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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수'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안방극장에 등장했다. 얼마 전 시작된 MBC의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가 그것인데, 주인공 최강치 역은 이승기, 그를 사랑하는 담여울은 수지가 맡고 있다. <구가의 서>는 몇 천 년 동안 구미호 일족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는 '밀서'라 한다.

드라마는 지리산의 수호신 구월령(최진혁 분)과 인간 윤서화(이연희 분)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반인반수 최강치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구가의 서'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 '구가의 서'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 MBC


신세대 퓨전사극, 가슴 뛰게 하는 신비한 사랑이야기

1, 2회에 보여준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이야기는 비극의 서막을 알리듯 처연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천년악귀가 되어버린 구월령, 그리고 그가 괴물임을 알아채고 배신감에 떨며 뱃속의 아기를 없애려 노력하는 서화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결국 태어나 강에 버려진 아기는 거상 박무솔(엄효섭 분)에게 발견되어 최강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의 장소였던 동굴, 구월령이 수호령이었던 지리산의 산세, 아기 최강치가 떠내려가던 강의 풍경 등, 고르게 사용된 우리 산하의 광활한 풍광과 더불어 분위기를 잘 살려낸 세트들은 비교적 잘 어우러지며 이야기의 겉모습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장치들은 퓨전사극으로서 <구가의 서>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보여주었다. 반인반수의 신묘함을 보여주기 위해 바람이나 불빛 등 많은 효과를 사용했고, 가끔씩 곁들여지는 유동근의 해설은 극에 신비함과 구수한 느낌을 동시에 불어넣어 마치 어린 시절 전래동화를 처음 접할 때처럼 가슴 뛰게 만들기도 했다.

'구가의 서' 악당 조관웅은 앞으로 더욱 큰 악행을 떨칠 것이라 한다. 악인에 의한 단순한 갈등구조는 이 드라마의 '구멍'이다.

▲ '구가의 서' 악당 조관웅은 앞으로 더욱 큰 악행을 떨칠 것이라 한다. 악인에 의한 단순한 갈등구조는 이 드라마의 '구멍'이다. ⓒ MBC


단순한 갈등구조, 등장인물들 설정은 진부

그러나 <구가의 서>의 신묘한 분위기는 형식적인 면에 국한되어 있을 뿐, 그 내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퓨전사극이라고는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면에서 그간의 사극들과 별반 다른 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몇 명의 악인들로 구성된 단순한 갈등 구조 및 몇몇 등장인물들의 설정 등은 진부하다.

이 드라마에서 주된 갈등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조관웅(이성재 분)이다. 그는 권력과 재력을 끝없이 탐하며, 이미 여러 차례의 악행을 보여준 바 있다. 서화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후 그를 겁탈하려다 결국 몸종인 담이(김보미 분)의 희생을 불렀다. 또한 서화의 남동생 또한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아주 자극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 특히 인면수심의 조관웅이 담이를 겁탈하며 내뱉은 노골적 대사와 장면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었고, 서화의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극한의 악행 등도 극 초반 드라마에 눈길을 모으기 위한 설정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과한 느낌을 지우지는 못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주인공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악행이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하면 문제는 다르다. 조관웅이 최강치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에게 파란을 일으키며 악인 중의 악인으로서 끝없이 진화해나갈 것이라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 아닌가.

게다가 주인공들을 비롯, 지위가 높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지없이 사투리를 사용하게 만든 설정도 구태로 보인다. 그것은 은연중에 신분에 따라 표준말과 사투리가 변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편견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또 다른 문제는 등장인물들의 '노리개'로 그려지고 있는 기생들의 잦은 등장이다.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기계적이며 수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아무런 인격도, 생각도 없는 '무생물'처럼 그려지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을 주인공들만큼 공들여 묘사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분사회의 불합리함 속에 꾸역꾸역 '살아내야' 했을 우리네 민초들을 그저 하나의 '나무토막'이나 아무데서나 구르는 '돌'처럼 보이게 하는 당황스러운 설정, 그것은 <구가의 서>가 다름 아닌 '퓨전사극'이어서 더욱 유감스러운 점이라 하겠다. 

'구가의 서' 앞으로의 최강치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극의 재미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 '구가의 서' 앞으로의 최강치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극의 재미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 MBC


'퓨전 사극'이 누릴 수 있는 장점 살리지 못한 탓

현재 <구가의 서>는 시청률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월화드라마 중 수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여러 식상한 설정 탓일까. 아니면 인물들의 세대교체 탓일까. 3, 4회 들어 초반의 동화적이면서 몽환적이었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퓨전사극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퓨전사극은 정통사극과는 달리 각종 허구들로 극한의 판타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 채 그저 선과 악의 구조로만 극을 끌어가려 하는 점, 거기에 입만 열면 '신분 타령'을 읊어대는 등장인물들의 구태는 모처럼 만난 신선한 소재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거기에 '구질구질한' 악인들의 이야기는 신물 나는 느낌을 더한다.

구월령과 서화, 그리고 그들의 2세 최강치를 둘러싼 이야기는 세속의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신비스러움으로 그 빛을 발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머리맡에서 들려주시던 구전동화 같은 그 정겹고 아스라한 추억의 느낌, <구가의 서>가 그것을 잘 살려내어 아름다운 동화로 계속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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