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다. 도둑들이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의 물건을 터는 장르를 일컫는다. 한데 <도둑들>이 케이퍼 무비라 하여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작이라 판단하면 곤란하다. <도둑들>의 천만 관객 돌파라는 성과는 전형성을 탈피한 공이 크다.

▲ <도둑들>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다. 도둑들이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의 물건을 터는 장르를 일컫는다. 한데 <도둑들>이 케이퍼 무비라 하여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작이라 판단하면 곤란하다. <도둑들>의 천만 관객 돌파라는 성과는 전형성을 탈피한 공이 크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언론시사가 한 달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이 입성한 즈음에야 기사를 송고하는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이 글이 개봉 전 혹은 개봉하자마자 노출되었다면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선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다. 도둑들이 주인공이 되어 물건을 터는 장르를 일컫는다. 한데 <도둑들>이 케이퍼 무비라 하여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작이라 판단하면 곤란하다.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이고(그것도 다국적으로) 공동 작업을 벌이기는 하지만, 영화가 정말 딱 이 수순에서 그쳤다면 정말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작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한데 <도둑들>은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의 공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한다. 케이퍼 무비의 '전형성'에서 탈피하기에 그렇다.

케이퍼 무비의 전형성이란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게 전부인 공식을 일컫는다. <도둑들>의 천만 관객 돌파라는 성과는 전형성을 탈피한 공이 크다. 만일 <오션스 일레븐>처럼 전형성에 안주했다면 천만 돌파라는 거대한 성과는 도달하기 어려웠을 테다.

여러 장르를 하나의 범주 안에 버무리되 조악한 조합이 아니다. 제작보고회 당시 최동훈 감독이 "그 이상을 기대해도 좋다"고 취재진을 향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인 이유가 8월에 증명된 셈이다.

<도둑들> <도둑들>은 이런 케이퍼 무비의 전형적인 공식에 ‘멜로’와 ‘신파’를 적절하게 가미한다. 멜로의 대표적 사례는 첸(임달화)과 씹던껌(김해숙)의 러브라인이다. 하나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통하는 멜로의 주된 축은 팹시(김혜수)를 중심으로 뽀빠이(이정재)와 마카오박(김윤석)의 삼각관계 멜로다.

▲ <도둑들> <도둑들>은 이런 케이퍼 무비의 전형적인 공식에 ‘멜로’와 ‘신파’를 적절하게 가미한다. 멜로의 대표적 사례는 첸(임달화)과 씹던껌(김해숙)의 러브라인이다. 하나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통하는 멜로의 주된 축은 팹시(김혜수)를 중심으로 뽀빠이(이정재)와 마카오박(김윤석)의 삼각관계 멜로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청춘의 멜로보다 중년의 멜로가 돋보인다

<도둑들>은 이런 케이퍼 무비의 전형적인 공식에 '멜로'와 '신파'를 적절하게 가미한다. 멜로의 대표적 사례는 첸(임달화 분)과 씹던껌(김해숙 분)의 러브라인이다. 두 중년 남녀가 눈이 맞은 이후 '태양의 눈물'을 터는 작업이 꼬였을 때 탈주 차량 안에서 벌이는 멜로는 중년의 '짧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첸과 씹던껌의 러브라인에는 신파적 요소도 가미된다.

중년의 멜로에 비해 젊은 피인 잠파노(김수현 분)와 예니콜(전지현 분)의 연상연하 멜로는 너무나도 심플하게 처리한다. 그저 잠파노가 예니콜을 짝사랑 했었다는 정도로 말이다. 잠파노가 사라진 후, 예니콜이 잠파노를 회상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를 반증한다.

허나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통하는 멜로의 주된 축은 팹시(김혜수 분)를 중심으로 하는 뽀빠이(이정재 분)와 마카오박(김윤석 분)의 삼각관계 멜로다. 멜로라인에서 가장 공들여 묘사하는 남녀관계이자 동시에 극의 후반부 동선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멜로라인이다. 뽀빠이와 팹시는 마카오박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셋이서 공동 작업으로 금괴를 털다가 마카오박이 금괴를 몽땅 갖고 잠적해서다.

과거의 이런 원한을 풀지 않고 '태양의 눈물'을 함께 훔치려 들었으니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으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팹시가 뽀빠이를 염두에 두는 비중 묘사에 비해 과거 마카오박이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에 비중을 크게 연출한다는 건 그만큼 팹시가 연정을 품는 대상이 마카오박이라는 반증이다.

다만 물에 빠진 팹시를 마카오박이 용케 찾아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구출한다는 건 그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의 신)처럼 매끄럽지 못한 연출이다.

<도둑들> 마카오박이 웨이홍(기국서)의 총격 추격을 따돌리는 방식에 있어 ‘총에는 총’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범죄자를 잡되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배트맨의 공식처럼, 마카오박은 자신에게 총질하는 웨이홍의 부하를 따돌리거나 응징할 때엔 똑같이 총으로 응징하지 않는다. 몸으로 응수한다. 이 점은 느와르적 정서에 몸이라는 육체성을 가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도둑들> 마카오박이 웨이홍(기국서)의 총격 추격을 따돌리는 방식에 있어 ‘총에는 총’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범죄자를 잡되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배트맨의 공식처럼, 마카오박은 자신에게 총질하는 웨이홍의 부하를 따돌리거나 응징할 때엔 똑같이 총으로 응징하지 않는다. 몸으로 응수한다. 이 점은 느와르적 정서에 몸이라는 육체성을 가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케이퍼 무비 안에 담겨진 '일석삼조'

멜로라인과 신파만 섞은 게 아니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 안에 '느와르'적 정서도 포함한다. 한국영화임에도 홍콩 느와르의 대표 배우인 임달화를 기용함은 물론이요 영화 후반부의 화끈한 총격 액션은, 누가 보더라도 홍콩 영화 속 총격 느와르를 한국으로 이식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화려한 슈팅 솜씨를 자랑하던 첸이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홍콩 느와르적 정서에 다름 아니다.

다만 마카오박이 웨이홍(기국서 분)의 총격 추격을 따돌리는 방식에 있어 '총에는 총'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범죄자를 잡되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배트맨의 공식처럼, 마카오박은 자신에게 총질하는 웨이홍의 부하를 따돌리거나 응징할 때엔 똑같이 총으로 응징하지 않는다. 몸으로 응수한다. 이 점은 느와르적 정서에 몸이라는 육체성을 가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케이퍼 무비 안에 느와르와 멜로를 어색함 없이 하나로 믹스한다는 건 관객으로 하여금 일석삼조를 향유토록 만드는 즐거움이다. 케이퍼 무비를 만끽하러 극장을 찾았다가 여러 장르를 맛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오락물이기에 그렇다.

<도둑들> <도둑들>과 같이 잘 빠진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건 한국영화의 쾌거를 상징한다. 하나 이를 사회적 징후로 살펴볼 때 사회적 메시지가 부재한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어서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피로도가 극도로 누적되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영화로부터 메시지를 얻기보다는, 영화로부터 사회적 피로를 풀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다.

▲ <도둑들> <도둑들>과 같이 잘 빠진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건 한국영화의 쾌거를 상징한다. 하나 이를 사회적 징후로 살펴볼 때 사회적 메시지가 부재한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어서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피로도가 극도로 누적되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영화로부터 메시지를 얻기보다는, 영화로부터 사회적 피로를 풀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사회적 메시지가 부재한 영화가 천만을 넘는 사회적인 요인

<도둑들>의 또 다른 특징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주제 의식을 탈색시켰다는 점이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에서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 가운데서 주제의식이 탈색된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가령 <왕의 남자>나 <태극기 휘날리며>, 혹은 <실미도>나 <괴물> 등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들은 하나같이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도둑들>은 달랐다.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심오한 메시지는 탈색된다. 비근한 사례로는 <해운대>에서 그 징조를 찾아볼 수 있다. 심오한 메시지로부터 탈피한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현상은 관객만 힐난할 사안이 아니다. 관객의 이러한 심리는 사회적 징후로부터 찾아야 마땅하다.

사회가 힘들고 피곤할수록 대중은 정신적인 위안처를 찾기 위해 엔터테인먼트를 누리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진다. 피곤한 사회에 몸담는 대중이 엔터테인먼트를 찾을 때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엔터테인먼트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엔테테인먼트를 누리되 사회적 메시지가 탈색된 오락물을 향유코자 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때마침 등장한 <도둑들>은 말초적인 쾌감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님에도 전형적인 엔터테인물로 모자람이 없는 잘 빠진 영화였다. 대중은 <도둑들>을 통해, 두 시간 동안 관람료를 지불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상실감과 피로를 풀게 된다. 사회적 메시지가 부재하는 <해운대>가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던 그 이듬해와 궤를 같이하는 상황이었다.

<도둑들>과 같이 잘 빠진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건 한국영화의 쾌거를 상징한다. 하나 이를 사회적 징후로 살펴볼 때 사회적 메시지가 부재한 오락물이 천만 관객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어서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피로도가 극도로 누적되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영화로부터 메시지를 얻기보다는, 영화로부터 사회적 피로를 풀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다. 대중의 이러한 보상 심리를 반영하는 영화가 바로 <도둑들>이다.

도둑들 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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