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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날카롭고 예리한 창도 방패가 부실하면 끝?'

2008년 1월 19일(현지시각) 영국 뉴캐슬에서 있었던 UFC 80 'RAPID FIRE'는 폴 테일러(31·영국) 입장에서 악몽 같은 대회였다. 이전까지의 아쉬웠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고자 야심차게 출격했지만 또다시 비슷한 패턴으로 패배하며 분루를 삼켜야했기 때문. 이날 폴 켈리(27·영국)와 맞붙은 테일러는 3라운드 내내 압도당한 끝에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더더욱 아쉬웠던 점은 켈리는 당시 UFC 데뷔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켈리가 마이너무대에서 무패의 성적을 기록한 기대주였다고는 하나 UFC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급 파이터가 메이저 초짜에게 한수 가르쳐주기는커녕 원사이드하게 당해버렸으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던 한판이었다.

더욱이 같은 켈리는 테일러와 같은 영국 국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테일러가 누렸던 영국 출신 프리미엄이라는 이점마저도 상당 부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경기 초반의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 켈리는 공이 울리기 무섭게 거칠게 달려들며 주먹을 뻗어냈으나 테일러 역시 지지 않고 같이 맞불을 놓았다. 잠깐의 공방전이었지만 타격의 정확성과 핸드 스피드에서는 테일러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모습이었고 이후 켈리는 점점 뒤로 밀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웰터급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 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초반의 난타전은 결국 테일러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타격으로는 안되겠다고 느꼈는지 켈리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테일러는 너무 쉽게 그라운드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라운드 공방전이 펼쳐지자 테일러는 일방적으로 몰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같은 패턴이 먹힌다고 생각되자 켈리는 3라운드 내내 그래플링을 선택했고 테일러는 자신의 장기인 타격을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테일러에게도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테일러는 중간중간 켈리의 빈틈을 발견했고 그럴 때마다 초크나 팔을 노린 관절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어설픈 그의 서브미션 시도는 켈리가 충분히 힘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고, 결국 포지션을 뒤집거나 그라운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테일러 입장에서는 차라리 초크의 기회가 왔을 때 상대의 목을 버팀목 삼아 일어나 버렸더라면 조금 더 나은 경기 운영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일단 테일러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타입이면서도 초반부터 지나치게 인파이팅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던 점이 문제였다. 테일러는 타격가 스타일 중에서도 그라운드가 특히 좋지 않은 편인데 이 같은 약점을 최소화하려면 적어도 상대의 테이크다운에 대한 대비가 절실했다.

그런데 이런 요소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인파이팅으로 밀어붙인 점은 상대의 테이크다운에 자주 걸릴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이는 1라운드부터 페이스를 망쳐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테일러는 자신이 탑포지션을 차지한 상태에서도 쉽게 포지션 역전을 내줄 정도로 유지 능력조차 좋지 않다. 이점은 비단 켈리전뿐 아니라 이전 마커스 데이비스(37·미국)와의 경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테일러는 같은 타격중심의 파이팅을 구사하는 데이비스를 맞아 한 수 위의 타격 능력을 선보이며 하이킥으로 다운을 빼앗는 등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데이비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탑포지션을 차지한 테일러는 거침없는 파운딩을 통해 금방이라도 경기를 끝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근성과 투지가 뛰어난 데이비스는 끝까지 테일러의 파운딩을 버티어냈고 되레 언제 충격을 받았냐는 듯 포지션을 역전해버린 후 파운딩 연타에 이은 서브미션으로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테일러 입장에서는 다 잡은 경기를 놓친 그야말로 통한의 역전패였다. 그리고 이전까지 엇비슷했던 데이비스와 테일러의 입지는 상당부분 엇갈리는 모습까지도 보였다.

실제로 둘은 UFC 80에서 메인매치와 다크매치로 서로 다른 입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런 만큼 테일러로서는 1승이 절박했으나 데뷔전을 치르는 유망주에게마저 패하며 체급 전선에서의 입지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테일러가 속했던 당시의 웰터급은 UFC 내에서도 '죽음의 체급'으로 불릴 만큼 경쟁률이 치열한 무대다. 존 피치같은 세계 최고의 그래플러중 한 명이 다크매치를 전전 했을 정도인데, 이같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웬만큼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서는 웰터급에서 돋보이는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현실을 고려했을 때 테일러는 자신만의 장점을 확실하게 살려야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기량이라는 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봤을 때 다른 면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만이 체급 내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테일러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라는 점에서 약간의 플러스 요인을 갖고 있었다. 대대로 웰터급에서 뛰고 있는 대부분의 강자들은 그래플러 타입이 유달리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테일러는 희구성 등에서 분명 가치가 있는 파이터라고 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영국 출신이라는 부분 역시 실보다는 득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많았다.

테일러 자신이 어느 정도의 성적만 보여준다면 기량 이상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하지만 연이은 패배로 테일러의 상품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버렸으며 이제는 추억 속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도 UFC 웰터급은 어설픈 타격가들에게 무덤이나 다름 없었다.

UFC 80 'RAPID FIRE' 2008년 영국 지옥의 체급 웰터급 폴 테일러라는 타격가 그래플러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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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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