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을 빙자한 장기 매매 실체를 다뤄 화제가 된 영화 <바비>에는 세 가지 삐뚤어진 욕망이 존재한다. 우선 조카들을 미국인 남자에게 넘기고자 하는 작은 아버지(이천희 분)의 욕망이다. 틈만 나면 정신지체 장애인 형을 학대하고, 돈을 벌기 위해 조카들을 장기 매매를 위한 입양까지 보내는 냉혈한 작은 아버지는 속된 말로 '후레자식'이다.

또 다른 욕망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딸 또래 여자아이의 심장을 노리는 미국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딸 바비의 대사를 통해 한국에서 아내를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인 남자는 한국을 증오한다. 아내를 사고사로 잃고 더욱 두 딸에게 집착하는 미국인 남성은 남의 딸이 죽던 말던지 자기 딸만 살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모든 욕망의 집결체이자, 스스로의 운명을 최악의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순자(김아론 분)의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제대로 꽃피워보지 못한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영악하고 성공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순자는 바비의 아름다운 외모를 부러워하고 바비가 살고 있는 미국행을 꿈꾼다.

순자가 그토록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 양아치 작은 아버지 밑에서  언니 순영(김새론 분)이 휴대폰 걸이를 만들어 힘겹게 벌어들이는 푼돈으로는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꿈도, 바비 처럼 예뻐질 수도 없다. 그래서 순자는 언니 대신 자기를 미국에 보내달라고 작은 아버지를 조른다. 그 곳이 자신이 진짜 죽으려 가는 곳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영화 <바비>에서 펼쳐지는 평화로운 바닷가 이미지는 이상우 감독 전작들답지 않게 서정적이고 평화로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의 그림자는 보는 이들의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바비>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작은 아버지와 순자의 비뚤어진 욕망은 암담한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무섭기까지 순자의 영악함은 천성적이라기보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골골한 몸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치는 순자의 억지 미소가 소름끼치기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제 겨우 10살, 12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세상에 모든 풍파에 찌든 순영, 순자 자매의 현주소는 무방비 상태다. 그녀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냥개들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그녀들을 보호해줄 든든한 울타리는 없다.

그럼에도 순영, 순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다. 자기보다 아버지와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순영,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순자는 제각기 살고자하는 목적은 다르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가 남다른 소녀들이다.

하지만 비정한 세상은 순영, 순자 자매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가장 극단적인 처절한 환경을 뚫고 더 나은 세상으로 계층 이동하고자하는 순자의 꿈은 오히려 그녀의 죽음을 앞당길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욕망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히고 마는 소녀의 욕망. 가면 갈수록 고착화되어 타파하기 어려운 계급 순환의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잔혹 동화가 서글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