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머신>(The Machine, 카라독 제임스 감독) 스틸

<더 머신>(The Machine, 카라독 제임스 감독) 스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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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이라는 말에는 금기 너머의 느낌이 담긴다. 일상은 평평하고 단조롭게 진행되는 것이고, 일상을 넘는 것 자체를 일탈과 도발이라 일컫는다면 판타스틱은 '금기 이전' 내지는 '금기 너머'의 무엇과도 같다.

축제(festival) 역시 일상의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판타스틱과 축제의 만남은 꽤 환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이다. 영화제의 상영작 하이라이트를 보면 피 튀기는 엽기적인 장면들, 좀비를 비롯해 '비인간'의 형상을 띤 괴물들, 환각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 등을 주로 볼 수 있었다. 궁금증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어떨까.

영화제 기간 중 본 몇 편의 작품들은 '판타스틱'이 지닌 의미, 그리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축제에 대한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인해볼 수 있게 했다. 지난 18일부터 28일까지의 축제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아봤다.

<더 머신>(2012) : 인간의 최소 조건이란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1982)의 첫 장면은 레플리컨트(복제인간)를 대상으로 그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간 언어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한 군데로 고정되지 않는 시선은 그를 인간이 아닌 레플리컨트로 규정하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 더욱 인간적인 레플리컨트를 등장시켰고, 도리어 레플리컨트의 인간다움이 아닌 우리가 가진 인간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묻게끔 했다.

<더 머신>(The Machine, 카라독 제임스 감독)은 마치 <블레렸드 러너>의 또 다른 변주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아바'(케이티 롯츠 분)는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숀 영 분)을 닮아 있다. 동시에 <더 머신>은 인간 정서와 사랑의 욕구를 가진 이 로봇이 최종적으로는 어떤 특별한 기계 부속물의 일부로 환원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로봇이 충분히, 아니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이라면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매우 급진적인 결말인 셈이다.

인간의 평등이란 가치는 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헤게모니가 그 기저에 깔렸다. 어쩌면 이 영화 역시 인간과 로봇의 미래적인 이야기라기보다, 현재 세계가 처한 인종·신분 차별 등의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정신분석학자 지젝(Slavoj zizek)을 조금 참고하면 '모든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온건한 정의는 결국 그것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러 사회적·정치적 시스템 속 오해를 통해 이미 불평등하기에 그러한 것들과 맞서는 비판적·저항적 정의를 취할 때 비로소 평등의 가치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 피어>(In Fear, 제레미 로버링 감독) 스틸

<인 피어>(In Fear, 제레미 로버링 감독) 스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 피어>(2012) : 네 안의 두려움의 원인을 직시하라

<인 피어>(In Fear, 제레미 로버링 감독)는 저예산 영화로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온다.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가는 단계인 남녀가 승용차에 타서 호텔을 찾는 지난한 과정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그러던 중 차는 계속 뱅뱅 돌며 이들은 '미로'에 갇힌 형국이 되고, 여자가 인기척 등을 감지하며 공포를 느끼다 어느덧 저녁을 맞는다.

미로를 벗어나려던 참에 사람을 차로 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피해자가 차에 탑승한 뒤 상황은 급격히 악화된다. 끔찍한 살인마가 나오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의 잔혹한 공포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인 피어'(in fear). 곧 내 안에 있는 두려움 자체로부터 공포가 출현하는 방식을 가져간다.

자동차 창문에서 바라보는 을씨년스러운 나무와 하늘, 자동차에서 잠깐 내렸을 때 보이지 않는 시선에서 느끼는 공포,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존재 때문에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두 인물을 통해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안긴다.

이는 박해일 주연의 영화 <짐승의 끝>(2010)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뒤늦게 차에 탑승한 정체불명의 피해자가 이들을 비웃는 듯한 태도에서 돌연 가해자로 변모하고, 영화 초반의 사건이 다시 언급되며 이야기가 시작점으로 되돌아갈 때 영화 이해에 대한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 <인 피어>는 이유 없는 공포가 아닌 죄와 그에 대한 대가라는 심리적인 측면을 조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꽤 개연성 있는 공포를 제공하는 셈이다.

 <관광객들>(Sightseers, 벤 웨틀리 감독) 스틸

<관광객들>(Sightseers, 벤 웨틀리 감독) 스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광객들>(2012) : 엽기 살인 여행의 끝은?

<관광객들>(Sightseers, 벤 웨틀리 감독)는 바보처럼 보이는 두 연인의 여행을 따라가며 그들이 충동적으로 살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끔찍해 보이지만 감독은 두 인물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엽기와 웃음을 오가는 특이한 감각들을 발생시킨다.

여행을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장 우발적인 삶의 조건들을 만드는 장치'라고 정의해보자. 이들의 살인은 그 여행의 사건들을 극단적으로 더하는 방식으로 묘사됐다. 그들에게 살인이란 현실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온 스트레스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살인은 물론 끔찍하다. 하지만 영화는 윤리적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다. 리얼리즘 드라마도 아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는 다르다. 영화는 '그림동화'(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집) 속 전형적인 우화들이 지닌 잔혹성이 있으며, 단순한 모티브들의 중첩으로 이어진다. 그 안엔 많은 관객을 놀라게 하는 요소도 담겨있다.

한편 <관광객들>은 이번 PiFan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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