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tvN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tvN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 tvN


언젠가 tvN <꽃보다 할배>의 시청률이 정점을 찍는다면, 나영석 PD를 위시한 제작진은 이러한 패러디를 선보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개그맨 김준현이 패러디해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이병헌의 한 광고 카피 말이다.

"리얼 예능에도 영혼이 있다면, H4와 이서진을 결합시킨 환상의 캐스팅과 파리를 위시한 유럽의 낭만적인 풍광, 소소한 사건도 드라마틱하게 둔갑시키는 완벽한 편집의 예술을 가졌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꽃보다 할배>는 가장 완벽한 '리얼 여행 예능'입니다."

방송 첫 회에 전국 시청률 4%를 훌쩍 넘기며 화제몰이 중인 <꽃보다 할배>는 과장된 수식만 제외한다면 저러한 자부심을 충분히 가질 만한 완성도를 거듭 선보이는 중이다. 게다가 방송 2회 만에 각자의 캐릭터가 완전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기승전'완결'의 놀랄만한 흡인력을 자랑하게 됐다. 그것도 평균나이 76세의 출연진들을 데리고서.

 28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배낭여행 프로젝트 제1탄' tvN <꽃보다 할배>제작발표회에서 국민 할배 4총사인 80세 이순재, 78세 신구, 74세 박근형, 70세 백일섭과 43세 젊은 피 이서진이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배낭여행 프로젝트 제1탄' tvN <꽃보다 할배>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국민 할배 4총사'. 왼쪽부터 80세 이순재, 78세 신구, 74세 박근형, 70세 백일섭과 43세 젊은 피 이서진이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1박 2일> 나영석 PD의 귀환, 그리고 리얼 예능의 깊이

엄살 혹은 과장. '일섭다방'을 비롯해 '나이'와 '위계'를 강조하는 <꽃보다 할배>의 티저 예고편을 보며 살짝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F4'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이 본방에 앞서 tvN <택시>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몇 가지 가벼운 우려까지 들기까지 했다.

자사 홍보를 목적으로 한 토크쇼에 대한 상투적인 지적이라기보단, 케이블 특유의 중구난방의 편집과 진행자 김구라, 전현무의 과도한 배려가 왠지 불길했다랄까. 과묵하고, 예능과 친할 리 만무하며, 족히 40~50년 넘게 연기에만 매진해 왔을 이 장인들(그래서 그 어떤 출연자들보다 대중성 면에서 강력한)에 대해 자연스러운 것이 마땅한 배려 말이다.

하지만, 1회 방송부터 그런 우려와 배려는 고스란히 '캐릭터'성으로 승화됐다는 것이 감지됐다. 잘 만든 리얼 예능이 모두 그러하듯, 인물 개개인의 실제 성격과 컨디션은 그대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연결되고야 만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고리를 탁월하게 포장하는 동시에 협상과 복불복 등을 통해 '리얼 예능'의 필수요소들을 확립시킨 이들이 바로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다.

<꽃보다 할배>는 우선 이순재부터 백일섭, 그리고 이서진으로 이어지는 (나이에 의한)멤버간 위계라는 웃음과 갈등의 씨앗을 전면에 내세운다. 70세 백일섭이 커피를 타고 형님들 앞에서 눈치를 보는 것은 약과였다.

그 아래 진짜 막내 43살 이서진을 "널 보면 내 마음이 아파"라는 배경음악 가사와 함께 짐꾼이자 통역사, 내비게이터, 매니저, 총무, 스프린터 등으로 세분화시켜 소개하는 '약 빨고 만든' 듯한 편집은 <꽃보다 할배>가 길지 않은 여행 기간 동안에 캐릭터를 잡아 나가고, 상황과 사건을 만들어 가는데 현존하는 그 어떤 리얼 예능보다 탁월할 것이란 선언과도 같았다.

 28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배낭여행 프로젝트 제1탄' tvN <꽃보다 할배>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낭여행 프로젝트 제1탄' tvN <꽃보다 할배>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캐릭터와 여행, 편집의 '삼위 일체'

제작진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속에서도 캐릭터를 잡아 냈다. 아내가 싸준 장조림 통을 소중히 간직하다 결국 아파오는 다리에 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 통을 내 던져 버린 백일섭, 그리고 그 통을 주워와 들고 가는 이서진. 이러한 돌발 상황은 소소하지만 여행의 큰 갈등 요소로 부각되는 한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드는 감동 코드로 버무려졌다.

<꽃보다 할배> 식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편집, 편집을 통해 완성되는 캐릭터의 화학 작용은 2회 들어 더욱 빛을 발했다. '직진 순재'와 '심통 일섭'이란 별명을 얻은 둘의 대립은 파리 복판인 개선문까지 걷느냐 마느냐에 대한, 그러니까 백일섭의 건강 컨디션과 이순재의 급하고 칼 같은 성격의 차이에서 오는 미세한 대립이었다.

제작진은 한식당에서 벌어진 이러한 갈등을 '우파' 이순재와 '좌파' 백일섭, 그리고 '중도파' 신구와 "너무 어려 투표권이 없다"는 이서진과 '일반시민' 박근형 캐릭터로 확장시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맛깔스런 자막과 직전 장면을 효과적으로 이어 붙인 플래시백, 적재적소에 배치된 배경음악들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상황에 극적 요소를 배가시키는 편집의 묘미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H4' 할배들이 일단 당도한 곳이 바로 유럽의 심장인 프랑스 파리라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는 2화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에펠탑과 개선문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여행 예능'으로서의 볼거리를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탁월하게 잡아 냈다.

바로 여기에 이 <꽃보다 할배>의 진가가 드러난다. 술을 한 잔 걸치고 "40년 전에 직접 봤었던 개선문은 달랐다"고 말하는 '기분파' 신구는 "우리가 언제 또 여기 와 볼 수 있겠느냐"고 동생들을 다독인다. 할아버지들이 인생 막바지에 뭉친 마지막 해외 여행. 그리고 흐르는 자막은 "그들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였다.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 tvN


'버킷리스트'를 품은 <꽃보다 할배>의 밝은 미래

결국 위계에서 비롯된 갈등은 언제나 소통과 교감, 이해로 귀결될 것이다. 더욱이 유럽이라는 먼 타국 땅,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평균 나이 74세의 할배들이나 남녀노소의 시청자들이나 대동소이하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영석 PD 이하 제작진일 것이다.

무엇보다 생의 마지막 (합동) 해외여행임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 할배들의 감정은 '올드'하기 보다 그 자체로 풍부한 깊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꽃보다 할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예능판 <버킷리스트>를 마주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노을이 지는 개선문 위에서 반짝이는 야간 등을 밝힌 에펠탑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단순한 여행객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할아버지판 <남자의 자격>이나 <아빠! 어디가?>, 그리고 <1박 2일>과 결을 달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3회 예고편에서 제작진은 여행 3일째 이제는 조금 긴장이 풀린 멤버들의 변화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좀 더 확실히 할 것을 예고했다. '짜증'을 내는 이서진과 '본색'을 드러낸 박근형 등 베르사이유 궁전 등을 배경으로 말이다.

캐릭터와 풍광, 편집이란 리얼 예능의 삼위 일체가 점점 더 짙어지는 <꽃보다 할배>가 지난해 tvN을 먹여살린 <응답하라 1997>과 종편의 역사를 새로 쓴 <무자식 상팔자>의 인기와 반향을 넘어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꽃보다할배 나영석PD 이순재 백일섭 이서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