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에 출연한 박기웅

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 속 한 장면 ⓒ KBS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만이 남았다. 무더위와 함께 2012년 여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냈던 이들의 여정도 어느새 끝이 났다.

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은 시작할 때만 해도 기대작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를 쌓았다. 그 중심에는 세상 때문에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에게 총을 겨눠야 했던 기무라 슌지 역의 박기웅이 있었다.

"슌지와 강토, 딱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죠"

"아직 얼떨떨하다"고 말문을 연 그에게선 악랄한 일본 순사 슌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캐릭터에서) 빨리 못 나오는 게 진짜 촌스러운 건데 이번엔 좀 오래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평소 분장의 힘을 믿기에 (종영을) 4주 정도 남기고 다이어트했다"고 밝힌 그는 "남들이 현장에서 '독하다'고 하던데 사실 나 편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KBS 2TV <각시탈>에 출연한 박기웅

ⓒ KBS


"악역을 많이 한 편은 아닌데 <추노> <최종병기 활> <각시탈>까지 다 잘됐어요. '악역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다양한 캐릭터의 대본이 더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슌지는 반전 있는 인물이었잖아요. 잘만 하면 훨씬 더 효과가 좋죠.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밌게 볼 수 있고요. 특히 이번엔 슌지가 악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과 고뇌, 작가님이 설명하고 싶었던 '시대가 낳은 비극'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주원의 묵직한 돌직구에 시너지 효과 났다"

조선의 영웅 이강토와 일본 순사인 기무라 슌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을 단순히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절대 선' '절대 악'으로 나눌 수는 없었다. 박기웅은 "중간선을 타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주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곤 했다"고 전했다.

"주원이는 진짜 좋은 파트너였던 것 같아요. 그 아이 덕분에 좋은 연기가 나온 부분도 많고요. 돌 직구를 빵빵 던지거든요. 힘이 좋은 연기를 하더라고요. 저 역시 연기할 때 힘이 센 편인데 주원이와 함께하면서 상승 작용이 컸던 것 같아요. 남자 배우들끼리 부딪히는 연기를 처음 해봤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저 혼자였다면 그런 에너지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박기웅은 주원에 대해 "캐릭터에 굉장히 순수하게 다가간다"면서 "난 100% 몰입하기보다 반은 이성에, 반은 감성에 맡기는데 주원이는 감성적인 면에 좀 더 비중을 두는 것 같더라. 몰입해서 집중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회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마당에서의 격투신과 자살신이 대표적이다. 특히 자살신에서는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NG가 나기도 했다.

 KBS 2TV <각시탈>에 출연한 배우 박기웅

ⓒ KBS


"앞서 독립군을 주사기로 찌르는 신에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몰입했어요. 약간 빙의했다고 해야 하나. 방송을 보는데 제 얼굴이 낯설더라고요. 반면 자살 신은 그야말로 계산적인 연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슌지가 된 것처럼 그동안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더라고요.

슌지와 강토에게 '마당'은 아련한 공간이에요.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이 담긴 곳이죠. 둘이 주먹 다툼을 하는데 정말 불쌍한 거에요. 서로의 가족을 다 죽였으니까요.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서 오른쪽 얼굴은 밝게 웃는 표정으로, 왼쪽 얼굴은 뭔가 슬픈 표정으로 근육을 따로 썼어요."

박기웅이 말하는 '연기'란? "예술과 서비스업의 중간"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했던 박기웅은 평소 목소리 톤과 얼굴 근육 사용법을 꾸준히 고민했다고 밝혔다.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의 크기나 높낮이, 발음을 연구하고, 거울을 보며 얼굴 근육 따로 쓰는 법을 생각한다고. "쓸데없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표정과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자에게는 꼭 필요한 훈련이다.

항상 노력하는 그는 연기를 "예술과 서비스업의 중간"이라고 정의했다. 혼자 취해서 하는 연기는 무책임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소수의 시선 또한 가치 있지만, 가장 정확한 '대중의 시선'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시대의 흐름, 극의 성격에 맞는 연기 톤이 있다"면서 "잘 맞춰가는 것도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KBS 2TV <각시탈>에 출연한 배우 박기웅

ⓒ KBS


<각시탈>은 8년 차 배우인 그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스스로도 "힘든 도전이었지만 날 끌어올린 작품"이라며 "인지도를 떠나 연기자로서 훈련시켜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각시탈> 이전에 찍어둔 <풀하우스2>가 10월 5일 일본에서 선 방송되는 터라 그는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고를 계획이다.

"제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어요. <풀하우스2>를 한 것도 제 나이대에 할 수 있는 마지막일 것 같아서였어요. 아시아 최고의 가수로 나오거든요. 앞으로도 안 해봤던 역할, 재밌는 역할을 할 겁니다."

경북 안동에서 조부모님 손에 자란 꼬마 박기웅은 배우가 된 뒤, 자신을 더 자주 보고 싶어하는 할머니를 위해 일일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는 이번 추석에 고향집을 찾아 자신을 키워준 조부모님과 애틋한 정을 나눌 계획이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 박기웅은 어느덧 성큼 다가온 30대를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다.

박기웅 각시탈 기무라 슌지 풀하우스2 주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