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박정환


제주 4.3의 아픔은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무대에도 제주 4.3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있다. 바로 연극 <순이 삼촌>이다. 순이는 여자지만 삼촌이라고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촌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먼 친척을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산촌이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어서다.

<순이 삼촌>은 순박하게 살아가던 제주 아낙 순이 삼촌이 제주 4.3을 겪으면서 삶이 얼마나 황폐화하고, 과거의 아픔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오는가를 그렸다. 탤런트 이순재 씨가 예술감독으로, 양희경 씨가 주인공 순이 삼촌을 연기한다. 배우 양희경을 충무아트홀에서 만나보았다.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박정환


- 연극 <순이 삼촌>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들려 달라.

"단순한 계기로 출발했다. 류태호 배우가 '누나 요즘 뭐하세요?'라고 묻길래 '드라마 하는데?'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제주 4.3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고 하는데 참여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글쎄, 양희은 언니 뮤지컬을 같이 해야 하는데'라고 대답하고 나서 참여하게 되었다.

원래는 4월 3일에 공연하려 했었다. 제주도 사람도 아닌 육지 사람이 제주 4.3을 표현하려면 너무 어렵지 않겠느냐 해서 제주도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두심 여사는 드라마를 세 개나 출연하는 바람에 도무지 시간이 안 되었다.

제가 제주도를 굉장히 좋아한다. '나중에 나이 먹으면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까' 생각할 정도다. 그 정도로 좋아하다 보니, 작품을 더블로 진행할 수 있으면 더블캐스팅으로 할 생각에 연극 제의를 수락했다.

연출가의 친가와 외가 쪽 모두 제주 4.3의 유족이다.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연출가의 외할머니를 위해 공연을 올려야 하지 않나 하는 소박한 마음도 있었다.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한 연극인데, 제가 캐스팅이 되고 충무아트홀이 섭외되는 식으로 공연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뱃속의 아이가 유산되고, 남편이 말로 다 표현 못 할 어려움을 당하고, 총살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살아남을 정도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죽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았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을 사는 삶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박정환


- 왜 순이 삼촌은 먹을 것에 그토록 집착하나.

"옛날에는 제주도가 논농사를 할 수 없었다. 밭농사가 전부이다 보니 먹을 것이라고는 지슬(감자)이나 보리쌀이 전부였다. 서명을 하며 쌀 한 줌을 준다 하니 글도 모르는데 쌀 한 줌 얻기 위해 남로당의 명부에 서명을 하고.. 이러다 보니 쌀에 대한 집착,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연 때문에 순이 삼촌이 쌀을 보면 기쁘면서도 눈이 뒤집히는 거다."

- 최근 4개월 동안 공연계와 극장계를 보면 일련의 흐름이 감지됨을 알 수 있다. 3월과 4월에는 제주 4.3 사건을 영화화한 <지슬>, 5월에는 광주 민주화항쟁을 다룬 <푸르른 날에>, 6월에는 <지슬>과 맥을 같이 하는 <순이 삼촌>이 무대에 오른다. 시대의 아픔을 다루는 공연과 영화가 4개월 동안 관객을 찾는 셈이다.

"이전 같으면 이런 시대적인 아픔을 작품화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작의 작가인 현기영 선생님은 이 작품을 1978년에 발표하고 난 후 고문당해 지금까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세상이 좋아진 거지. 이런 작품을 내놓아도 끌려가는 일이 없잖은가.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처벌할 사안은 처벌하고 위로할 사안은 위로가 되었지만 제주 4.3 사건은 그만큼 공식화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고 2008년에 4.3 공원이 조성되면서 육지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식자층에서는 '4.3이 뭐야?' 하는 반응이 많이들 나온다.

이 연극은 영화 <지슬>이 나와서 만들어야겠다고 논의된 작품이 아니라 이미 작년부터 준비된 작품이다. 이순재와 송현옥 선생님이 준비하고 원작자인 현기영 선생님에게 감수 받으며 만든 작품이다. 인터뷰어가 작품을 봐서 알겠지만 제주 4.3 사건은 한집안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사건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 논리로만 적용하면 제주도가 발칵 뒤집힌다. 제주도 사람들도 이를 굳이 노골화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제삿날은 모두 같다. 떼죽음(제주 4.3 때 집단 학살)을 당했으니까. 이 사건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순이 삼촌’ 양희경 ‘순이 삼촌’ 양희경 ⓒ 박정환


- <지슬> 영화를 보았는가.

"일부러 보지 않았다. 만일 보면 흉내 내거나 묻어갈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에만 집중한다."

- 브라운관과 무대를 자유로이 왕래한다.

"무대에서 연기 인생이 시작되었으니 무대는 제 고향과 같은 곳이다. 무대나 TV나 모두 좋아한다. '드라마를 일 년 내내 찍더라도 무대에는 한 편 정도 서자'는 각오가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작년에만 무대에 오르지 못 했다. 왜냐하면 재작년에 드라마를 하면서 뮤지컬만 네 작품을 했기 때문이다."

- <순이 삼촌>을 찾는 관객에게 관전 포인트를 설명해 달라.

"순이 삼촌에게 중점을 두고 관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 올레를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제주의 밑바닥에는 제주 4.3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주도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희경 순이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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