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4차예선 한국과 카타르 전. 손흥민이 극적인 역전골을 성공 시킨 뒤 서포터즈를 향해 두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4차예선 한국과 카타르 전. 손흥민이 극적인 역전골을 성공 시킨 뒤 서포터즈를 향해 두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스타는 위기에서 탄생하고, 주인공은 늘 극적인 장면을 장식한다. 3월 26일은 한국 축구의 '슈퍼 탤런트' 손흥민(21· 함부르크)의 비상을 위한 날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카타르와 경기서 후반 추가시간 종료 직전 터진 손흥민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기록했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3승 1무 1패(승점10)가 되며 다시 조 1위로 올라섰다.

대표팀서는 활약 못했던 손흥민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올라서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손흥민이지만 유독 대표팀에서는 아직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동국·박주영·이근호 등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출전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손흥민은 제 포지션이 아닌 측면 공격수로 뛰는 경우가 많았다. 손흥민을 중용해보라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그가 대표팀이 요구하는 전술적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험이 적어 기복이 심하다고 평가됐다.

카타르전 손흥민의 활용도는 팬들 사이에서도 최대 관심사였다. 선발 출전도 기대됐지만, 결국 최강희 감독은 손흥민의 자리에 연습 경기서 컨디션이 더 좋다고 판단된 지동원과 이근호를 선발로 투입했다.

후반에도 손흥민에게 기회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0의 행진이 길어지면서 최강희 감독은 가장 먼저 지동원을 교체했으나, 손흥민이 아닌 베테랑 이동국을 투입하며 투톱 전술로 전환했다. 지동원이 위치했던 왼쪽 측면에 이근호가 자리를 텄다. 이날 유독 컨디션이 좋았던 이근호는 후반 15분 마침내 선제골을 기록하며 기세를 드높였다. 몸을 풀던 손흥민은 슬그머니 다시 벤치로 들어갔다. 어쩌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경기가 끝날 수도 있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선제골이 터진 후 불과 2분 만에 카타르 칼판 이브라힘에게 불의의 동점골을 얻어맞으며 다시 반전된 분위기는 급박하게 흘러갔다. 설상가상으로 이근호가 체력이 떨어지며 움직임이 둔해졌고 패스 실수도 잦아졌다.

기회 잡은 손흥민, 곤욕 딛고 '결승골'

후반 36분, 마침내 손흥민에게 기회가 왔다. 최강희 감독이 택한 마지막 승부수는 손흥민이었다. 이근호 대신 투입된 손흥민의 임무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 배치돼 침체된 측면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고, 과감한 침투에 이은 찬스를 만들어내는 역할이었다. 양 팀이 1-1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카타르는 무승부를 노리고 노골적인 '잠그기'에 들어간 상태. 남은 시간은 불과 10분가량.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조커의 역할을 부여받은 어린 공격수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인 시간지연 플레이에 돌입한 카타르는 막바지로 갈수록 우리 선수들에게 물리적인 충돌을 통한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막내인 손흥민이 첫 표적이 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볼 경합 과정에서 카타르 미드필더 이스마일 칼리파가 손흥민을 밀어 넘어뜨리며 자신도 손흥민의 발에 걸려 몸이 휘청이자 되레 먼저 화를 낸 것. 손흥민도 이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자 카타르 선수들이 대거 몰려와 순식간에 손흥민을 에워싸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국 선수들도 곧바로 달려왔지만, 손흥민은 이 과정에서 카타르 선수들에게 뒤엉켜 멱살을 잡히고 손찌검을 당하기도 했다. 소요를 부추겨 한국 선수들을 흔들고 시간도 벌려는 카타르의 의도적인 심리전이었다.

어린 선수가 자칫 흥분해 평정심을 잃거나 주눅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손흥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과감하고 부지런한 플레이로 카타르의 측면을 끊임없이 위협하던 손흥민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져 가던 후반 종료 직전, 추가 시간 5분이 다 지나가던 시점에 이동국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왔다. 어느새 문전까지 침투한 손흥민은 이를 재빨리 골문 안으로 가볍게 밀어 넣으며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리바운드에 이은 주워 먹기'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집중력과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가 따라잡지 못한 공간을 찾아다닌 부지런함이 골로 연결된 것이다. 손흥민의 장점과 대표팀이 그에게 필요로 하던 기대치가 처음으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손흥민의 '한 방'에 경기 내내 집요하던 카타르의 '침대 축구'는 한순간 붕괴됐고, 한국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최강희호는 최근 A매치 3연패의 부진을 벗어내고, 귀중한 승점 3점을 추가해 A조 1위로 도약, 월드컵 본선행에 청신호를 밝히게 됐다. 손흥민에게는 지난 2011년 아시안컵 조별리그 인도전 이후 2년 만에 터진 값진 A매치 2호골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경기가 월드컵 최종예선의 최대 분수령일 수도 있었기에, 손흥민의 카타르전 2호골은 무엇보다 값졌다.

대표팀 전술에 녹아들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한동안 '계륵'으로 전락했던 손흥민은 이날 경기에서의 '한 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스스로 한계를 넘어 다시 한 번 더 큰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 3월 26일은 손흥민에게 있어서나, 축구대표팀에게 있어서나 특별한 성장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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