해마지 않는 미국산 영화들은 이렇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의 심리를 통찰해주고 있다.

민간인불법사찰 모비딕 타인의삶 프로스트VS닉슨 J.에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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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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