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시청률 하락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이 내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최근 급격히 힘이 빠진 듯 보이는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라는 '원투펀치'의 성공에 힘입은 MBC <일밤>이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을 턱밑까지 쫓았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아이와 캠핑을 내세운 '가족예능'과 <우정의 무대>와 <푸른 거탑>을 잇는 '군대예능'의 진격과 <개그콘서트>의 현재는 뚜렷한 대비를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 6월 700회 특집에서 개그맨 선배들과 함께 28기 신인 개그맨들을 소개하며 변화를 시사했던 '개콘'. 그래서 일까, 이후 방영된 '개콘'은 흡사 칭얼대는 막내 동생과 같이 웃음의 '세기'가 확연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꾸준히 호통도 치고, 주장도 내세웠던 '형제들'에 비해 말이다. 얼핏, '개콘'의 이러한 숨 고르기는 마치 2013년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의 한 장면 ⓒ kbs


'오성과 한음'의 허무주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 의미에서, 방영 시간 중 단골로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요즘 대세, '오성과 한음' 코너는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캐치볼을 하는 두 친구가 툭툭 던지는 대화 속에 촌철살인을 삽입하는 이 개그는 전두환 씨의 '29만원'부터 일본의 아베 총리, 박지성 선수의 결혼, 그리고 <그것이 알고싶다>의 '사모님 사건'과 국제중 사건까지 그 주의 이슈를 전방위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 놓는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허무'란 정서다. 하릴없이 캐치 볼이나 소일하는 오성과 한음이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사귈까?"라고 내뱉거나, 종종 "돈 있어?"라고 반문할 때, '그들도 우리처럼' 쉬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능력도, 또 그러한 개선을 위해 나설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재현한다. 그래서 패기 있게 "사귈까?"라거나 "내기할까?"라고 대거리하는 둘의 대화는 그대로 허무를 넘은 자학 혹은 자위의 몸짓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포퓰리즘을 무기 삼은 채 전방위적인 '디스'와 '독설'을 설파하던 '용감한 녀석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한 것이 바로 '오성과 한음'인 셈이다. 지난 1월, 방송통심의위원회가 '용감한 녀석들'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로 "잘 하시라"고 당부한 대목을 문제 삼아 '행정 지도' 처분을 내린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허무'의 정서는 꽤나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개콘'이 어디 단일 코너로 해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던가. 올해 들어 시청률 하락과 아이디어 고갈 등으로 매체들의 공격을 받아왔던 '개콘'의 부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짚어볼 근거를 필요로 할 것 같다.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 ⓒ kbs


'개콘' 스타들의 지분과 <인간의 조건>의 위치

올 1월 출범한 <인간의 조건>은 '착한 예능'의 전범과도 같다. 현대인의 필수품들을 1주일씩 버리고 사는 기이한 체험기를 경험하는 개그맨들은 모두 '개콘' 중심축들이다.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인기를 얻을 때 마다 여기저기 투입했던 KBS의 관행은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는 방송사와 인지도 향상을 위해 힘쓰는 개그맨들 개개인의 선택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인간의 조건>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친근한 얼굴의 개그맨 6인의 가족과 일상, 현실의 얼굴들을 근접 거리에서 조명할 수밖에 없는 '리얼 체험 예능'이다. '개콘'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와연기자 개인들에 대한 친밀도, 그리고 인지도가 행복한 방식으로 비례하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인간의 조건>의 멤버들이 폐지된 <남자의 자격>을 비롯해 <해피투게더3> <위기탈출 넘버원>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퀴즈쇼사총사> 등 고정으로 출연한 KBS 예능의 수는 적지 않은 수였다. 여기에 게스트로 출연한 각종 토크쇼와 예능 프로그램을 합친다면 '식상한 얼굴'로 비춰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KBS를 위해 헌신한 '개콘'의 간판스타들 중 8일 방송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는 김준호 밖에 없다는 점은 곱씹을 만 하다.

매주 고정으로 출연하며, 쓰레기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물을 아끼며 '모범 시민'으로서 '지구'와 '환경'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개그맨들이 앞으로 어디까지 '독한' 개그를 선보일 수 있을까.

CF스타로 거듭난 김준현은 제외하더라도 '개콘'의 클로징을 담당하게 된 '버티고'에서 여자 후배에게 맞는 못난 선배로 나오는 김준호의 모습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어리바리한 대통령 각하로 등장하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최근 정부의 전력난 해소 노력에 발맞춰 '전기 없이 살기'를 미션으로 내세웠다.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의 한 장면 ⓒ kbs


'황해'와 '뿜엔터테인먼트'의 희화화 대상, 건전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콘'은 다시금 여러 코너를 무대에 올리며 활력을 잃지 않고 있다. 박성광이 막장 드라마를 파헤쳐 놓는 '시청률의 제왕'이 건재한 것은 물론 최근 '조선족 비하' 논란을 딛고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황해'나 무례한 연예인들을 풍자 대상으로 삼아 방송되자마자 화제가 된 '뿜엔터테인먼트' 역시 '개콘'의 기본 타율을 보장할 수작들이다.

헌데, '개콘'이 지금 웃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분명 짚어볼 만 하다. 그 중 풍자만 놓고 본다면 더더욱 문제적이다. 원래 풍자개그의 최고봉이 권력자를 향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700회에 이어 7일 한없이 좋은 미소로 말없이 등장한 (정은선이 연기하는)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과거 <SNL 코리아>의 정성호와의 그것과는 문자 그대로 천양지차다.

여기에 '황해'가 희화하는 조선족들이나 '엔터테인먼트'가 비웃는 여성연예인, 몇 주 전 '현대레알사전'이 편견으로 물의를 일으킨 성우 등에 대한 시선은 꽤나 협소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을 때, '비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풍자의 속성을 쉬이 보면 안 된다. 개그맨 본인들의 자기 반영과 사회적인 시선으로 차별 아닌 차별을 받는 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배분해 장수 코너로 자리매김했던 '네 가지'를 반면교사 삼을 때다. 

그런 점에서, 중심추를 맞추기 위한 '두근두근'과 같은 로맨틱코미디나 황현희 특유의 분석 개그와 패러디를 접목시킨 'KBS스페셜그것이알고싶은추적60분수첩', 댄스코미디의 부활인 '댄수다' 등은 중심 코너로 올라서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700회를 맞은 <개그콘서트> 식구들

700회를 맞은 <개그콘서트> 식구들 ⓒ kbs


'개그콘서트'가 시대를 견디는 방편에 대해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을 양분하던 <SNL 코리아>가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이유와 방송사 모기업에 대한 검찰수사로 인해 3주간 결방 후 돌아온 사이, 폭넓은 연령층에게 사랑 받던 '개콘'이 시청률을 둘째 치더라도 그 웃음의 방향이나 강도 면에서 삐걱 거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의 갑으로 불리던 강력한 라이벌 <백년의 유산>이 막을 내린 현재가 중요한데, 지금까진 쉬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내외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9금'에 주력하게 된 <SNL 코리아>와 같이 '풍자'에 대한 자기검열의 작동이라고 한다면, 그저 '오성과 한음'처럼 '허무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방송사 내' 분위기와 사회 분위기를 핑계 삼아도 좋을까.

과거 '봉숭아 학당'처럼 현직 대통령 '노통'도 놀리고, '맹구'도 함께 웃기며 어울릴 수 있는 '개콘'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이제 상상조차 할 수도 없게 됐다면 일견 비약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개콘'의 풍자가 '조선족'이나 '여성연예인' 등 '만만한' 상대만을 골라 향하는 자충수만은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행여 존재할 수 있는 '자기 검열'이 시대를 견디는 방편이라면 어찌 말릴 수는 없겠지만.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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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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