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었다. 소식이 뜸했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조상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며 못 다한 회포를 풀었다. 공영방송인 KBS도 그 시의성과 의미에 집중해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지난 28일 저녁 방영된 <아버지의 지게>가 그것이다.

지난 설 특집 <어머니의 장독대>에 이어 후속편으로 제작된 <아버지의 지게>는 서울 평화시장부터 경북 예천군까지, 가난 속에서 가족을 위해 '지게'라는 힘겨운 노동을 감수했던 아버지들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명했다. 총 1부작으로 제작된 본 다큐멘터리는 연휴 저녁이라는 적절한 편성 시간대와 겹치면서 시청률 12.8%(AGB닐슨 제공)를 기록했다. 다큐치고는 꽤 높은 시청률, 요약하자면 '추석 특수'를 톡톡히 노린 셈이다.

  KBS는 지난 28일 추석 특집 다큐멘터리로 '아버지의 지게'를 준비했다.

KBS는 지난 28일 추석 특집 다큐멘터리로 '아버지의 지게'를 준비했다. ⓒ KBS


<아버지의 지게>는 추석특집 프로그램답게 '지게'라는 운반 기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었다. '지게'와 관련이 있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아버지 혹은 그들 자신이 묵묵히 걸어온 '지게길'을 각각의 감동적인 사연과 함께 보여주는 형식이다.

일례로 농사를 짓는 손병우 씨(77)는 평생 지게만 지어온 올해로 백한 살인 아버지를 쉬게 하고 싶어 당신의 지게를 부셔버리지만, 아버지는 다음날 또 새로운 지게로 고된 농사일을 함께한다. 평화시장을 오르내리는 지게꾼 주기업 씨(62)의 경우도 비슷하다. 많게는 5~60kg까지 나가는 원단을 가득 싣고 3층의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매일이 '전쟁'이지만 그 덕에 이제껏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출가시킬 수 있었단다. 방송을 본 시청자 'ID 시간의흐름'은 인터넷에 "좋은 방송이었다"며 "아버지의 깊은 마음에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지게 혼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손병우 씨(77)는 당신의 노고가 안쓰러워 10년전 지게를 부숴버리기도 했다고.

▲ 아버지의 지게 혼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손병우 씨(77)는 당신의 노고가 안쓰러워 10년전 지게를 부숴버리기도 했다고. ⓒ kbs


한국 고유의 전통 운반기구인 '지게'와 '아버지'를 연결해 가족의 의미를 짚으려했던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기획과 달리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자체는 집중력과 구성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았다.

프로그램이 표방하듯 '뛰어난 영상미'와 '적절한 줌인·줌아웃'은 분명 눈에 띄는 장점이었지만, '지게-아버지'가 가지는 연결고리가 약해 전체적인 내용의 설득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작진은 사연들 중간에 우리나라 지게의 고유한 형태인 'A 프레임'이 짐을 짊어지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며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주는가 하면, 이러한 지게의 특성이 한국 전쟁 때도 나타났다며 지게를 이용해 보급품을 운반한 '지게부대' 이야기를 뜬금없이 넣기도 했다. 한 마디로 지게 자체에 집중한 것이었는데, 과연 해당 부분이 맥락상 꼭 필요한 내용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차라리 <아버지의 지게>가 가진 '상징성', 즉 지게와 아버지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에 주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지게>는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줬지만 내용 구성이 다소 산만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버지의 지게>는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줬지만 내용 구성이 다소 산만해 아쉬움을 남겼다. ⓒ KBS


구성이 산만해 애초 기획의도가 의문스러웠던 점에 더해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결론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아버지의 지게>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점이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던 부모의 헌신과 고생'을 지게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면 지게가 지닌 특성이나 역사 속에서 지게가 사용된 맥락까지 짚어줄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통계와 표를 통해 '짐을 나르는 방식에 따른 인체의 에너지 소비량'까지 보여주는 것은 좀 과도한 설정이 아닌가.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지게>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지게> ⓒ KBS


전체적으로 볼 때, <아버지의 지게>는 시의성에 발맞춰 특수 효과를 제대로 누린 다큐였지만 그 내용이나 짜임새가 13%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 할 만큼 촘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다큐멘터리는 영상 구성에 앞서 무엇보다도 '견고한 기획'을 바탕으로, 논리적 짜임새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KBS 다큐 아버지의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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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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