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하는 롯데자이언츠 팬의 모습

환호하는 롯데자이언츠 팬의 모습 ⓒ 롯데자이언츠


야구 열기가 심상치 않다. 프로야구 개막 23일째인 지난 4월 29일, 누적 관중 수가 100만을 돌파했다. 경기로 따지면 65경기만으로, 이는 역대 최소경기 기록이다. 열기가 뜨거운만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시즌 개막 전 세운 목표 관중 수인 710만을 넘어 800만 관중 동원도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야구 열기를 지탱하는 기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뛰며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와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플레이에 울고 웃는 응원단과 관중들이 이 드라마의 '조연'쯤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주연과 조연으로만 드라마가 완성될 수는 없는 법. 모두가 경기를 바라보며 환호할 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또는 가득 찬 관중석을 누비며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야구라는 드라마에 빠지면 어딘가 섭섭한 '조미료' 같은 존재다.

[경기 전 풍경] '김밥'은 안 되고 '치킨'은 된다?

 과자를 들고 경기장을 돌아다니시는 아주머니

과자를 들고 경기장을 돌아다니시는 아주머니 ⓒ 윤형준

일요일인 4월 29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렸다. 야구 열기를 방증하듯, 26도에 이르는 초여름 날씨에도 잠실야구장의 2만7000여 좌석은 매진을 기록했다. 경기 시간 직전까지 야구장 밖은 예매한 티켓을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사이, 야구장의 '조미료',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프로야구는 유난히 '먹거리'를 찾는 관중이 많은 스포츠다. 평일에는 오후 6시 반, 토요일에는 오후 5시, 일요일에는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경기 시간도 이에 일조하고, 2시간은 기본이고 길어지면 3시간도 훌쩍 넘겨 버리는 유난히 긴 경기시간 역시 관중들을 '출출하게' 만든다. 관람 내내 응원을 한다는 점도 먹거리를 찾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종합운동장역부터 잠실야구장까지 가는 짧은 길은 온통 행상으로 북적였다. "김밥 천원에 사가이소", "얼음물 있습니다"를 외치며 손님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김밥을 사가는 손님은 몇 되지 않는다.

잠실야구장은 야구장 안에 출입구마다 1개 이상씩 편의점이 있어, 굳이 이곳에서 음식을 사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야구를 관람하러 왔다는 조아무개씨는 "이런 더운 날에 길가에서 파는 김밥을 사먹기는 아무래도 좀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신 관중들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치킨'이었다. 야구장 안에도 KFC나 버거킹 등의 패스트푸드점이 있고, 관중들을 위해 '맞춤형 세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가격이나 취향 문제로 야구장 밖에서 치킨을 사가는 관중들이 많았다.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은 '대목'인만큼 야구장 근처의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오토바이로 치킨을 실어 나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광경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외부잡상인이 판매하는 치킨은 불법이므로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라는 현수막이 야구장 외벽에 내걸려져 있었지만, 브랜드 네임 때문인지 이들 치킨은 꽤나 잘 팔리는 편이었다.

[경기 중 풍경] 금강산도 식후경 "야구는 먹으면서 즐긴다"

 야구장 안에 있는 맥주판매점. 줄을 서 있는 관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야구장 안에 있는 맥주판매점. 줄을 서 있는 관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윤형준

잠실야구장은 꽤나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통한다. 특히 얼마 전 내외부를 새로 단장하며, 많은 먹거리 전문매장이 새로 입점했다.

야구장 안의 인기메뉴 역시 치킨이었다. 실제로 한 설문결과에 의하면 '야구장에서 즐겨 먹는 먹거리 중 최고의 짝꿍은?'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가 '치킨과 맥주'라 답했다고 한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기가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서까지 야구장 안의 KFC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치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맥주다. 공수교대 시간만 되면 잠실야구장 안에 있는 맥주 판매점은 손님으로 가득했다.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도 일명 '맥주맨'으로 통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등에 커다란 맥주통을 이고 맥주를 총으로 '쏴'준다. 이 날 만난 '맥주맨' A씨는 "오늘이 처음이라 아는 게 없다"면서도 "맥주를 이렇게 이고 돌아다니니 힘들긴 한데 야구열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맥주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한참 달아오르고, 5회가 넘어가자 야구장 내의 각 매장에서 직원들을 출동시켰다. 커피와 주스통을 등에 맨 '커피맨', '핫도그 5천원'을 써 붙이고 경기장을 돌아다니는 '핫도그맨' 등 각종 판매원들이 경기장을 누볐다.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과자를 머리에 이고 돌아다녔던 아주머니도 계셨다. '맥주맨'에게서 맥주를 구입한 B씨는 "야구장에서 먹는 맥주가 훨씬 맛있는 것 같다"면서 "먹거리를 마음껏 즐기면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야구의 중요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경기 후 풍경] 관중이 떠난 자리, 많이 팔았냐거든 '그저 웃지요'

 잠실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김밥과 얼음물 판매점.

잠실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김밥과 얼음물 판매점. ⓒ 윤형준

7회 말이 끝나자 야구장 안을 돌아다니던 '맥주맨'들이 일거에 퇴장했다. 야구장 안에 있는 맥주 판매점도 모두 영업을 중단한다. '맥주맨'들은 한 곳에 모여 맥주통을 창고로 옮기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야구장 밖도 마찬가지다. 치킨을 가져와 판매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지더니, 경기가 끝난 후엔 아무도 없고, 김밥과 얼음물을 파시던 할머니들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천원에 팔던 김밥은 어느새 가격이 내려가 오백원이 되어있다.

얼음물 하나를 사며 "많이 파셨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허허 웃기만 하시고 대답이 없다. "대목 아니시냐?"는 물음에는 "한철 장사"라며 "그나마도 요즘에는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푸념하신다.

조미료는 그 자체로는 음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조미료 없는 요리를 상상하는 것도 힘들다. 야구장에서 먹거리를 파는 이들이 이처럼 감칠맛 나는 존재가 아닐까. '맥주맨' 없는 야구장은, '치맥' 없는 야구장을 대체 무슨 재미로 간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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