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차이콥스키 레볼루션'에서 지휘를 맡은 정민. 아버지 정명훈을 쏙 빼닮은 외모와 지휘 스타일이지만 또 한편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6월 30일 '차이콥스키 레볼루션'에서 지휘를 맡은 정민. 아버지 정명훈을 쏙 빼닮은 외모와 지휘 스타일이지만 또 한편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크레디아


지난 6년간 리처드 용재 오닐을 중심으로 남자 클래식 주자들로 뭉쳐 활발한 연주와 음반 활동을 펼쳐왔던 앙상블 디토가 < 2012 DITTO FESTIVAL - NUOVO DITTO >라는 타이틀로 공연 중이다.

그 세 번째 연주로 6월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차이코프스키 레볼루션'에서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아들인 정민의 지휘 아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디토(DITTO)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웅장한 차이코프스키 작품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곡이었던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은 마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각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며 때론 템포 루바토로 느리게, 때론 보통의 템포보다도 빠르게 해석하며 신선한 연주를 해내고 있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라서 더욱 신선했다. 정민은 뒷모습조차도 아버지 정명훈을 빼닮았지만 지휘의 위엄이나 정확성, 오케스트라를 리드하는 모습에서 자신감과 독창성이 엿보였다. 

다음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였다. 협연의 조진주는 농염하고 윤택한 사운드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날렵하고 깔끔한 연주를 선보였다. 노래하는 선율에서는 더없이 노래하였고, 16분음표들의 빠른 부분에서는 날카롭고도 명민한 보잉과 기교로 안정되면서도 우수한 연주를 했다. 다만 1악장 전개부 등 주제가 발전되는 부분에서는 누구나 그렇듯 다소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회복하여 3악장의 유려하고 박진감 있는 연주와 앵콜곡 'summer time'의 간드러진 연주까지 박수갈채를 받았다.  

후반부에서 임동혁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b 단조, 작품 23>은 피아니시즘을 보여주는 격정 어린 연주였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임동혁은 등장하자마자 첫 상행 코드에서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폭풍 같은 에너지로 오케스트라를 뚫고 피아노로부터 거대한 사운드를 뽑아내고 있었다. 음반이 아닌 클래식 공연장에서 듣는 오케스트라와 악기, 특히 피아노와의 협연이 주는 만족감을 100% 이상 선사하며 시종일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명연주를 펼쳐냈다.

관객들은 3악장까지 누구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악장 사이의 박수 등 무매너는 찾아볼 수 없었다. DITTO 공연 시리즈를 관람하는 관객이 보통의 마니아들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수준급의 관객 또한 모처럼의 수준 있고, 타이틀이 있는 클래식 공연에 만족한 눈치였다.

 7월 1일 '디토 오딧세이' 중 홀스트의 <행성>. 영상과 사운드의 조화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며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7월 1일 '디토 오딧세이' 중 홀스트의 <행성>. 영상과 사운드의 조화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며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 크레디아



다음날인 7월 1일 역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DITTO의 네 번째 공연 '디토 오디세이'는 드보르자크로 시작해 현대곡 두 작품,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특별무대로 구성됐다. 또한 디토 앙상블의 리더인 용재 오닐의 지휘 데뷔 무대라서 더욱 값진 자리였다. 

첫 번째 곡이었던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작품95 '신세계로부터'> 2악장은 디토 앙상블이 추구하는 바와 2012년 공연시리즈 전체의 타이틀인 '새로움(NUOVO)', 이날 공연 프로그램인 메이슨 베이츠의 현대곡과 홀스트의 <행성> 등을 아우르는 오프닝 곡으로 적합했다. 용재 오닐은 우리가 보던 비올라의 익숙함에서는 벗어났지만, 오케스트라를 포용하려는 의지와 자신의 앞으로의 행보를 시사하는 시작점의 의미로 이 작품을 연주해냈다.   

두 번째 순서로 작곡가이자 DJ인 메이슨 베이츠의 <리퀴드 인터페이스(Liquid Interface)>는 그야말로 물의 갖가지 모습을 보는 듯한 시원하고 인상적인 연주였다. 실제 남극의 빙하가 깨지는 소리로 시작하여 전자 음향과 오케스트라의 어우러짐, 점차 재즈풍으로 변모되어 묘사되는 물의 갖가지 형상이 현대 오케스트라 곡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줬다. 

'NUOVO DITTO' - 그 새로움과 혁신을 향하여

현대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이면서도 구조를 잃지 않는 음향은 작곡가가 단지 DJ에만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줄리어드에서 존 코릴리아노와 델 트레디치, 아들러 등 권위 있는 작곡가에게 클래식 교육을 받은 인물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 메이슨 베이츠는 오케스트라 뒤쪽 자리에서 전자음향 파트를 제어하며 전체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후반부 프로그램이었던 홀스트의 <행성(Planet) 모음곡, 작품32>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시원한 사운드와 무대를 가득 채운 영상을 통해 정말로 우주를 탐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각 7개의 행성이 묘사된 이 작품에서 첫 부분 영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일반 오케스트라 공연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우주 영상이 시작되자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는 느낌이었다.

계속되는 다채로운 행성의 모습들 덕분에 연주가 계속되는 50분 동안 클래식 공연이라기보다는 신나게 우주 탐험을 마치고 지구에 착지한 느낌이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이 맡은 영상, 즉 비주얼 퍼포먼스는 이 대규모 현대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그만의 독창성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영상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조합으로 공간은 더욱 확장되었으며, 음악도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

 앙상블 디토의 리더 리처드 용재 오닐. 7월 1일 '디토 오딧세이'공연에서 지휘의 영역까지 데뷔하며 그만의 새로운(nuovo) 세계를 보여주었다.

앙상블 디토의 리더 리처드 용재 오닐. 7월 1일 '디토 오딧세이'공연에서 지휘의 영역까지 데뷔하며 그만의 새로운(nuovo) 세계를 보여주었다. ⓒ 크레디아



마지막은 이날 공연의 '특별' 순서이지만 용재 오닐이 진작부터 바라왔던 부분이 아닌가 한다. 용재 오닐은 멘토이자 지휘자가 되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은별> 연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 '합창'-'환희의 송가'>을 연주했다. 모두의 가슴을 적시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연주였다.

관객은 그 어떤 프로 연주자들보다 훨씬 값진 어린이들의 연주에 귀 기울였다. 연주가 끝난 뒤, 어린 연주자들의 지도 선생님처럼 보이는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기립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MBC 특별 다큐멘터리 <안녕?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방송될 예정이다. 

기존의 곡을 '디토(DITTO)'로 브랜드화하여 품격 있고 맛깔스럽게 꾸민 이들의 연출력은 놀라웠다. 또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항상 의식하면서 그것조차도 마케팅화하는 고 지능적인 전략이 고리타분할 수 있는 클래식 공연에 연결되어 성공 사례로 이끄는 귀감이 되고 있다. 남자들의 클래식. 여자라서 질투까지 나는 이들의 성공 행보가 계속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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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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