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피에타>에서 여자 역의 배우 조민수가 27일 오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피에타>에서 여자 역의 배우 조민수가 27일 오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조민수는 때를 잡았다. 무슨 말이냐고? 연기의 맛을 알 시점에 내면의 새로운 모습을 발산할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다. '데뷔 26년의 중견 배우가 이제야 연기의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그녀의 말을 들어봐야겠다.

분명 조민수는 그렇게 표현했다. "연기의 맛을 알 때 김기덕 감독을 만났다"고. 영화 <피에타>에서 낯선 여자 역을 맡은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 덕분에 새로운 내면의 모습을 끌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낯선 여자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며 돈을 받아 내는 강도(이정진)에게 엄마라며 다가가 그와 여러 일을 함께 겪는 인물이다.

"색달랐다고 해야 하나? 약간의 긴장이 사람을 흥분하게 하잖아요. 김기덕 감독 현장 고유의 스타일을 경험한 거죠. 흐름이 빠르단 건 알고 있었는데 빠름에 대한 개념이 좀 달라요. 사전에 토의를 충분히 하고 호흡을 끊지 않고 쭉 가는 거죠. 완전 '빠름 빠름 빠름'이야."

<피에타> 조민수, 김기덕이 고집했고 조민수가 선택했다

그래서였을까.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단다. 물론 그간 접해왔던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강렬한 내용 일색이라 다소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직접 촬영하면서 그 생각이 달라진 셈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상에는 되게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어요. 감독님이 절 고집스럽게 캐스팅하면서 나이대가 너무 내려간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더라고요. 감독님은 '조민수가 해낼 것'이라고 했다는데 대본을 보기 전에 제가 감독님을 뵙고 싶다고 했죠.

감독님에게 왜 저를 선택했는지 물었는데 '조민수씨 팬이었어요'라고만 짧게 말했어요. 전혀 생각도 안 했던 역할에 캐스팅된 건데 안 해본 캐릭터를 한 게 행복한 거죠. 표현하고는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을 나타내게 했습니다. 그 감성을 쓰게 해줘서 감사해요."

분명 쉬운 촬영은 아니었다. 2012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영화가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시나리오상 강한 비주얼의 장면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엄마 역할이지만 내면으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심경도 담아내야 했다. 

"아주 어렸다면 힘들어서 못 했을 거예요. 지금처럼 연기의 맛을 알 때 딱 사용하면 좋은 모습이에요. 어릴 땐 예쁘고 좋은 이미지 중심으로 활동하잖아요. 그 여배우가 나이를 먹으면 '이제 늙었어!' 하면서 쓰질 않는 게 안타까웠죠."


 영화<피에타>에서 여자 역의 배우 조민수. 27일 오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변함없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영화<피에타>에서 여자 역의 배우 조민수. 27일 오후 서울 사간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변함없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 이정민


"다양한 여배우의 면모를 확인해 달라!"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중견 여배우의 현실을 짚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비슷한 또래의 남자 배우는 한국 영화계의 허리라며 최근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중견 여배우는 상대적으로 스크린에서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조민수 역시 근 20년 만에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희대의 청춘스타였던 그도 영화가 아닌 TV에선 누구의 엄마 역할 일색이었다.

"헛헛하죠. 연기자가 생활인이 됐을 때 오는 헛헛함일 수도 있고, 기회가 없어서 밀려서라도 이런 연기를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수도 있고요. 우리 또래가 신명 나게 할 수 있는 역할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오잖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전 세계적으로도 여배우 중 멜로로 오래간 배우는 별로 없더라고요. 차이가 있다면 할리우드 등 큰 판에선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장르와 다양한 역할이 있는 거죠. 그곳 배우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할 만한 역할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녀 간 사랑 빼고는 거의 할 게 없더라고요. 다양한 직업군이 없어요. 여배우의 삶을 살아오면서 쌓인 재료가 있는데 너무 단명하는 게 아닌가 해요."

최민식, 김윤석, 송강호, 설경구 등 40대 중후반 남자 배우들이 다양한 면모로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중견 여배우들 또한 그러지 말란 법이 있던가. "여배우 역시 한국 영화의 허리!"라고 힘주어 말하자 조민수는 "에이 TV에서 많이 해먹긴 했지"라며 시원스럽게 웃었다.  

"어린 여배우들이 너무 일찍 배우로서가 아닌 생활 전선에 뛰어든 거 같은 역할을 맡을 때 속상하죠. 그렇게라도 자신을 노출시키려는 마음이 이해가 돼 안타깝기도 해요. 남자 배우보다 확실히 할 게 많이 없어요.

남자는 도둑, 살인범 등 다양한 역할을 맡는데 여자는 왜 그러지 못할까 궁금하기도 해요. 남자 작가는 여자를 잘 몰라서 남자를 쓴다고 칩시다 그런데 여자 작가분들이 대부분인데 여자를 잘 그리는 분이 적은 건 좀 생각해볼 문제죠."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 김기덕 필름


분명 정리해볼 만한 문제인 건 사실이다. 여배우들이 여러 직업군과 다양한 캐릭터에 등장한다면 그만큼 한국 영화의 다양성도 보장되니 말이다. <피에타>에서의 낯선 조민수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김기덕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큰 수확일 게 분명하다.

"내면에 재료들은 많은데 감독님들은 또 검증 안 된 거에 불안해하잖아요. 근데 김기덕 감독은 내 다른 내면을 보시고 캐스팅한 거니까 고맙죠. '시나리오 밖에서 이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원래 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나만의 작업이거든요. 이게 되게 행복해요. 내 작업이거든요! 대본은 뚝 떨어져 나오지만 거기에 없는 부분을 생각하는 거예요."

조민수의 말을 들으며 분명 머지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섹스 앤 더 시티> <위기의 주부들>을 부러워 말고 내로라하는 중견 여배우들의 활약을 상상해보자. 물론 조민수는 꼭 포함돼야 할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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