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여도 그렇지, 죽음준비를 한다면서 장례식에 부를 사람들의 명단과 예식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다니. 혹시라도 손님들에게 결례를 범하지나 않을까만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아. 일본 사람 특유의 꼼꼼함인가?'

처음에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장례식에 관계된 것만 하나씩 챙기고 확인해 나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 내용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가족 관계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하며, 떠난 뒷자리가 어수선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죽음준비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엔딩노트>  포스터

▲ 영화 <엔딩노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스나다 도모아키'는 전형적인 회사 인간으로 살아왔다. 40년 근속 후 67세에 은퇴했다. 일 밖에 몰랐던 시절을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여유있는 노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덜컥 위암 진단을 받는다. 그것도 수술이 불가능한 4기란다. 현재 나이 69세.

은퇴식에서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암 진단은 수굿하게 받아들인다. 어찌 억울함이 없었으랴. 그래도 도모아키는 흔들림 없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세상 떠나게 되면 가족들이 해주었으면 좋을 장례 절차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나간다. 이름하여 '엔딩노트'.

영화는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줄어든 지금의 여윈 모습과 암 진단을 받던 5개월 전의 모습, 거기다가 아주 오래 전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사진과 비디오 화면을 적절히 섞어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기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가족으로는 은퇴 후의 아기자기한 생활을 꿈꾸었을 아내, 뒤에 남게 될 홀로 사시는 94세 어머니, 큰딸 부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 가족, 그리고 독신인 막내딸(이 막내딸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영화의 감독이며 내레이터다!)이 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가족 모두가 아버지의 병과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점. 몸부림치며 울고불고 하거나 치료 방법을 놓고 의견 차이로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다.

또한 환자 자신은 자신의 병세와 치료 과정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환자가 적극적으로 상태를 묻지 않으면 의사나 다른 가족이 앞서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기로 약속을 하기도 한다.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시간을 집에서 보낼지 병원에 머물지 또한 전적으로 환자의 뜻에 따른다.

영화 <엔딩노트>의 한 장면  세 손녀들과...이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 영화 <엔딩노트>의 한 장면 세 손녀들과...이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 영화사 진진


암 진단 후 6개월 정도가 지났고, 결국 임종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사람이 왜 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69세 할아버지가 아닌 초등학생 손녀의 입에서 나온다. 태어나서 백살까지 살면, 꽃처럼 시드는 거라고.

아내와의 눈물겨운 이별에 목이 메인다. 어머니께는 앞서 가서 마음이 아프다며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들과의 이별 또한 애틋하면서도 따뜻하다. 아이들도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는 장례식. 엔딩노트에 적힌 그대로 진행된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남긴 당부의 말 또한 평소의 품성 그대로다.

이렇게 한 사람의 생이 끝나고, 그 삶의 흔적은 가족과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부모님을 보내드릴 때 그리고 내가 떠날 때도 영화 속의 도모아키와 그 가족처럼 하고 싶다. 죽음을 준비하는 전 과정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준비하고 싶다. 의사나 가족이나 장례전문가들의 돌봄 혹은 업무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다. 부모님도 그러셨으면 좋겠다.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로 내가 어르신들께 15회 총 30시간 넘게 하는 강의보다 90분 영화가 훨씬 구체적이고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기회에 강의는 다 그만두고 이 영화를 교재로 해서 어르신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바꾸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은 도모아키의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다. 그러고 보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참으로 소소하며 소박하기도 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진짜다.

신을 믿어 보기, 손녀들의 머슴 노릇, 평생 지지하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가족과 행복한 여행, 장례식장 사전 답사, 손녀들과 한 번 더 놀아주기, 아들에게 인수인계, 이왕 믿기로 했으니 세례 받기, 아내 사랑하기, 엔딩노트 작성.

덧붙이는 글 다큐멘터리 <엔딩노트 Ending Note (일본, 2011)> (감독 : 스나다 마미)
엔딩노트 죽음준비 죽음 웰다잉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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