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 ⓒ kbs


"네가지"는 자기의 부족한 점이나 단점으로 사료되는 것들에 대해서 세상의 오해를 겪는 네 사람들의 자기 항변이 담긴 코미디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네 명의 코미디언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데, 스타라 하기에는 인기가 다소 부족한 연예인 김기열(?), 사투리를 써서 촌사람으로 도시와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받는 양상국, 키가 작아 무시 받는 허경환, 뚱뚱해서 언제나 많이 먹을 거라고만 생각되는 김준현, 이 네 명의 인물이 각자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가져와 무대에 펼쳐 놓으며 진행됩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각색과 수정을 거친 것임에도, 일종의 재현이나 모사의 극적 양식, 소위 짜고 만드는 극 형태의 다른 코너들과 차별성을 지니는 것은 그들 현재의 삶의 양태들이 그 안에 담기며 무대의 주체가 현실 그들 자신과 일치한다는 전제가 이 코너에 더 큰 집중을 발휘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넷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화화하며 그것이 편견임을 주장합니다. 사실 코미디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이 어떤 희화화에서 웃음이 출발합니다. 대부분의 몸 개그라 불리는 것 역시 정상적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리고 또 많은 코미디언들이 바보나 정신이 나간 사람을 자처합니다. 최근 '멘붕스쿨'의 정승환의 경우 약간 자폐 증세가 있는 어린 아이의 행태를 모사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 ⓒ kbs


지난주 허경환의 경우 스스로를 단신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난쟁이는 그래도 아니라는 식의 항변을 했습니다. 이는 그의 코너에서 그의 작은 키가 항상 희화화되는 있고, 사실상 그의 작은 키는 대한민국 평균 키에는 못 미친다는 뚜렷한 사실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난쟁이는 그 정도로 작지는 않다는 뜻에서 극도로 작은 어떤 키의 한 예를 드는 심급으로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네가지"라는 프로그램은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언급한 현대인의 자기 경멸 그리고 그와 긴밀히 상응하는 자기만족이라는 삶의 인식과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난 사람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경멸하고 우리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또한 경멸하며, 결과적으로 두 경우에 있어 모두 자기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사실상 허경환의 경우 난쟁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난하려는 생각보다는 이 코너 안에서 자기만족을 얻어내고 그럼으로써 코너 자체의 틀(자기 희화화에서 자기만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네가지"는 남과 나를 비교하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구별 짓기의 심급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의 편견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현대사회에서의 경멸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차원에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경환,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에서

허경환,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에서 ⓒ 김민관


그래서 자기 희화화가 전적으로 깔려 있되 이것이 또한 자기의 고유성 내지는 개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세상의 편견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네가지"에서, 다른 사람과의 구별 짓기 내지는 경멸을 통해 자신의 만족을 얻는 것의 위험성은 민감하게 고려되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는 앞서 말한 극의 인물이 아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은 프로그램의 형식과 이 코너가 갖는 의미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안고 살게 된 가수 강원래에게 있어 난쟁이가 비하의 뜻을 가진 것으로 다가왔다면 사실상 허경환은 사과를 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이 코너는 불특정한 다수에게 보내는 개인의 메시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허경환의 말은 개인적인 차원의 말로 돌리기보다 키가 크고 작은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합치된다는 점에서, 자기 고유성이 아닌 경멸의 심급으로 소환되고 마는 측면에서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난쟁이 자체에는 사실 키가 극히 작은 누군가를 낮춰 말하는 것으로, 비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경환의 경우 난쟁이 자체를 구별 짓기의 심급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비하의 뜻은 더 강조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허경환,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에서

허경환, 9월 2일자 개그콘서트, "네가지"에서 ⓒ kbs


사실 '난쟁이' 하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외에도,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납니다. 사실 여기서 난쟁이는 사회에서 불평등한 지위에 속한, 또 비주류, 소외된 사람들을 상정하기에 이 말은 우리가 배제한 존재들의 소환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이 난쟁이라는 말이 단순히 어떤 비하의 뜻을 가지기보다는 비하할 수 없는 존재 자체로 다가오는 측면이 큰데, 사실상 강원래 역시도 이 난쟁이라는 존재 자체의 개념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지점이 미끄러지는 부분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키가 작다는 차원에서 허경환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키라는 가치 평가가 존재에 대한 가치 평가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는 사람에게는 이 단어가 부정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난쟁이라는 단어가 일단 누군가에게 비하의 뜻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어의 사용은 누군가를 지칭하는 데 있어서 민감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사실에서, 만약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이는 응당 사과할 수 있는 차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 ⓒ kbs


지난주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에는 사회자 황현희에게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한송이와 김연경 선수가 출연해 '키 굴욕'을 안기는 장면이 방영됐는데, 그 자극도가 오히려 허경환의 말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깔창 벗어!"라는 명령을 따라야 했던 황현희의 작은 키를 희화화하는 마지막 장면은 실상 왜 깔창을 벗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이상으로, 왜 우리가 깔창을 신어서라도 키를 크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만듭니다. 깔창을 벗는 것 역시 키가 작기 때문에 약자의 위치에서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점은 분명 이상하고도 잘못된 부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코미디에 있어 희화화는 사실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코미디언들이 자신들을 표상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존재에서 안심하고 웃음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기에는 코미디언의 살신성인으로 표상되며 넘어가고 말지만, 실은 이 희화화가 코미디언 자체가 아닌 실제 그들이 흉내 내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상응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코미디가 일종의 부정적인 방식으로 자기만족을 얻고 남을 비하하는 것에 생각 없이 우리는 동조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승환(오른쪽),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정승환(오른쪽), 개그콘서트, "멘붕스쿨" ⓒ kbs


가령 틱 장애를 흉내 냈던 지난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그램의 경우 그것이 무엇보다 너무 직접적이라는 의미에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는데, 흔히 정상이 아닌 것과 같은 캐릭터 설정이라고 하는 부분들도 실은 실제 삶에서 그들을 닮은 존재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모방에 따른 희화화를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계속 바보 캐릭터나 정신 나간 사람들 등의 누군가를 모방해서 희화화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식으로, 가령 잘못된 강자를 희화화해 현실 비판 기능을 강화하거나 순수한 몸 개그로 웃기는 식의 신선한 아이디어 수혈이 필요합니다. 갸루상의 경우는 다르지만 앞서 정승환의 경우는 다소 위험하다 판단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령 "달인"의 경우 사기 치는 달인으로 김병만은 자신을 희화화하지만,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과정은 많은 경우 달인의 진짜 풍모를 보여주고 중간 중간 애드리브 같은 발언들이 관객의 호응을 적극 이끌어 내고는 했습니다.

또 예전에 박영진이 보여준 현실 풍자 코미디는 자신의 희화화보다는 현실의 패러독스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코미디이기도 했습니다. 개그콘서트에는 많은 좋은 코너들이 그밖에도 존재합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정도의 희화화, 또 우리보다 못한 존재를 캐릭터로 포장해 웃기는 것의 위험성은 늘 코미디언으로서는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코미디언 역시도 자신을 희생하지만 그들 역시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코미디는 무엇보다 현실의 단조로운 일상을 깨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웃을 때는 무엇보다 명민해집니다. 웃음에는 건강한 사회의 비판 기능이 함께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보다 못 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비웃으며 웃는 것은 코미디가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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