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오동진 집행위원장

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오동진 집행위원장 ⓒ 제천영화제

"제천이 음악공연과 행사가 많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제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다."

10일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 개막기자회견에서 오동진 집행위원장이 강조한 이 발언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를 겨냥한 것이었다. 전주영화제가 올해 폐막 기자회견 자리에서 "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닌 말 그대로 영화제다"라고 말한 유운성 프로그래머를 해임시킨 데 대해 에둘러 비판한 것이었다.

오 위원장은 전주에 대한 비판이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사안을 강조한 것뿐이라며 전주 쪽에도 이런 입장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영화인으로서 현안에 대해 발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공식석상에서 경쟁 영화제를 향한 발언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한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만수 시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부천영화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개의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고 말했다. 부천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국내 2대 영화제가 되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발언이기도 했다.

전주영화제 겨냥한 제천영화제 위원장, 2위 강조한 부천시장

전주영화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개최되는 영화제들 간의 미묘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영화제들이 여럿 되는 현실에서 경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나, 전주영화제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사이 다른 영화제의 노력이 탄력을 받으면서 경쟁 순위가 뒤바뀌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들에 대해 따로 순위가 매겨진 것은 없다. 다만 국내외적 위상과 작품 규모, 관객 수 등을 평가할 때 부산, 전주, 부천, 제천 순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일반적 인식이다. 독보적 1위를 부산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전주, 부천 제천이 부산의 다음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부산을 제외한 나머지 세 영화제 모두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해임(사퇴) 등으로 논란을 빚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논란은 영화제들마다 성장 과정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했고, 위상 추락과 함께 영화제 간 순위 변동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부천이 위기를 겪을 때 전주가 치고 올라와 부천을 추월했고, 제천도 프로그래머 해임 문제가 안정적 성장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번에는 전주가 흔들리면서 부천이 2위 탈환을 벼르고 있다, 제천 역시 욕심을 나타내며 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어 세 영화제들 간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 보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규모와 프리미어 작품 수는 이미 2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영빈 집행위원장과 16회 피판레이디로 위촉된 배우 박하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영빈 집행위원장과 16회 피판레이디로 위촉된 배우 박하선 ⓒ 성하훈


19일 개막하는 부천의 규모는 전주를 훨씬 앞선다. 작품 수는 모두 230편으로 184편이었던 전주에 비해 25%정도가 더 많다.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는 프리미어 작품 숫자도 부산 다음일 정도다. 하지만 판타스틱 영화라는 장르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평균 관객 수에서는 전주에 비해 밀린다. 전주가 6만 7000명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면 부천은 4만 8000명 정도다.

부천은 1997년에 시작돼 부산영화제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전주보다 출발이 3년 빨랐다. 그러나 2004년 당시 시장이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해임하면서 영화계와 대립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해임 파문 이전에 6~7만 명에 달했던 관객은 파문이 커진 2005년 3만 5000명 선으로 떨어졌고, 이마저도 상당수가 동원된 관객들이었다.

아직도 전성기 시절의 70% 에 불과한 정도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회복되고 있는 추세라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대중적인 재미가 있는 영화가 많아 기본적인 관객 흡입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판타스틱 영화 제작지원 사업도 국내외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영화계와 대립했던 시장이 물러나고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김만수 시장이 들어선 이후 영화계의 참여가 더 활발해졌고, 프로그래머의 연차가 쌓이면서 흥미로운 영화들도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호러영화에 초점을 맞췄는데 개막작부터 <무서운 이야기>로 출발한다.

지난해부터는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에 마련된 캠핑촌을 활용해 관객들을 불러 모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영빈 위원장이 아이디어를 낸 청소년 영화아카데미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등 국내 2대 영화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3년 임기가 만료된다. "열심히 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연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부천영화제 관계자들의 전언인데, 올해 영화제의 성과가 이후 과정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집행위원장으로서의 위상이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많아 이를 극복해 내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김영빈 집행위원장은 2010년 처음으로 위원장에 처음 선임됐는데, 영화제 경험이 없는 인물이라 점에서 의외로 평가됐다. 이 때문에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 지원설이 영화계에 나돌기도 했었다. 김영빈 위원장이 1992년 감독했던 영화 <김의 전쟁> 주연이 유인촌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작은 영화제에 하위권이라고? 천만의 말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 제천영화제

'제천영화제를 작은 영화제로 생각하거나 연혁이 짧은 탓에 하위권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천영화제는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제로 꼽힌 지 오래다. 올해는 이를 바탕으로 국내영화제들 가운데 실질적인 우위를 정하는 영화제로 인식되도록 하겠다.'

올해 영화제를 맞이하는 제천영화제의 각오다. 음악과 휴양을 콘셉트로 하는 제천영화제는 최대 4만 명의 관객이 찾는다. 올해부터는 개최 일수도 기존 6일에서 7일로 늘렸다. 다른 영화제들이 9일 간 개최되는 것과 비교할 때 전혀 떨어지지 않는 관객 수라는 것이 제천의 설명이다.

2010년 위기를 잘 넘기면서 제천은 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취임한 시장은 한때 영화제 존폐를 거론하기까지 했으나 이제는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프로그래머 해임 논란도 다른 영화제와 비교할 때 파장이 크지 않게 정리된 것 역시 제천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공적인 절차를 통한 과정에서 해임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결론나면서 부담은 안아야 했다. 이 와중에 2회부터 6회까지 영화제를 이끌어온 조성우 위원장이 물러나고, 지난해 오동진 위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 영화기자, 영화평론가로 국내영화제를 가까이서 지켜본 오 위원장은 만만치 않은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음악영화라는 장르가 관객들에게 흥미와 매력을 주는 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중이다. 부족한 숙박시설 해결을 위해 올해 대규모 텐트촌을 열기로 했다. 또 상영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컨테이너 극장도 구상중이다. 부천 전주 등을 제치고 국내영화제들 중 우위에 서겠다는 각오는 단순한 빈말이 아니다.

오 위원장은 "올해 상영되는 영화들이 기대해도 될 만큼 아주 좋다"고 말했다. 또한 "개막식의 거의 대부분이 뮤지컬로 채워지고, 특히 이번 개막작(<서칭 포 슈가맨>)이 상영되면 가수 로드리게스에 대한 열풍이 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올해부터 생기는 캠핑촌에 대해 "250동의 텐트를 협찬 받는다"며 "제천영화제는 감히, 글래스톤베리와 우드스톡을 꿈꾼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 파문에 실추되는 위상, 2위 자리 흔들

 지난 4월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기자회견.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월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기자회견.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지난 6월 발생한 유운성 프로그래머 해임 파문은 결국 10년을 이끌어온 민병록 집행위원장까지 물러나게 만들었다.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복직은 요원해진 가운데 영화제의 대내외적 이미지와 위상은 크게 실추됐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덕분에 국내 2위 영화제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지역 언론으로 상징되는 토호 세력의 압박에 밀린 모습이 되면서 높아진 비판 여론은 쉽게 가실 기미가 안 보인다. 영화계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전주로서는 부담이다.

남아 있는 프로그래머와 스태프들이 추스르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위원장과 핵심 프로그래머가 빠진 상태여서 안정을 찾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전주와의 단절을 선언했던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가 올해 전주가 제작한 <디지털 삼인삼색>을 초청했다는 사실이다. 전주영화제 측은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 로카르노의 초청을 받게 됐다며, 이 기회를 통해 멘토 구실을 했던 로카르노와의 관계 회복과 분위기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국내외 영화계를 향해 부당한 해임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먹구름이 걷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해 최근 전주영화제에 남아 있는 스태프진과 프로그래머들이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복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호 날선 공격이 이어질 조짐도 엿보이고 있다.

특히 영화제 측이 그간 보인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국내외 영화인들에게 해임의 불가피성을 알리겠다는 입장 변화도 엿보여 해임으로 촉발된 유운성 프로그래머와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주영화제는 이달 말 이사회를 통해 새로운 집행위원장 공모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DMZ다큐멘터리영화제도 프로그래머 수난...강석필 프로그래머 최근 물러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물러난 강석필 프로그래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물러난 강석필 프로그래머 ⓒ 성하훈

각 영화제들이 겪은 프로그래머 수난은 DMZ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도 비켜가지 않았다. 2009년 시작돼 지난해 3회 영화제를 거치며 의욕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DMZ영화제의 강석필 프로그래머가 지난 6월말 갑자기 물러났다. 지난 2년 간 영화제 성장에 기여해 왔고 딱히 물러나야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영화계가 술렁댔다.

강 프로그래머는 "절차적인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영화제를 지역 축제의 하나로 생각하려는 행정적 사고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서로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강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영화제 조직위를 구성하고 있는 경기콘텐츠진흥원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계속 영화제 일을 맡으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채용조건으로 프로그래머의 업무뿐만 아닌 담당 부서 일반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같이 요구받았고, 여기에 이견이 생기면서 결국 의도하지 않게 영화제와의 관계를 정리하게 됐다. 지원을 맡고 있는 기관의 관료적 입장과 집행을 책임지는 영화인으로서의 방향차이가 절충되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DMZ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다"면서 "다른 영화제들의 프로그래머 문제와는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제를 3개월 앞두고 한참 준비에 몰입할 시기에 핵심적인 프로그래머가 물러났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프로그래머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는 간극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영화제의 안정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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